“선생 16년, 아아! 교직이여! 징검다리여!”

- 교단 수기 1: '환골탈태 - 절망에서 희망으로'

by 산골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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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초가을, 2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스물아홉 살 총각, 고등학교 교사 생활 2년째였습니다. 인문계 고교에서 문학 교과 시간에는 주로 여러 장르에 걸친 문제풀이를 집중합니다. 주어진 지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는 형식으로 틀에 박힌 구조 분석만이 입시에 대비하는 수업 전략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봄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 한여름 장대비가 쏟아져 내릴 때, 교정의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때, 첫눈이 내릴 때는 교과서를 덮고 시나 수필을 쓰게 합니다. 계절적 분위기에 맞게 제목을 정하기도 하지만 가급적 자유 제목으로 글쓰기를 하곤 하지요.


1989년 당시 제게 문학 수업을 받았던 고 2학생들 가운데 얼굴이 깡마르고 수업 시간에 주로 졸거나 집중력이 떨어져 교단에 서면 쉽게 눈에 띄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진규 군이 가끔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은 우수가 가득한 모습이거나 시심을 키우는 시인 같기도 했습니다.


진규가 졸 때면 살짝 다가가 등을 두드리거나 가슴을 어루만지며 가급적 스킨쉽으로 소통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학습 태도는 나아지지 않았고 성적은 15등급 중 꼴찌였습니다.


‘이 학생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비록 담임 교사는 아니었지만 교과 담당 교사의 입장에서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다가 2학기 초가을, 교과서를 덮고 글쓰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쓴 글을 가지고 교무실에 돌아와 맨 먼저 진규의 작품을 찾아 읽었습니다. 대략 5연으로 구성한 시였는데, 참신한 발상에 시어의 구사가 남달라 보였습니다. 비록 학습 의욕을 잃고 힘들어했지만 시를 쓰는 능력이 돋보여 문학을 담당하는 교사로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 날, 점심 시간에 저는 다른 학생 편에 쪽지를 보냈습니다. “진규야, 점심 식사를 마치고 중앙 현관 앞에서 만나자. 보고 싶다. 박병춘 씀”


진규는 두리번거리며 중앙 현관으로 나왔고, 저는 진규를 데리고 산책로 입구 공터로 갔습니다. 학생과 개별적인 대화를 하는 공간은 여러 선생님들이 계신 교무실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연 경관이 뛰어난 학교이다 보니 진규와 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라고 믿었습니다. 자유롭고 편한 공간에서는 자연스럽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진규야! 아까 문학 시간에 썼던 시 있잖아, 참 잘 썼더라.”

“샘, 정말요?”

“그럼, 평소에 시를 많이 써 본 경험이 있는 것 같던데?”

“그렇진 않구요. 그냥 집에서 아빠가 읽는 책 정도 읽어요.”

“그래? 주로 어떤 책인데?”

“신문사 발행 월간 잡지도 있고요. 소설 책도 있고 그냥 있는 대로 읽어요.”

“아하, 우리 진규가 책을 많이 읽어서 시적 재능이 있구나. 시 좀 써보고 싶은 생각 없니? 함께 하고 싶다. 지금 당장 결정하지 말고 내일 또 만나지 뭐.”

“헤헤, 샘, 잘 될 지 모르겠는데요.”


진규는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어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집중을 안 하는 이유가 뭐야?’라는 말이 튀어나오기 직전 멈췄습니다. 교실 밖에까지 나와 성적 이야기를 끄집어낸다는 것은 진규를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순간, 참나무 썩은 나뭇가지 하나가 ‘딱’ 소리를 내며 우리 앞에 떨어졌습니다.


“우와, 진규야! 대단하지 않니? 저 참나무 가지가 긴 시간을 견디고 있다가 이제야 우리 앞에 떨어지다니! 이것도 참 대단한 인연이다. 시라는 게 그런 거 같아.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 자연, 사물에 무엇인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일 아니겠니?”


우리는 다음 날 점심 시간에 또 만났습니다.


“진규야! 시는 써 보기로 했니?”

“…….”


진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따라 얼굴 표정이 유난히 어두워 보였습니다. 자신의 창작 역량 이상의 것을 요구하여 괜한 스트레스는 주지 않을까 염려했습니다. 하나둘 발걸음을 옮겨 학교 뒷산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선생님,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응, 그래 뭔데?”

“사실은요, 저 자퇴 결심했습니다.”

“뭐라구? 자퇴? 아니, 왜?”

“그냥 학교가 싫어서요. 검정고시 공부하려고요.”

“왜, 학교가 싫어?”

“글쎄요, 뭐라고 말씀 드리기가 그렇습니다.”

“흠, 지금까지 다닌 것이 너무 아깝잖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그래.”

“그렇지 않아도 아빠 엄마랑 한 달째 갈등이에요. 결정하기 전까지 자의 반 타의 반 많은 분들을 만나 상담했는데 생각에 변화가 없어요. 아빠 엄마랑 사이도 좋지 않고요.”

“음, 그랬었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시 쓰라고 한 것이 부담되어 그런 줄 알고 깜짝 놀랐구나. 그렇다면 내가 친구가 되어 주마. 자, 천천히 꼬인 실타래를 풀어보기로 하자. 어때, 괜찮겠니?”

“예에…….”


저는 진규가 감행한 의외의 결정에 놀라면서도 도대체 무엇이 진규로 하여금 자퇴를 결심하게 했는지 궁금했습니다.


학생부에 마련된 학생 명단을 보고 진규의 부모님과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진규의 부모님은 고교 생활 절반이 지난 상황에서 자퇴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어떻게든 졸업이라도 시켜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퇴의 이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없이 대화를 해봐도 자퇴의 이유가 탐탁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학교 생활이 그 정도인데 검정 고시를 준비한다는 것은 나쁜 길로 빠져드는 지름길이나 다름없다며 아들이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했습니다.


순간 저는 진규의 아버지가 말한 ‘자퇴의 이유가 탐탁하지 않다’라는 말에 몰두했습니다. 물론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있으나, 그것이 자퇴의 본질적 이유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점심 시간, 저는 진규를 만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묻기 전에 진규 스스로 무엇인가 말문을 열어주기를 바랐습니다. 진규도 말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교정 뒤 오량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왔습니다. 1층 출입구에 들어서는 진규에게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진규야, 자퇴를 결심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뭐니? 알고 싶구나. 내일 얘기 하자.”


저는 진규의 담임 선생님을 만나 진규와 가졌던 그 동안의 소통 과정을 말씀드렸습니다. 자신의 학급 학생에게 일어난 일을 교과 담당 교사가 관여했을 때 행여 담임 교사가 갖게 될 불쾌감을 경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진규의 담임 선생님도 어떻게든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달라며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진규의 자퇴 사유는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교사 생활 2년째를 맞이하고 있던 제게 명백한 교훈이 되었습니다.


<진규가 중학교 2학년 시절, 담임 교사는 보충수업 희망 조사를 하면서 보충수업을 받고 싶지 않은 학생은 손을 들라고 했습니다. 진규는 손을 번쩍 들었는데, 손을 들고 보니 혼자였습니다. 당시 보충수업은 암묵적 동조 속에서 누구나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었습니다. 담임 교사는 진규를 교무실로 불러 버르장머리 없다며 체벌을 했고, 자신의 합리적 선택에 아무 잘못이 없는 데도 꾸지람에 매까지 맞아야 했던 억울함을 호소할 데가 없었습니다. 이후 진규는 모든 선생님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수업 시간이면 아예 졸거나 교과와 상관없는 독서를 했습니다. 그 어떤 선생님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생활을 고등학교 시절까지 연장해왔던 것입니다.>


기초 학습 의욕을 상실한 진규는 자포자기 상태였습니다. 교실은 지옥과 같았고, 자퇴는 자명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진규와 저는 시(詩)를 통해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약 20일 동안 끊임없이 점심 시간에 산책로에서 만나 시를 논했고, 대화했습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진규의 자퇴 결심은 점차 쇠퇴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적 체험과 세상 영웅의 이야기를 거듭하며 자퇴보다는 학교가 낫다는 당위성을 역설했습니다.


내신 15등급 중 최하위였지만 진규는 이를 악물었습니다. 자퇴 결심은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평소 독서를 좋아했고, 시 창작 능력이 있는 진규에게 먼저 국어 정복을 제안했습니다. 국어를 잘 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수학이나 과학 사회 교과는 딱히 방법이 없을 만큼 손을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진규는 3학년에 진학했습니다.


이후 진규는 고통스런 고3 생활도 잘 적응했습니다. 하지만 국어나 영어 이외의 다른 교과목은 여전히 답보 상태였습니다.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학력고사에 응시했지만 얻은 성적으로는 대학 진학이 불가능했습니다.

진규는 재수를 결심했습니다. 학원 생활을 하는 동안 몇 차례 소통을 했습니다. 진규를 만날 때면 볼펜 10자루와 연습장 10권을 사 주었습니다. 진규는 끊임없이 연습장에 볼펜을 닳게 했습니다. 재수 생활로 고등학교 4학년 시절을 보낸 진규의 성적은 급상승하긴 했으나 4년제 대학 진학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특히 최하위 내신 성적은 지독한 운명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진규는 결국 최하위 내신 성적을 극복하지 못하고 4년제 대학 진학에 실패했습니다. 진규는 삼수를 작심했습니다. 재수를 통하여 얻은 자신감으로 다시 이를 악물었습니다. 진규의 부모님은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영어 성적은 거의 만점에 다다랐습니다. 모의고사 성적은 날이 갈수록 향상되었습니다. 이후 진규는 학력고사에서 믿을 수 없는 점수를 획득했습니다.


진규는 불리한 내신 성적을 극복하여 높은 학력고사 점수로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이후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해외 어학 연수를 다녀와서 지금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중학교 시절 단 한 번의 충격으로 교사에 대한 불신을 갖고 결국은 학업 포기를 감행하려 했던 친구. 그가 가진 문학적 소양을 키워주면서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었던 인연. 그것은 문학의 힘이었고 인간적 필연이었습니다.


교육은 누가 뭐래도 교사와 학생의 아름다운 상호작용입니다. 우리 학생들을 절망에서 희망으로 걸어가게 하는 징검다리, 그가 바로 교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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