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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일핑크 Nov 14. 2023

너 영스넥 먹어봤어?

그러니까 여전히 떡볶이는 사랑이다.

에세이를 써보자고 마음먹은 후, 도서관에 가면 습관처럼 에세이책을 한 두어 권 빌린다.

편하게 술술 읽는 글은 역시 에세이 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인지 책 읽기를 지속하게 하는 힘이 되곤 한다.


유독 얇아 쉽게 도전의식이 일게 하는 아무튼 시리즈는 부담 없이 시작하는 독서에 딱 알맞다.


그중 아무튼 떡볶이를 택했다. 이미 발행한 지는 4년 여가 흘렀지만 요조 작가가 썼다는 것, 그리고 떡볶이라는 글감이 나를 당겼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떡볶이에 대한 애정으로 나름 떡볶이 마니아 축에 속한다고 생각해 왔다. 나는 여중 여고가 붙어 있는 학교를 다녔고, 그 앞은 유난히도 떡볶이집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학생들에게 떡볶이라 함은 일종의 소울푸드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까지 떡볶이를 싫어하는 여자를 만나지 못했다. 오죽하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 타이틀이 나왔고, 왜 그 문구 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었을까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학교를 다니다 보면 알고 싶지 않아도 떡볶이 맛집을 알게 된다. 중학교 1학년이 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맛있는 곳이 있다며 나를 떡볶이 맛집으로 안내했다. 같이 입학을 했는데도 이미 어디가 맛있는지 알고 있는 브레인들 덕분에 학교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떡볶이 집으로 향했다.


"너 오늘 먹을 거야?"


교문 앞에 가까워질 때 즈음 서로 물어본다. 주머니에 돈이 좀 든 날에는 당연히 먹고, 조금 모자란 날은 친구에게 100원을 빌려 먹는다. 결국 거의 매일 먹었다는 말이다. 300원짜리 컵 떡볶이와 100원짜리 야채튀김이 주 메뉴였다.  


주로 가던 떡볶이집은 간판도 없고, 자리도 마련되어있지 않아 테이크아웃만 되는 작은 장소였다. 게다가 교문 바로 앞에 있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작은 종이컵에 떡볶이 국물이 넘칠까 조심하며 천천히 언덕을 내려와도 국물은 어느새 교복 재킷에 묻었고, 아무렇지 않은 듯 쓱- 닦아내고 다음날 또 그 재킷을 입었다.


특히나 금요일이면 컵 떡볶이에 라면사리를 조금 넣어주곤 했다. "라면 조금만 더요!"라고 외치며 작은 종이컵에 한 젓가락 겨우 들어갈 양인데도 무슨 이유에선지 만족감이 컸다. 달달한 소스와 함께 면이 넘어가는 것이 금요일만의 행복인양 여겨졌다.




아무튼 떡볶이의 목차 중 유난히 눈에 띄는 타이틀이 있었다.

"영스넥이라는 떡볶이의 맛의 신비"


'내가 아는 그 영스넥인가?'


그랬다. 내가 아는 그 영스넥 떡볶이에 관한 것이었다. 영스넥은 서울 노원 학원가에 있던 떡볶이 집이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을 갔는데 거기에서도 또 떡볶이를 즐겼다. 학교 앞 떡볶이와는 또 다른 맛있는 맛이 깃든 곳이다.


영스넥 역시 학원을 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떡볶이 맛집이다. 건물 지하에 있고 간판도 흐릿하여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딱히 가고 싶지 않게 생긴 곳. 친구의 이끌림에 낙서로 채워진 벽면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허름한 내부가 보였고 겉모습과는 다르게 뭔가 맛집 포스를 풍기는 기분이 든다.




"너 영스넥 먹어봤어?"


학원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 이렇게 질문한 후 못 먹어봤다고 하면 따라오라고 호기롭게 말하곤 했다. 영스넥을 먹기 위해선 2명 이상이 필요했다.


영스넥을 갈 때마다 '모듬' 메뉴를 시켰다. 떡, 면, 만두, 계란이 한데 합쳐져서 한 접시에 나오는 것으로 2인이 나눠먹기에 적당했다. 당시 5천 원 정도의 금액으로 기억하는데 길거리에서 떡볶이 한 접시에 천 원 하던 시절이니 자주 사 먹지는 못했다.




특별히 기분을 내야 할 때, 또는 노원역에 갈 일이 생길 때 친구와 영스넥을 가자고 했고 반반씩 돈을 내어 먹고 나오면 맛있는 음식을 취했을 때의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새로운 친구를 끌고 데려온 날은 조금 더 기가 서는 듯했다. 영스넥 떡볶이를 영접하였으니 넌 또다시 오게 되리라- 하는 믿음으로.


떡볶이를 나눈 우정은 긍정적인 관계로 쉽게 발전하였고 우리는 이제 서로 친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튼 떡볶이에서 요조 작가는 영스넥 분식의 단골임을 밝혔고 사장님과 대화를 트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을 책에 적었다.


아끼는 음식을 야금야금 천천히 즐기듯 나는 그 글을 천천히 조금씩 읽어 내려갔다.

글을 거의 다 읽었을 때쯤 내가 기억하던 영스넥의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책은 이미 4년 전에 출간되었지만 그곳을 안 간지 벌써 15년 이상이 흘렀으니 나에게는 최신 소식이나 다름없었다.


낙서로 가득했던 벽은 새롭게 벽지를 발라 깔끔해졌고 다행히 메뉴와 맛은 그대로라는 것. 그리고 주인아주머니와 나눈 대화에서 이 가게가 2000년 4월에 오픈했다는 것을 알았다.


작가는 "고등학교 때부터 영스넥을 다녔습니다."라고 줄곧 주변인에게 이야기했지만 오픈 시기를 비추어봤을 때 20대부터 방문한 것일 수 있겠다는 계산으로 놀라는 부분이 있는데 나 역시도 그 글을 보고 매우 놀랐었다. 2000년이면 내가 처음 방문했던 시기와 얼추 비슷한데, 친구의 추천을 받아 그곳을 처음 갔을 때 내부는 이미 20년은 족히 된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영스넥은 테이블이 5-6개 정도 있었는데 나름 인기가 많아 들어갈 때마다 자리가 있기를 기도했다. 학원가에 위치해 있어서 저녁식사 시간이 훌쩍 넘은 시간에도 떡볶이를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은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얇디얇은 어묵이 떡볶이 소스에 절여져 중독성이 있었고, 모둠에 포함된 계란을 마지막에 부셔서 소스와 비벼 먹는 행위는 친한 친구와 갔을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영스넥의 모듬볶이

늦은 시간 학원이 끝날 때 즈음, 영스넥 먹고 갈래?라는 반가운 말이 들리면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하교와 하원의 묘미는 역시 떡볶이였다.




이제 영스넥을 가려고 하면,  큰 맘먹고 하루 연차를 내어야 할 것 같다. 다행히 같이 갈 친구를 섭외할 필요는 없어진 듯하다. 검색해 보니 1인분 메뉴도 생겼다! 거리가 있어서 가져오는 도중에 맛이 떨어지니 무조건 먹고 올 것이다. 다시먹으면 익숙한 맛일지 새로운 맛일지 설렘이 올라올 지경이다. 당분간 떡볶이 원정 갈 곳이 아른거리면 외롭지 않을 것 같다.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즐거워진다. 에세이 쓰기도 그랬고 에세이 읽기도 그랬다. 에세이 읽기로 만난 과거의 떡볶이는 현재의 버킷리스트가 되었다. 좋아하는 것들로 이뤄질 앞으로의 채워짐이 기대된다.





(사진 출처 : 네이버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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