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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을마음 Nov 21. 2023

어느 날 천사가 너에게 와서

하나의 노래 가사가 새로운 영감을 주는 날이 있다. 언젠가 작가님의 북토크를 지원하러 나간 자리에서 행사를 앞두고 한 곡을 반복해서 틀어 둔 곳이 있었는데, 페퍼톤스의 ‘공원여행’이었다.     


학교 앞 정류장을 지나

작은 횡단보도를 건너면

오른쪽 골목이 보이지

그 길로 쭉 들어가 봐     


그 길에서 공원을 찾아 그 길에서 새로운 상쾌함을 얻는 이야기가 담긴 노래였다. 싱그러운 노래와 시원한 사운드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 노래를 들은 누구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일에 착수했다. 네이버 지도를 열고, 정류장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공원이 나오는 장소가 있는지 대학교 정문 앞을 하나하나 찾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노래 속에서만 나올 것 같은 그런 공원을 하나 찾아서, 휴일 아침에 그 대학 앞으로 가서 가사대로 걸어 봤다. 지도로 본 것과 현실은 조금 달라서 산길로 올라가긴 했지만, 덕분에 가사처럼 맑은 공기와 상쾌한 바람을 더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서울 어딘가에 나만의 힐링 공원을 한 군데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십 년 가까이 지난 아직까지, 나처럼 그 공원을 찾아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공원여행’이라는 이름의 카페는 없으니 말이다. 언젠가 그 공원 옆에 카페를 차리고, 카페 이름을 ‘공원여행’으로 해야겠다.     

 

가끔 과거의 내가 만든 이 엉뚱함이 떠오를 때마다, 가사를 보고 장소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이 노래로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마법의 성’을 들으며 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공원여행만큼 독특한 상상을 하게 한 노래가 있는데, 공원여행보다 십 년쯤 더 전에 나왔다. 

여행스케치의 ‘기분 좋은 상상’이라는 노래다.      


어느 날 천사가 너에게 와서

너의 소원 하나를 들어 준다고

묻는다면 

어떻게 말할래?     


이십년 전 친구가 들려 준 노래는 오랫동안 종이비행기, 솜사탕, 별빛, 달빛, 머리핀 등의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이 머리가 아닌 피부로 와 닿을 나이부터 이 노래는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노래가 되었다. 과연 천사가 와서 소원을 들어 준다고 하면, 나는 만족스런 대답을 바로 할 수 있을까?     


공원여행과 함께 이 노래를 자주 흥얼거리던 무렵, 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벌여 보았고 크고 작은 실패들을 겪고 있었다. 한번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들을 바꾸고 싶어서 내가 직접 운영자가 되어 보려고도 했다. 극단으로 치우치는 사람들의 글을 필터링할 수 있으면 모두가 예쁜 말을 쓰지 않을까 싶어서 한 작은 사회실험이었다. 잘 되진 않았다. (유튜브 알고리즘 이후의 시대를 보니, 잘 됐어도 예쁜 말이 나오는 공간은 아니었을 것 같다)     


이것저것 시도하는 상황 속에서 마지막(?)으로 준비한 책방. 지금은 잘 하고 있지만 아직은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알 수 없었던 그 시간 동안, 조용히 책방 오픈을 준비하던 시간에 문득 ‘기분 좋은 상상’의 2절이 떠올랐다.     


어느 날 천사가 ‘또다시’ 와서

너의 소원 하나를 들어 준다고

묻는다면 

어떻게 말할래?     



천사는 언제까지 찾아와서 기회를 줄까? 과연 이 책방은 잘 될까? 7전 8기라는 말은 정말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다 어느덧 철학적인 질문을 나에게 던지고 있었다. 만약, 천사가 너에게 와서 이렇게 말한다면? 

    

 “너는 ‘이건 분명 된다’ 싶은 일을 일곱 번 실패할거야. 

그리고 여덟 번째 ‘된다’ 싶은 일에서 마침내 성공할 거야.”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이 축복 같기도 하고 저주 같기도 한 이 문장을 만드는 데 이르렀을 때, 나는 그간의 낙담을 조금은 희망으로 바꿀 수 있었다. 아직 일곱 번 넘어지지는 않았으니까. 천사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내가 못 들은 거겠지? 하고 지금 하는 일을 ‘무조건 성공해야 하는 일’에서 ‘과정’으로 조금 더 가볍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비록 작은 가게를 운영할 뿐이지만, 넘어져도 된다, 넘어질 수 있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는 건 큰 힘이 되어 주었다. 특히 크고 작게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 필요한 말이 되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책방지기가 될 수 있었다. 언젠가 멋진 일에 도전하는 친구들에게 내가 저 말을 지혜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천사로 생각할지 악마로 생각할진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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