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2년 차다. 회사로 비교하자면 여전히 초보딱지를 떼지 못한 사원급에 속한다.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쓰고 갈고닦아야 하겠지만, 의지 부족인지 밥 먹고 사는 현업에 더 치중해서인지 여전히 초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주일에 글 한 편을 쓴다. 어쩔 때는 그 마저도 놓친다. 이렇게 자리를 잡고 마음을 먹으면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앉아서 쓸 수 있지만 그 마음을 먹기가 때로는 어렵기도 하다. 8시간 넘게 책상에 앉아 일을 마치고 나서 집안일을 돌본 후 남는 여유 시간을 또다시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때로는 글쓰기를 망설이게 한다.
그래도 글을 써야 한다면,
글을 쓰기 전과 글을 쓴 이후의 삶을 조금 들여다보면 답이 나올지 모르겠다. 나는 글쓰기를 접하기 전, 회사를 다니고 아이를 돌보는 일하는 엄마의 일상 외에 이렇다 할 취미가 없는 사람이었다. 사실은 취미라는 이름을 붙일 대상을 만들 에너지가 없었다.
엄마의 역할이 붙여진 이후로 모든 것에 지쳐있었다. 결혼 전, 몇 년간 지속했던 주 2회 운동도, 친구-동료와의 모임도, 가벼운 혼자만의 외출도 어느 순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집중할 곳은 여기. 내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챙겨야 할 것들이 넘쳐났고 그것들을 모두 해내고 나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회사와 집. 이 두 곳에서 잘 해내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건 너무 큰 욕심이었다는 것을 몇 년이 지나고 몸이 아파와서야 깨닫고 말았다.
쉬지 못하는 생활의 종착을 꿈꾸며 육아휴직을 했다. 아이 식사를 챙기고, 집안일을 하는 평범한 일상을 가져 본다는 건 꽤 설레기까지 했다.
휴직 13개월 동안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냥 쉬자. 쉬어보자.
쉰다 = 회사일을 안 한다.
회사일을 잠시 쉰다는 상상은 직장인에게 종종 일상의 도피가 되곤 한다. 회사일을 안 한다는 게 정말로 어떤 의미인지, 쉬기 전 까지는 알 수 없었다. 단순히 놀 수 있다!라고 생각하며 흥분에 차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늦잠과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고, 아이도 돌보며 쉬는 상상을 하며 꿀 휴가에 대한 기대에 차 있었다.
쉬는 기간 동안 무엇을 하지 않는 것에 것에 목표를 두었다. 아이와의 시간, 집안 청소나 정리 같은 일들만 하고 버킷리스트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쉴 때 버킷리스트가 있다는 건 또 다른 숙제를 나에게 안겨주는 것이니까.
그렇지만, 잘 쉬는 건 너무도 어렵다.
12년의 긴 근무기간 동안 3개월 출산휴가를 제외하고는 쉬어본 적이 없었다. 다른 말로 해석하자면, 성인이 된 어느 순간부터 회사 업무 외엔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꽤 오랜 기간, 회사일을 하면서 성취감, 자존감 등을 얻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괜찮은 회사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매 순간 노력했다.
그런데 막상 회사라는 영역이 사라지니, 나는 코로나 팬데믹 같은 기분을 겪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엄마의 역할 외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그제야 비로소 내가 보였다. 하루의 시간을 회사가 아닌,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 나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찾아야 하는 것인지. 나의 인생 목표는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던 사람인지 물음표가 여러 개 던져졌다.
쉬는 시간조차 무엇을 하며 보내야 할지 몰랐다. 주어진 일 외에 자신을 위해서 투자한 시간이 그만큼 적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동안 지극히 현실에 집중하여 살았음을 깨달았다. 항상 해오던 일이 사라졌을 때, 그러니까 비단 육아휴직이 아니라 퇴사, 은퇴를 맞이했을 때에 대한 대비가 있는가? 나는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었다. 미래에 대한 준비, 앞으로의 계획들은 잠시 접어둔 채 현실만을 쫒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 나와의 약속을 깨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불안해서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일단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사이드잡 프로젝트, N잡러, 퍼스널브랜딩, 투자서, NTF, 메타버스 등 핫한 키워드들을 찾아 책을 검색하고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쓰고 싶은 욕구가 점점 더 커졌다. 기록의 중요성, 써야 기억에 남는 것, 글 쓰는 사람만이 무엇인가 남길 수 있다고 책은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특별한 재주가 없는 나에게 글쓰기는 그나마 도전해 볼 만한 영역이었다. 유행 따라 SNS를 잘도 옮기면서도 유독 관심 갖지 않던 블로그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무엇을 쓸 수 있을까?
글쓰기가 주는 힘
글쓰기를 시작하고 나서는 난감한 하루에 활력을 조금씩 찾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한 장이 글이 결과물로 나온다는 것이 꽤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오늘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나만의 계획이 생겼고, 스스로 무엇을 해봐야겠다는 의지도 생겼다.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해야 했고, 글 모임도 시작하여 스스로에게 숙제를 주었다.
멋있는 문학 작품을 쓸 욕심은 없다. 에세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일기가 될 수도 메모의 한 구절일 수도 있는 빈틈 투성이인 글이 대부분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아름다운 비유의 표현은 언제쯤 따라갈 수 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IT업계 기획자로써 개발 용어가 섞인 대화를 종일하고 있으니 이렇게 마음을 표현하고 사물의 특별함을 전달하는 것에는 배워야 할 점이 너무도 많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데에는 근본적으로 나를 위한 이유가 크다. 내가 조금 더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글을 계속 써야겠다는 의지이다.
글쓰기 5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때, 복직을 했다. 13개월을 쉬고 난 회사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변화되어 있었다. 없던 복지가 생기고, 모르던 팀원이 우리 팀이었고, 직속 상사도 바뀌었다. 새로운 업무와 업계 상황들이 변했어도 별로 두렵지 않았던 것은 글쓰기 덕분이었던 것 같다. 글쓰기를 하려면 읽어야 했고, 배울 거리를 찾고 써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무언가를 체득하고 있었다. 이전 보다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다시 사회로 나갔을 때 큰 힘이 되어주었다.
복직 후 이전만큼 글 쓰는 시간을 만들기는 어렵다. 하지만 여전히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집과 회사 사이에 나를 만들어 주는 건 여전히 글쓰기가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당분간 읽고 쓰는 것을 멈출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