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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신세계, 삼위일체용 특수 나침반으로!

by rainstorm

글쓰기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매력적인 주제문에 있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글쓰기에 금방 탄력이 붙는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 후 뭔가 부족해서 뇌를 풀가동해 보니 주제문뿐만 아니라 글의 목적이라는 나침반의 필요성이 심장 깊숙이 박혔다. 걸음마가 아닌 달리기가 가능해졌다. 그렇게 쌍발 엔진을 활용했을 때 글쓰기는 훨씬 빠른 속도로 뛰어감을 느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또다시 왠지 글쓰기를 하는데 거침없이 날아다닐 수 있는 히든카드가 더 있을 것 같았다. 그때 그믈에 걸려든 것이 바로 순서였다. 다시 말해 주제문, 글의 목적, 글의 순서라는 세 개의 나침반을 동시에 작동시킬 수 있는 삼위일체용 특수 갓침반이 있을 때라야 글쓰기의 신세계라는 숙제를 극복할 수 있음을 눈치채게 되었다.



1. 글쓰기의 알파이자 오메가, 주제문의 힘!


정보형사였던 나는 매일 반복되는 업무의 굴레, 그것은 망치였고 나는 못이었다. 그날의 활동사항을 보고하는 일이 하루의 미션이었고, 주어진 시간 내의 보고서 작성, 내 머릿속 모든 지식을 짜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었고 내 영혼을 갉아먹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여전히 글쓰기가 버거웠고 숱한 시간과 세월을 도난당했다. 「어떻게 하면 강물처럼 막힘없고, 더 정확하게 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의문은 풍선처럼 점점 부풀어 올랐다.


어느 날, 보고서를 쓰다 보니 어떤 때는 글의 흐름이 끊어지는 느낌이었고, 또 매일 반복되는 업무의 굴레, 그것은 망치였고 나는 못이었다. 어떤 때는 중요한 메시지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그렇게 고민 해탈의 경지에 있을 무렵, 문득 머릿속에서 전구가 켜짐으로써 글쓰기 악몽에서 벗어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주제문을 잘 정리하지 않으면 글쓰기가 산으로 간다」는 사실이었다.


주제문이 어둠 속에서 등대처럼 글의 방향과 길을 잡아주고 밝혀주고, 나머지 내용들은 그 주제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깨닫고 눈알이 튀어나올 뻔해서 순간 넋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쓰레기와 물건의 경계가 모호하듯 주제문에 관한 여러 내용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랐다. 머리는 아팠지만 관련 이론서들을 찾아보며 준비운동 하듯 주제문에 대한 이론을 정리 정돈해 나 기기 시작했다.


각종 책과 자료들을 들여다보며, 주제문이 갖춰야 할 숨겨진 핵심 요소들을 X-ray로 촬영하듯이 들여다보았지만, 이론적인 접근은 오히려 머릿속을 백지상태로 만들었다. 수많은 정보와 조언들이 혼돈을 안겨주었고, 나는 점점 더 자신감을 잃어갔다. 과연 내가 정말 이걸 해낼 수 있을까?


숲을 못 보고 나무만 쳐다봄으로써 핵심과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영감이 떠올랐다. 더 이상 이론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결국 나에게 최적화된 방식이라야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간단하게 「오늘 보고서의 메인 요리, 핵심 of 핵심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담아 주제문을 완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질문이 곧 주제로 향하는 다리이자 씨앗을 심는 과정이었다. 그 순간 글쓰기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새로운 장을 여는 터닝 포인트를 맞이했다.


보고서 작성 과정을 단순화시켜 주어 그 덕분에 작성이 훨씬 수월해지고 LTE급 속도로 빨라졌다. 즉 주제문을 명확히 하는 것은 보고서 작성의 기초 공사와 같았다.


그렇게 주제문을 명확히 하고 나니, 슈퍼카 엔진이라도 단 것처럼 글 흐름이 막힘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 같았다.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흐름이 만들어졌다고나 할까.


주제문이 손에 익어 탄력이 붙기 시작한 후, 어깨에 곰 한 마리 얹고 다니는 것 같던 뻐근함이 사라졌다. 주제가 명확해지면서 글의 내용과 구성이 더욱 풍부하고 깊이 있게 다뤄져 글의 질적 수준을 향상하고 시간까지 절약할 수 있었다.


주제문이 엉성하면, 글 전체가 흔들리는 아킬레스건으로 전락하는 것이며, 주제문 작성에 심혈을 기울였을 때라야 고퀄리티의 글이 탄생하게 된다. 주제문의 소중함이나 존재 이유를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행복이었다. 주제문 없는 글쓰기는 암흑 같아서 단 한 줄도 쓸 수 없는 고문의 시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제문을 정립하니 자료 조사, 분석, 구성 등의 단계가 막힘없이 진행되어 글쓰기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지고 막혔던 혈액순환이 뻥 뚫리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주제문 중심으로 생각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업무에 대한 불안감이나 막막함을 해소하고 바닥이었던 자신감까지 풀파워 충전된 기분이었다.


2. 글쓰기의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주제문 활용기술로 인해 이제 글쓰기는 새털처럼 가벼운 문제가 되는 듯했다. 글쓰기만큼은 세상만사 다 잘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고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으며 세상이 내 편인 것 같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제문은 글의 방향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길잡이 역할은 물론 글의 내용을 판단하고 구성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노력이나 기대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했던 것인지 헛다리를 짚은 것인지 그런 허탈함이랄까. 아니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서 오는 씁쓸한 감정이랄까. 그런 것들이 나도 모르게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튼 글을 쓰는 과정에서 무언가 마음 한구석이 헛헛하고 허전해서 알맹이가 빠져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수사관이 증거를 찾고, 학생들이 인터넷을 검색하듯 내 마음속을 샅샅이 조사하여 그 허전함의 정체를 꼼꼼하게 밝히려 했다. 나는 마음의 풍경을 담아내기 위해 내 마음속 모자이크를 다시 맞춰보며 그 이유를 찾기 시작했던 것이다.


주제문이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2% 부족이랄까, 핵심 부재랄까. 뭔가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어 겉만 뻔지르르한 글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오랜 고민 끝에 수수께끼의 해답을 마침내 찾았다. 글쓰기의 핵심은 목적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글쓰기에서 목적은 글의 성패를 좌우하는 주제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으로써 글쓰기의 본질이 목적에 있었다. 즉 주제 없는 글쓰기뿐만 아니라 목적 없는 글쓰기 역시 방향 없는 항해와 같았다.


글쓰기의 매력과 진수는 무엇을 쓸 것인가에도 있겠지만 왜 쓸 것인가에도 있다. 주제는 내용을 채우는 것이지만 목적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두 개의 날개가 있어야 날아오를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


글쓰기의 목적을 더욱 구체적으로 정의했다. 글쓰기를 통해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명확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렇게 이유를 되짚어 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글쓰기를 계속할수록 인생의 시련 같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는 등 더 큰 난관에 부딪혔다.


목표(목적) 설정은 주제문 작성보다 훨씬 더 어려워 밤새 연구해도 답이 안 나왔다. 주제문은 구체적인 내용을 다루지만, 미지의 영역을 탐험해야 하는 목표는 추상적인 방향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때때로 그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이 뒤죽박죽 엉켜 혼란스러웠다. 너무 어렵게만 느껴져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을 정도로 막막했다.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까?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야 할까?라는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멘탈이 탈탈 털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갈피를 잡을 수 없고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 답답함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목적을 찾지 못하면 주제문이 아무리 명확해도 글의 완성도가 떨어질 것 같다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짓눌렀고 심호흡을 크게 하고 스트레칭도 해서 마음을 진정시켜보았지만 내 손은 드럼을 연주하는 듯 책상을 두드리는 초조함에 안절부절못했다.


길 잃은 아이처럼 방향 감각을 잃고 헤매지 않기 위한 고민 끝에, 나는 글쓰기를 할 때마다 먼저 「나는 왜 이 글을 쓰는가? 이 글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싶은가?」와 같이 목적을 되새기는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중심으로 글을 풀어가자, 막혔던 혈이 뚫린 것처럼 글쓰기가 술술 풀리고 수월해졌다. 주제문이 글의 방향을 정해준다면, 목적은 그 방향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 주고 글의 메시지가 더욱 강력해지는 등 글쓰기의 결실을 맺는 과정과 같았다.


그 두 가지 나침반이 서로 보완되면서, 그동안 가지고 있던 글쓰기에 대한 불안을 덜어내고 글에 대한 해방감과 자신감을 되찾는 등 글쓰기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말해 목적을 잊지 않고 글을 쓰자, 죽어있던 나의 글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듯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글이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듯했다.


글쓰기의 두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주제문과 목적이라는 두 가지 도구를 손에 쥐고 더욱 안정된 글쓰기를 했다. 그렇게 주제문과 목적은 글쓰기의 중심이 되었다. 그 덕분에 보다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쓴 글은 만족스러운 결과물로 이어졌다.


글쓰기는 결코 힘든 일이 아니었고, 오히려 나에게 숨도 쉬게 해 주고 즐거운 힐링의 시간도 되어주었다. 그 두 가지 나침반은 나의 글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매일같이 글쓰기를 하면서 나는 점점 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집중했다.


결국, 글쓰기라는 값진 경험을 통해 애벌레가 나비로 변신할 수 있었고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진정한 글쓰기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3. 흔들림 없는 삼위일체용 글쓰기 나침반을 휴대하자!


글쓰기에 있어 두 가지 중요한 나침반을 손에 쥐고 있어서 글쓰기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확신했으나 어느 날, 글쓰기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처럼 골 때리는 또 다른 고민이 나를 찾아왔다. 날아다니는데 필요한 뭔가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었다. 그렇게 더 높은 곳을 바라보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해야 했다.


나는 다시 한번 내 안의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는지 주의 깊게 들으며 내면의 외침에 응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새로운 생각을 찾아 쇼핑하듯 머릿속 골목골목을 누볐다. 깊은 바다는 생각보다 훨씬 더 넓고 깊기에 주제문과 목적을 가지고 글을 써가던 중에도 김 빠진 콜라처럼 어딘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두 가지 나침반은 글의 방향을 잡아주었지만, 여전히 글의 흐름이나 구성이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일관성 없이 왔다 갔다 했다. 「글을 어떻게, 어느 순서로 풀어나갈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이 문제에 대한 요술방망이 같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자료수집을 계속했다.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들이 순서라는 단어로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글을 쓰는 데 있어 단지 주제문과 목적만으로는 만족스러운 글을 쓴다는 것이 여전히 한계가 있어 그보다는 훨씬 더 깊고 복잡한 과정의 멘탈 강화 훈련이 필요했다.


글의 순서가 글 전체의 완성도를 좌우한다는 것을 뼈가 녹아내리듯 강렬하게 느꼈다. 나는 글의 흐름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순서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고, 또다시 글쓰기에 의문이 들고 어려움이 느껴졌다.


「순서까지 완벽하게 정리해야 할까?」라는 뒤숭숭하고 패닉 상태 비슷한 불안감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꿈을 향해 좌절도 포기도 하지 않고 나아갔다. 나만의 주도적이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글의 순서를 건축물을 짓듯이 쌓고 만들어 내고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주제문과 목적을 확고하게 정리한 후, 그에 맞는 내용을 어떤 순서로 풀어갈 것인지 단계별로 하나씩 껌딱지처럼 고민하며 정리했다. 「서론·본론·결론」이라는 전통적이고 획일적인 구조를 벗어나, 능동적으로 글의 각 부분을 배치하고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제문과 목적, 순서라는 세 축·삼위일체가 글쓰기의 길을 명확히 안내해 주고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후 글을 쓸 때마다 방향감각을 잃지 않고 흔들림 없이, 그 흐름을 따라 글을 수월하게 쓸 수 있게 되었으며, 글쓰기의 미로에서 일취월장의 발전적 고삐를 잡았다는 그런 확신에 차게 되었다.


주제문·목적·순서라는 세 가지 엔진이 동시에 작동하는 특수 나침반이라는 글쓰기 만능도구를 활용하자 핵심 내용, 글의 방향, 글의 흐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나의 오른팔 역할을 해주었다. 이전과 달리 내가 쓴 글은 한층 구조적이고 논리적으로 탄탄해졌으며, 상대방에게 쉽고 원활하게 전달되는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을·왜·어떻게라는 글쓰기의 핵심적 고민은 더 이상 고뇌의 과정이 아닌 기쁨이 되었고, 나아가 글쓰기의 본질을 이해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세 가지 나침반을 장착한 새로운 장비, 즉 특수 나침반이라는 든든한 지원군 덕분에 글쓰기 능력을 몇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었고 새로운 존재로 인간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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