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논증 등 글의 종류가 뭔지 따질 겨를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것은 하루 종일 울기 바쁜 갓 태어난 아기가 마라톤 코스를 걱정하는 격이었다. 내 소원은 딱 하나, A4 용지 한 장이라도 꽉 채울 수 있는 글근육을 키우는 거였다. 글쓰기 초보 시절의 나는 젓가락으로 국수를 집으려다 젓가락 끝만 열심히 맞대던 아이처럼 오직 긴 글에 낑낑거렸던 것이다.
긴 글을 쓸 수 있으면 글쓰기 천재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와, 이 사람 글 쓰는 근육이 보디빌더 수준이네! 와, 저 사람은 글 좀 쓰는군! 하고 감탄할 줄 알았으며, 장난 아닌 글쓰기 실력을 보유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긴 글만 쓰면 덧셈밖에 못하는 사람이 미적분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 후, 글쓰기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설명문, 논증문 뭐 이런 거 따로따로 구분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초보가 아니, 왜 똑같은 뜻인데 단어가 이렇게 복잡하게 여러 개야?라고 툴툴대는 것과 같았다. 글도 상황마다 요구되는 방법이 다르다는 걸 몰랐다. 쉽게 말해, 무조건 바나나 하나로 세상을 정복하려고 했던 원숭이 수준이었다. 젓가락질 좀 할 줄 아는 사람이 젓가락질이 뭐가 어렵냐? 며 능숙한 척 으스대는 것이라며 조롱으로 받아들였다.
대학과 직업생활은 나에게 설명문과 논증문의 중요성을 아주 톡 쏘는 탄산처럼 느끼게 해 주었다. 이걸 몰랐다고?!라는 따끔한 메시지를 날려 위기의식을 갖게 해 준 셈이다. 젓가락질만 할 줄 알았던 내가 젓가락으로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스테이크 앞에서 당황하는 꼴이었다. 글쓰기는 단순히 젓가락질이 아니라, 포크와 나이프는 물론, 심지어는 숟가락까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 하는 고난도의 식사 종합격투기임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대학교 시험 문제에서 이론을 설명하라니, 내 머릿속에 수천 개의 서랍을 하나씩 열며 어디 숨었어? 나의 지식아 어서 나오너라! 하고 외치는 기분이었다. 주장을 펼치라는 요구는 내 안에 깊이 잠들어 있던 셜록 홈즈를 흔들어 깨우며 자, 이제 내 차례가 왔어!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를 제시해!라고 소리치는 꼴이었다.
경찰의 정보나 수사 업무는 또 하나의 전쟁터였다. 나에게 이제 스파이가 되어 은밀하게 정보를 파헤쳐!라는 미션을 준 것 같았다.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설명해야 할 때는 대학 시절의 악몽을 복습하듯, 또다시 이 고통을 겪어야 하나? 하는 비명이 속에서 터져 나왔다. 논증하라는 요구는 내 안에 휴가 중이던 셜록 홈즈를 강제 소환하며 빨리 다툼 현장으로 복귀해!라고 채근하는 느낌이었다.
설명과 논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보니, 토끼를 잡으려면 토끼굴 속을 파헤쳐야 할 사람처럼 글쓰기 이론서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설명문과 논증문의 숨겨진 비밀들이 하나씩 드러났다. 설명인지 논증인지 구분하며 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게 되자, 설명문은 따뜻한 이모가 차 한 잔 하자! 고 손짓하는 것 같았고, 논증문은 냉철한 심판이 이건 맞고 저건 틀렸다 라며 칼같이 판결하는 느낌이었다.
설명 방식과 논증 방식, 이 둘은 흡사 낮에는 해님이 웃으며 인사하고 밤에는 달님이 조용히 책 읽는 그런 극단적인 차이를 보여줬다. 설명 방식은 독자들을 자, 이쪽으로 오시면 한국 역사의 한 장을 보여주고 있는 경복궁입니다~라고 외치는 관광 가이드처럼 역사의 세상으로 손짓하며 안내하는 느낌이자, 복잡한 기계의 작동 원리를 설명할 때는, 스스로를 이제 나는 천재 엔지니어야!라고 속삭이며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가는 모습이었고, 논증 방식은 내 말이 맞다니까? 라며 논리와 증거라는 갑옷으로 완전무장한 논리 전사의 기술을 자유자재로 펼치는 것이었다.
지난날 그토록 원했던 A4용지 한 장 분량의 긴 글쓰기 능력은 나 때는 말이야! 나 고대 유물처럼 박물관에 전시하거나 추억 속에 묻어둬야 할 운명에 처해졌다. 글쓰기 세계의 새로운 십계명을 손에 넣은 기분이었다. 설명문과 논증문의 작성법, 이 두 가지 철칙은 글쓰기 여정에서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자 멀리서 반짝이는 등대로, 이리로 와, 길 잃지 말고! 하고 외치는 것 같았다.
설명인지 논증인지 구분하며 글의 목적에 맞는 작성법을 사용하는 것은, 주부에게 밀가루랑 설탕으로 뭐든 다 만들어 보세요! 하고 던져 준 재료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과 같았다. 설명과 논증이라는 두 가지 재료를 가지고 다양한 요리를 해야 한다는 건 현실 세계에서 꼭 필요한 스킬이었지만, 그 중요성을 깨닫는 데는 세월이라는 조미료가 한참 필요했다. 결국, 시간이 지나서야 아, 이게 내가 앞으로 요리라는 여정을 떠나야 할 나침반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설명문과 논증문 구분 작성을 마스터했을 때, 축하합니다! 만능열쇠를 획득하셨습니다!라는 게임 속 안내 메시지가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묘사문과 서사문이라는 새로운 문들은, 열쇠가 있으니 우리가 저절로 열어줄게! 라며 문 스스로 내 앞에서 찰칵 열리는 듯했다. 설명문과 논증문의 구분 작성을 통해 얻은 논리적 사고력과 분석력은 묘사문과 서사문을 작성하는 데 필요한 초능력 장비가 된 셈이었다. 이제 글쓰기, 내가 접수한다! 는 느낌이랄까.
설명문, 논증문, 묘사문, 서사문 등을 익히는 과정은 뇌라는 헬스장에서 다양한 운동 기구를 돌려가며 뇌 운동과 근육을 키우는 느낌이었다. 각 문장의 특성 파악이란 이건 팔운동, 이건 다리운동! 하며 열심히 기구 사용법을 익히는 것과 같았다. 적절한 표현 방식을 선택하는 훈련을 하다 보니, 사고력이 어디선가 날카로운 칼날이 빛난다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기분이었다.
설명문으로 정보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자, 여기 커피 메뉴부터 보세요! 하고 친절하게 메뉴판을 건네는 느낌이었고, 논증문으로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치는 건 형사가 이거 보세요! 증거는 여기 있습니다! 하며 범인을 향해 자신감 있게 외치는 것 같았으며, 묘사문으로 감정을 생생하게 공유하는 것은 여기 영화 속으로 직접 들어오세요! 하고 영화 티켓을 건네는 기분이었다. 또한, 서사문으로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달하는 능력은 자, 이젠 내가 재밌는 이야기 들려줄게! 하고 캠프파이어 앞에서 스토리텔러로 변신한 듯한 느낌이었다. 이것은 타인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깊이 있는 소통을 가능토록 하는데 꼭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