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퇴근 시간 무렵이면, 정보형사 책상 위엔 하얀 도화지 같은 보고서가 펼쳐졌다. 정보형사는 매일 업무가 끝난 후, 그날의 활동을 보고서로 작성하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기 때문이다. 주어진 주제에 대해 상세하게 조사하고, 결과를 논리적으로 정리해야 하는 일은 나에게 있어서 일상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하곤 했다. 오늘의 활약상을 깨알같이 적어 넣어야 내일 아침 커피가 달콤할 텐데... 맙소사! 오늘은 도화지에 그림 그릴 물감이 없다! 텅 빈 머릿속, 깊은 한숨만이 메아리칠 뿐이었다.
주어진 주제는 있지만, 그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쓸거리가 없다니...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자리에 앉아 고민에 빠졌다. 쓸거리가 없어 펜은 놀고 있고 나는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제를 정했지만, 그 주제에 대한 자료가 너무 부족하고, 방향도 정할 수 없었다.
이럴 수가! 내 머릿속엔 지우개로 싹 지운 듯 아무것도 없어 나는 책상에 엎드려 통곡해야 할 상황이었다. 컴퓨터의 커서만이 깜박깜박 춤을 추며 놀고 있고, 내 머리와 눈에선 능력 부족으로 인한 한으로 얼룩져 있었다. 주제는 저 멀리 몽환의 세계로 떠나고, 내 정신줄도 함께 가출했다.
하루가 지나서, 나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주제를 다시 한번 깊게 들여다보았다. 내가 선택한 주제는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회) 00지회 측과 00조합 측의 첨예한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문제 해결이었다.
이 주제는 다수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만큼 넓고 방대한 영역을 다뤄야 했고, 어떤 각도에서 접근할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슈퍼컴퓨터를 풀가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텅 빈 머릿속에 다시 데이터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오늘의 주제는 철거민 VS 조합의 불꽃 튀는 한판 승부로 했다.
갈등해결?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있을까?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양측의 주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여러 자료를 검토하면서, 갈등문제가 어떻게 확산되어가고 있는지, 그 대책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나는 조금씩 생각의 실마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처럼 기존의 해결 사례를 통해 문제에 대응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옛날 옛적 갈등 해결사들의 비법을 찾아보니, 왠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아나는 등 완전 불가능한 미션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젠장! 자료들이 죄다 구름 잡는 소리뿐이잖아! 나는 자료 더미에 파묻혀 절규했다. 문제는 내가 수집한 자료들이 모두 매우 추상적이었다는 점이었다. 구체적인 데이터나 실질적인 사례가 부족했기 때문에, 글을 구체적으로 풀어 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때, 머릿속 전구에 불이 번쩍 들어왔다. 그래! 정보형사는 팩트도 중요하지만, 팩트를 연결하여 요리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이 떠오르자, 헝클어진 퍼즐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분이었다.
나의 역할은 단순히 자료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연결하는 것이란 사실을 떠올리자, 머리가 띵하고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재건축이나 재개발 현장에서 발생한 유형별 문제들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했다. 예를 들어, 양측의 원만한 해결을 위한 결정적인 자료 유형, 협상 결렬 시 위법 유형 및 처벌 사례 등을 중점적으로 다뤄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과거의 갈등 해결사들을 소환키로 했다. 나는 현미경 눈으로 과거 사건들을 샅샅이 분석해 나갔다. 누가 어떤 자료로 웃고 울었는지, 누가 법정에 섰는지, 낱낱이 파헤쳐 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주제를 좀 더 세분화하고, 각 세부 사항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철거민과 조합 측의 행동 방식 등을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 다양한 각도로 주제를 바라보며, 나는 글의 방향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
나는 갈등 해결 탐정으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철거민과 조합의 심리 상태를 분석하고 행동 패턴의 예측은 물론 바둑이나 장기처럼, 다음 수 까지 예측하며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이제 널브러진 사건들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많은 내용들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나는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점인 연결과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주의 깊게 생각했다. 양측 갈등이 단순히 이해관계에 그치지 않고, 사회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드라마처럼 강조할 필요를 느꼈다.
드디어 보고서를 완성했다. 갈등의 원인부터 미래 전망까지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닌, 논리적인 팩트 폭격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양측 갈등을 포함한 여러 가지 부분의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 설명했으며,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도 예측하며 보고서를 마무리했다.
쓸거리가 없다고 느낄 때,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며 주제를 확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기며, 내일의 보고서를 준비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텅 빈 머릿속에서 위대한 보고서를 그렇게 탄생시켰다. 정보 형사로써 이때 어깨가 으쓱해짐을 느꼈다. 글쓰기에서 쓸거리가 없다고 느껴지는 상황은 두 가지에 주요 원인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것은 주제와 관련한 핵심 정보 부족과 디테일 정보의 결핍이다. 핵심과 디테일은 탄탄한 글쓰기의 두 축임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또 어떤 텅 빈 머릿속이 나를 기다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