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 년 넘게 살면서 힘들었던 때가 몇 번 있었다. 첫 번째는 대학에 실패했을 때였고, 두 번째는 허리를 크게 다쳐서 입원을 했을 때였다. 세 번째는 이직을 할 때였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 문제가 생겨서 쫓겨나다시피 퇴사를 했다.
첫 번째, 두 번째는 젊었지만 젊다고 모든 걸 이겨 낼 수는 없었다. 그때는 그게 가장 죽을 만큼 힘든 것이다. 세 번째는 가정이 있는 가장(家長)이었으므로 고통의 차원이 달랐다. 우리 집은 외벌이 었고 딸은 다섯 살, 아들은 두 살이었다. 퇴직금 2천만 원이 생활비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몇 개월을 버텼는데 내 생에 가장 비참한 시간이었다. 20대의 아르바이트와 40대의 아르바이트는 다르다. 한 여름 35도가 넘는 폭염에 오토바이로 배달을 했고,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 주방에서 설거지를 했다. 횟집에서도 20대 직원에게 모욕적인 말을 들으며 일했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비참함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여기가 아닌데 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지내다 보면 점점 무기력해지고 폐인이 되어간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으며 죽음도 생각을 하게 된다. 음식만 먹으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야뇨증(夜尿症)도 생겼다. 그때 처음으로 맞벌이하는 집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5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던 어느 날 배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력서를 낸 회사에서 면접을 보자는 전화였다.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지 않은 회사였지만 절박한 심정으로 취직을 했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 10년 동안 일하고 있다.
이쯤 되면 과거에 힘든 역경을 딛고 일어나서, 사업에 성공해 수백억 대의 자산가가 되었다는 둥, 투자에 성공해서 큰 부를 이루었다는 등의 성공스토리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삶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도 아등바등 살아내고 있는 샐러리맨이다.
순간의 선택을 잘못해서 한 번 삐끗하면 인생은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빠진다. 예전에 그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강남의 60평 아파트에 살던 가장이 실직을 하여 45평으로 이사를 갔는데 신변을 비관하여 자살을 했다고 한다. 삶은 그런 것이다.
찰나를 잘 견디어 내고 이겨내야 한다. 찰나가 모여 인생이 된다. 이루는 것은 수 십 년이 걸려도 잃는 것은 똑딱하는 1초 만에 내 삶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 그때 취직이 안되거나 취직을 했어도 악재가 계속 지속되었다면 지금의 이 부장은 없었을 수도 있다.
삶은 비정한 것이다. 먹고 놀다 생을 마감하기엔 그간의 노력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의식 있는 사람들은 의미 있는 일을 하다가 죽는가 보다. 나도 조금씩 노력을 해야겠다. 일단 살아야 한다. 살아 있어야 화(火)도 낼 수 있고 좋은 일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