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온다.
딸은 오늘도 친구 집에서 자고 오겠다고 했다. 부모로서 말을 안 할 수가 없어서 소심하게 카톡을 남겼다.
"딸아 외박이 너무 잦다."
아이들이 어릴 때도 이런저런 고민을 했다. 어디까지 되고 어디서부터 안될까? 기준을 정한다는 것은 어렵다. 관심도 적당해야 한다. 어떤 인간관계든 마찬가지다. 과해도, 모자라도 안된다. 고등학교 2학년이면 다 컸는데 여전히 그런 것들이 있다.
간섭하려는 게 아니고 걱정돼서 인데.
딸이 이해해 주면 좋겠다.
딸이 성인이 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면 내가 해 줄 말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데일카네기 "인간관계론"을 추천해 주는 정도가 다이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들은 누워서 공부를 했다. 보통 우리가 누워서 공부를 한다고 하면 배를 깔고 공부를 한다고 상상하지만 아들은 등을 깔고 수학 문제지를 푼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라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으니 소용없었다.
그러던 아들이 드디어 책상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감동이었다. 방도 좁고, 책상도 작아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드디어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삐뚤어진 침대보를 바로 정리하고 방청소를 하는 것이었다.
책상에는 항상 과자 봉지가 수북이 쌓여있고 바닥은 머리카락이 있다. 매일 청소하는 엄마는 매일 화를 낸다. 그런데 아들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것으로 감동을 받아도 되는 것인가? 중학생 아들이 나는 여전히 사랑스럽다. 핏줄이라는 건 특별한 것이다.
주말에 명동과 종로일대를 쏘다니다가 왔다. 외국인들이 많다. 어렸을 때 교회를 다녔는데 크리스마스가 되면 새벽송이라는 것을 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새벽에 성도들이 집집마다 찾아가 찬송가를 부르고 예수의 탄생을 알리며 축복을 전하다.
요즘은 새벽송이 없다. 새벽송뿐 아니라 많은 낭만들이 사라져 가서 아쉽다. 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외국인만 늘어났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나에게 뭐가 좋아진 건지 잘 모르겠다. 편해진 것이 좋아진 것이라고 하면 좋아진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