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년 0월 0일
문득 "젊음"이라는 것을 생각을 해 본다. 젊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이 좋은 건지 모르겠다. 생각을 한다는 것이 요즘은 두렵다. 갑자기 다른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에게 흡수되어 살아가는 것이 가장 수월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00년 0월 0일
공사현장에서 험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고개가 숙여진다. 그들은 정말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다. 적어도 한탕주의와 불법으로 돈을 벌지 않는다. 땀 흘려 일해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다. 무슨 일을 하든 자신만 올바르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00년 0월 0일
허리를 다쳤다. 움직일 수가 없다. 입원한 지 열흘이 넘었는데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지러움증, 구토, 식은땀이 난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버티기엔 너무 통증이 심하다.
00년 0월 0일
입원 3주
다시 C-T 촬영을 했다. 4월이다. 병원 창문 틈으로 4월의 밝은 햇살이 들어온다. 살면서 병원에서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몸은 많이 불편한데 정신은 평온하다. 진통제 탓인가 보다. 적잖은 입원비와 치료비가 부담이다. 일을 하고, 경제적으로 독립을 해야 할 시기에 병실에 누워 부모님께 짊이 되고 있다는 것이 속상해 미치겠다. 다시는 병실에서 아침을 맞고 싶지 않다.
00년 0월 0일
입원 5주
낫고 싶다. 약기운 때문일까? 오늘은 몸이 무척 가벼웠다. 여러 사람들이 문병을 왔다. 친구, 가족, 목사님, 동창과 후배들. 고마운 사람들이다. 사람은 좋은 일보다 어려운 일에 찾아가야 한다는 어머님의 말씀이 떠 오른다. 빨리 낫고 싶다.
00년 0월 0일
입원 7주
지루한 싸움. 다시 통증이 찾아온다. 5번 요추와 1번 천 추. 회복이 늦어 답답하지만 그래도 감사하다. 아파서 누워 있어 보니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이 보인다. 오후에 재진이 있었고 담당선생님은 퇴원을 동의했다. 퇴원하겠다는 나의 강력한 의지에 수긍한다는 표정이다.
00년 0월 0일
무통증이고 싶다. 장애도, 불구도 아닌 이 통증이 무척 힘들게 한다. 가끔, 다른 일들에 몰입해 있다가 환자임을 깨달을 때 힘들어진다. 생각보다 긴 싸움이 될 듯싶다.
00년 0월 0일
터보라는 가수가 있다.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춘다. 빠르고, 강하고, 힘찬 노래가 너무 좋다. 뭔가 몰두를 할 것이 있다는 게 좋다. 듀스와 터보는 요즘 내게 최고의 낙이다. 누워서 할 수 있는 게 라디오 듣고 TV 보는 것 밖에 없다. 이 나이에 연예인이라니.
00년 0월 0일
의술인가, 기술인가? “의사”라는 것의 직업. 무엇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의사 또한 의술을 펼치기 전에 올바른 인격을 형성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더구나 환자를 상대하는 의사라는 직업을 갖은 사람은 더 그런 자질이 필요한 것 같다.
가끔은 화가 난다. 의사라는 직업은 훌륭한 직업이지만 훌륭한 의사를 본 적은 별로 없다. 환자를 배려하는 진정한 의사는 많이 보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빨리 나을 수 있을까? 의사는 그 방법을 알고 있을까? 혹시 모르는 것은 아닐까? 모르니까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00년 0월 0일
나보다 경제적으로도 부족하고, 육체적으로도 온전치 못 한 사람들이 나보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상에는 힘들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이 참 많다. 정말 훌륭한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최상-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최선-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
그래서 정말 고수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00년 0월 0일
TV를 보니 휠체어를 타고 목발을 짚고 장애인이 노래를 부른다. 그들은 장해를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장해를 갖은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행복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것을 늘 잊지 말고 살아야 한다. 지금껏 누렸던 당연한 행복들이 새삼스럽게 그리운 날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병실에서 아침을 맞고 통증을 호소하며 살아가고 있다. 시한부 삶을 사는 분도 계실 것이고 중증 장애가 있는 분도 계실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런 불편함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오히려 남을 더 생각하고 배려한다. 그리고 더한 어려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다.
없는 사람이 더 없는 사람을 위해 기부를 하고 나누는 것도 같은 맥락 같다. 리더들은 뛰어난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과 공감능력이 있어야 한다.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리더가 아니다. 돌이켜 보면 나는 무척 고통 스러웠지만 그 때 통증은 별 것도 아닌 통증일 수도 있다. 살면서 그것보다 백배는 더 고통스러운 통증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행복이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추에이션,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여행이나 맛집투어, 기타 온갖 소유물들은 옵션이다. 요즘처럼 난방비 폭탄을 맞으며 난방비를 걱정을 하면서도 따뜻한 이불속에서 잠자리에 들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