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론(戀愛論)
2007년 4월
요즘은 결혼 적령기라는 말이 없지만, 10년 전만 해도 결혼은 일종의 시스템이었다. 몇 살에 연애해서 몇 살 안에 결혼. 그리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 소위 말하는 결혼 적령기에 결혼을 못하면 어떤 문제가 있어서 결혼을 못했나? 하는 의심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인식이 달라졌다. 결혼을 못하는 것이 아니고 안 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솔로의 이유도 못나서가 아니고 잘나서 솔로인 경우도 많다. 신체적, 경제적 열등과 무능의 하드웨어적인 요소보다 가치관이나 성격, 종교 등의 소프트웨어적인 요소가 이유인 경우가 많다.
주위를 보면 연애를 잘하는 사람들은 잡기술에 능하다. 잔머리도 잘 굴린다. 예를 들면 도덕적으로 지탄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2명 이상의 이성과 교제를 한다. 그래서 맞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을 두루 만나 보는 것과 동시 다발적으로 여러명을 만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편의상 여러 사람을 다양하게 만나는 것을 복수연애라고 한다면 양다리는 시작부터 결혼 할 때까지 동시에 두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저의가 의심되고 고의성이 있다는 얘기다. 복수연애는 시간이 지나면서 한 사람으로 압축되지만 양다리는 결국 한 명의 폐인이 나오는 구조다.
비윤리적이고 쓰레기 같은 행위다. 문제는 순둥이들인데 순둥이들은 태생적으로 복수연애도 못한다. 도덕적이므로 양다리는 발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만 목을 매다가 헤어지면 상처를 받고 원망하다가 자멸한다. 원칙적으로는 한 사람만 사귀고 한 사람에게 올인(all in)하는 게 맞고 연애의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대방은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을 사귀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연애도 정글의 세계다. 물론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준비 하고 있어야 한다. 연애의 세계에도 별의별 경우가 다 생길 수 있으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천운이 따라 지고지순한 사랑을 만나 결실을 맺는 다면 그 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결혼이라는 결과를 놓고 본다면 양다리를 걸치는 부류들이 확률은 높을 수 있다. 하지만 양다리로 일어선 자 양다리로 망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단, 이런 경우는 불가항력이다. A라는 사람과 좋은 감정으로 만나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 운명처럼 다가온 B...... 마음은 A에게서 멀어지고 어느새 나의 마음에는 B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
마음은 이미 B에게로 돌아서고 있다. 이런 경우 어쩔 수 없다. A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감정은 억지로 조절할 수 없다. 억지로 결혼해서 이혼하는 것보다 연애할 때 헤어지는 편이 낳다. 이런 마음으로 A를 만난다는 것은 오히려 잔인한 짓이다. 동정은 사랑이 아니다. 연애는 이처럼 복잡다기한 상황들이 언제 어떻게 생길지 모르는 아주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독신주의가 아니라면 대부분 결혼을 하고 살게 된다. 시기가 빠르고 늦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빠르다고 좋아할 것도 없고 느리다고 슬퍼할 것도 없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생각을 바꾸면 그렇게 어려울 것 없다. 항상 좋은 연분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인연은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다.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다가 나타날 수도 있고, 급히 볼일을 보러 간 화장실 앞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가 극장 매표소 앞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늘 준비하고 있자. 나타나면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일생에 단 한번 지나간다는 그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