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가고 다시 평화로운 일상이 찾아왔다. 극한의 더위는 한 풀 꺾였지만 방심하기는 이르다. 지난 2주간은 폭염으로 고생을 했다. 한 낮 최고 기온은 37도를 웃돌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등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에어컨도 없는 창고에서 선풍기 하나를 의지한 체 열심히 박스를 포장하고 물건을 날랐다. 남성의 땀냄새에 매력을 느낀다는 여성도 있다던데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온열질환으로 인해 병원에 실려갈 수도 있고, 폭염에 쓰러져 입원한 동료도 있었다. 일이 고된 것은 사실이나 어엿 비 여겨 동정하거나 측은 지심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들은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며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을 하는 사람도 실제 자세히 들여다보면 편하고 즐겁지만은 않다. 나도 과거에는 컴퓨터 앞에서 하루 15시간 이상 작업을 했지만 즐겁지만은 않았다.
즐거움과 보람은 잠시다. 나머지 시간들은 힘들어도 잡생각 하지 말고 그냥 하는 것이다. 지금도 가끔 마우스를 잡고 실무에 투입되기도 하지만 그때처럼 광란의 클릭을 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오히려 몸을 움직이며 포장을 하고, 지게차로 물건을 적재하는 일이 훨씬 즐겁다.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즐거움이다. 지식도 그렇지 않던가? 새로운 지식이 머리에 들어오면 마음이 뿌듯하고 즐겁다.
내가 일하는 곳은 경기도 소재의 산업단지 내 물류센터이다. 과거에는 디자인을 했지만 지금은 이런저런 잡다한 업무를 한다. 나쁘게 말하면 잡부요, 좋게 말하면 멀티 플레이어인 셈이다. 스페셜리스트가 되려면 아주 특별해야 한다. 어설프게 특별한 것보다는 이것저것 조금씩 하는 게 살아남는 데는 용이하다. 매일 현장에 나가서 의무적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리자로서 현장 사람들과 호흡을 같이 해야 한다.
며칠 전에도 37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현장에 나갔다. 그 들과 땀을 흘리며 일하다 보면 유대감도 생기고 보람도 느낀다. 이럴 때는 특히 군대에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 군대에서 했던 훈련에 비하면 재미로 하는 수준이다. 현장의 노동자를 접하다 보면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된다. 국적을 초월한 인간애, 가족애, 혹은 약자들의 입장에서 그 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들을 이해하지 않고 일만 열심하라고 하면 안 된다. 그 들의 삶 속에 들어가서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아픈 곳은 없는지, 힘든 일은 무엇인지 파악하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간신히 마음을 열어 놓는다. 몇 년을 함께 일한 필리핀 외국인 노동자는 지금 필리핀에 자기 건물을 세웠다고 자랑을 늘어놓기도 한다. 여름휴가 때가 되면 자기 나라로 놀러 오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리더들이 해야 할 일은 미숙한 그들을 질책하는 일이 아니라 아우르고 격려해야 한다. 더우면 시원한 음료나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며 사기를 진작시켜 주어 한다. 함께 땀을 흘리며 진정성을 갖고 일을 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신이 나서 더 열심히 일 한다. 내가 존중받고 싶으면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내가 처음 사회생활을 했을 때처럼 구박하고 윽박지르며 일하던 시대는 끝났다. 그때는 거래처와 통화를 하다가 수화기를 집어던지고 결재서류를 던져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기계실에서는 스페너가 날아다니기도 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최근 초등학교 교사의 자살만 봐도 요즘이 어떤 시대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작금의 시대는 배려와 공감이 리더의 첫째 덕목인 시대다. 배려와 공감은 다양한 인생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바닥과 천장을 경험을 해 봐야 공감 능력이 늘어난다. 그래야 많은 사람을 보듬을 수 있다. 그래야 전체와 모두를 컨트롤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고 국가도 마찬가지고 가정도 마찬가지다. AI가 할 수 없는 것이 배려와 공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