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J Aug 20. 2023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아들은 요즘 방학 특수를 누리고 있다.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낸다. 누워서 게임을 하고 누워서 숙제하고 누워서 TV를 보고 심지어 과자도 누워서 먹는다. 누워서 움직이는 않는다. 그래도 학교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면 1등을 한다던데 신기할 따름이다.


아내는 3년째 구직 중이다. 중간중간 계약직으로 일을 했지만 본인이 원하는 일도 아니고 정규직도 아니어서 계속 실망 중이다. 주말 내내 내가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 밥을 챙겨 주었다. 간헐적으로 위로의 말을 던져보지만 별로 호응이 없다. 나의 위로가 잠깐은 고맙게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북한산 조망권에 있는 카페에서



자고 일어난 것일까? 안 잔 것일까?

새벽 4시에 눈이 떠져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딸의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슬며시 문을 열어 보니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다. 게임 그만하고 자라고 말했더니 자고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 알 수가 없다. 자고 일어난 것인지, 아직 안 잔 것인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더 이상 묻지 말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와야 한다. 딸을 사랑한다는 미명하에 과도하게 개입을 했다가는 역풍(逆風)을 맞을 수 있다.


모든 인간관계는 적당한 거리(safe distance)가 있어야 한다. 부부도, 부모도, 친구도, 형제도 마찬가지다. 거리라는 표현이 너무 건조하다면 배려라는 말로 순화하고 싶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적당한 거리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 있어도 없는 듯이 없어도 있는 듯이 아빠의 존재감을 인식시켜야 한다.


너무 무관심해도 안되고 너무 나대도 안된다.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 아이들의 사정거리 안에 있지만 빈번하게 말을 거는 것은 삼가야 한다. 너무 가까이 있어도 안되고 너무 멀리 있어도 안된다. 필요시 호출할 때 그 들의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 되는 것이다.


딸이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늦은 밤이어서 항상 마중을 나간다. 시절이 흉흉하기도 하고 늦게까지 공부하고 오는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아빠의 최대한의 노력이다. 수학 문제도 척척 풀어주고 영어 문장도 척척 독해를 해 주면 좋으련만 그것까지는 아빠의 능력 밖이다.


아버지로서 해 줄 수 있는 것들이 무거운 책가방을 잠시라도 들어주는 일과 편의점에 들러 시원한 음료수 하나 사주는 것 정도다. 그래도 딸과 함께하는 그 짧은 시간들이 좋다. 학교와 학원에서 대부분의 시간들을 사용하고 가끔 남는 시간은 친구를 만나거나 게임을 하니 아빠가 비집고 들어갈 여유가 없다.


입추가 지났지만 여전히 덥다. 

점심은 콩국수를 포장해서 집사람과 아이들과 함께 먹었다. 며칠 전 회사에서 콩국수를 먹었는데 너무 맛이 없었다. 중국집에서 하는 콩국수여서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역시 중국집에서는 짜장면을 먹어야 하고 분식집에서는 라면과 김밥을 먹어야 한다. 이것도 일종의 원칙과 상식인 것 같다.


저녁에는 오랜만에 딸과 공원에게서 축구와 배구를 했다. 배구는 2학기 수행평가라며 더 열심히 했다. 덕분에 이 더운 여름에 지옥훈련을 하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사서 함께 먹었는데 정말 꿀맛이었다. 1,000원으로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는 학교에 제출할 자기소개를 쓰는 것을 도와 달라고 한다. 요즘은 학생도 자기소개서를 쓴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예전에는 시간이 나면 브런치의 글들을 읽었는데 요즘은 시간을 내서 글들을 읽고 있다. 생업에 쫓기다 보면

책 한 권 텍스트 몇 자 읽는 것조차 힘들 때가 있다. 그래도 브런치의 글들을 틈나는 대로 읽으며 많은 것을 느끼며 배운다. 그리고 반성하게 된다. 그것 하나 만으로도 브런치는 내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삶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 오프라인으로 만나지 않았을 뿐, 함께 느끼고 공감하고 있다는 얘기니까.


딸은 방학에 드럼을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마음이 변했는가 보다. 아무래도 방학은 여유롭게 지내고 싶은가 보다. 나의 휴대폰 벨소리는 딸이 피아노로 연주한 "터키행진곡"이다. 초등학교 때 전국 콩쿠르대회에서 최우상도 받았는데 중학교 올라가면서 개인 레슨도 중단하고 학교와 학원 수업에 전념하고 있다.


아래 영상은 드럼연주와 피아노 연주 영상이다. 사람마다 음악에서 감동을 느끼는 포인트가 다른 것 같은데 내가 감동을 받은 포인트는 조금 엉뚱한 것 같다. 가공되거나 포장되지 않는 날 것의 생생한 것. 그리고 그 열정. 웬만해선 잘 감동하지 않는 내가 저렇게 열정적으로 연주해 몰입해 있는 사람을 보면 나도 함께 가슴이 두근거린다. 감탄하고 설렌다. 그리고 존경스럽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재야의 고수 음악인들을 보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것도 없이 나태해지려는 내 삶을 반성하게 된다.



https://youtube.com/shorts/-9G2bYDrNPs?feature=share

라소백 "나 어떡해"

https://youtube.com/watch?v=ckrTVdEpNVU&feature=share

문아람 "터키 행진곡"
이전 11화 완전잡담(完全雜談)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