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 청소년기

since 1980

by JJ

초등학교, 중학교


00년 0월 0일

오늘은 기용이네 집에 놀러 갔다. 기용이네 집 마루에 50원이 떨어져 있길래 주워서 빵을 사 먹었다. 그리고 과자도 샀다. 과자를 사고도 20원이 남아서 엄마를 줬다. 그런데 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너 이 돈 어디서 났어?”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엄마가 다시 다그쳐 물었다.

“이 돈 어디서 났느냐니까!”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용이네 집 마루에 있길래 주워서 가게에 가서 빵 샀어”


엄마는 나를 꼭 껴안아 주시면서 말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남의 물건에 허락 없이 손대는 거 아니야"


00년 0월 0일

오늘은 기분이 너무 좋다. 월말고사를 봤는데 상장을 받았다. 그런데 혜영이는 이번 달에 상장을 못 탔다. 그래서 기분이 조금 안 좋다. 오늘은 집에 가서 아빠한테 짜장면을 사달라고 해야지.


00년 0월 0일

오늘은 호재와 산으로 아카시아를 따러 갔다. 그런데 아카시아를 따려고 던진 돌에 호재가 맞았다. 호재의 머리에서 피가 났다. 호재한테 미안해서 과자를 사줬다. 무척 좋아했다. 조금 전에 머리에 피가 났던 것은 다 잊은 것 같다. 난 호재가 너무 좋다.


00년 0월 0일

미미는 왜 나보다 동훈이를 좋아할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를 좋아했었는데. 기분이 안 좋다. 솔직히 동훈이는 나보다 얼굴도 잘생겼고 공부도 잘한다. 그래도 미미한테 실망이다.


00년 0월 0일

오늘부터 중학생이 되었다. 신기하다. 선생님이 한두 명이 아니다. 국어, 영어, 수학, 물상, 생물, 기술, 공업. 과목마다 선생님이 있다. 그리고 여자애들이 없다. 그리고 여름에도 긴 바지를 입고 학교에 와야 한다. 날씨가 더운데 왜 긴 바지를 입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00년 0월 0일

소풍을 갔다. 장기자랑 시간에 재준이는 춤을 췄다. 재준이는 공부도 잘하는데 춤도 잘 춘다. 그리고 노래도 잘 부르고 그림도 잘 그린다. 나는 재준이보다 잘하는 게 뭐가 있을까? 재준이가 부럽다.


00년 0월 0일

호재와 학교에 같이 가려고 호재 내 집에 갔다. 그런데 호재네 엄마가 나를 보자마자 계속 우셨다.

'나를 보고 왜 우실까?'

이상했다. 알고 보니 호재가 죽었다고 한다. 호재가 왜 갑자기 죽었을까? 며칠 전에도 나랑 축구를 했는데.


00년 0월 0일

오늘은 창수와 싸웠다. 창수가 자리가 좁다고 뒤로 가라고 했는데 내 자리도 좁아서 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인상을 구기면서 다시 뒤로 가라고 말했다. 나도 화가 나서 갈 대가 없다고 소리쳤다. 그런데 그놈이 갑자기 뒤를 돌더니 내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나는 의자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창수는 나보다 20센티나 키가 크다. 화가 나서 주먹을 쥐고 달려들었는데 친구들이 말렸다. 비겁한 놈이다. 뒤돌아 있다가 갑자기 때렸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얼굴이 왜 그러냐고 물으셨다. 그냥 길에서 넘어졌다고 했다.






고등학교


00년 0월 0일

3학년에 올라와 벌써 일곱 번째 시험이다. 시험을 보고 나면 항상 허탈하다. 바보와 천재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나? 정말 그럴까? 그 말은 아마 천재가 한 듯싶다. 어머니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셔서 도시락을 챙겨 주신다. 몸무게는 5kg이 줄었는데 몸은 무겁기만 하다. 아직 멀었는데. 약해진다. 지루하다. 내일부터 다시 시험이다.


00년 0월 0일

혼자 해야만 한다. 아무도 도와주는 이는 없다. 이겨 내야 한다. 얼마나 알고, 얼마나 모르고 있는 건지 앞으로도 얼마를 더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00년 0월 0일

아주 굵은 비가 내렸다. 비가 이렇게 멋있어 보인 적은 처음이다. 가슴이 후련하다.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다.

1920년 퇴폐주의, 안서 김억, 태서문예신보.


00년 0월 0일

또 한 명의 낙오자가 생겼다. 기뻐해야 할지 안타까워해야 할지...... 오늘은 또 이 많은 책들 중에서 얼마만큼을 나의 지식으로 만들 수 있을까? 몇 개월 후면 아무 쓸모없게 돼버리고 말 것을 이렇듯 괴로워하면서 외워야 하는 이유는 뭘까?


00년 0월 0일

보충수업을 5일째 마쳤다. 방학도 토요일도 없다. 7월도 하순에 접어든다. 어제는 자율학습을 빠지고 상철이와 뮤지컬을 보러 갔다. 오늘 타이슨(교련 선생님)한테 걸려서 당구 큐대로 10대 맞았다. 허벅지가 퍼렇게 멍들었다.


00년 0월 0일

하기 싫다. 정말로 하기 싫다.


00년 0월 0일

소나기가 내린 교정은 평화롭다. 운동장 한쪽에서 야구부들이 야구 연습을 한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 두 명이 잠자리를 잡기 위해 뛰어다닌다. 하늘엔 새가 날아다닌다. 힘들다. 포기하고 싶다.


00년 0월 0일

가로 85cm 세로 65cm.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공간이다. 방과 후 이곳에서 나는 하루 8시간을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다.


00년 0월 0일

모른다. 결과는 하나님밖에 모르다. 나는 내게 주신 능력 안에서 모든 걸 다했다. 부끄럽지 않다. 새벽 0시 20분. 20분 후면 난 봉고차를 타고 집에 간다. 그리고 자고, 학교 갔다가 밥 먹고 또 온다.


00년 0월 0일

체력장. 졸업고사. 배치 고사가 끝났다. 날씨가 추워졌다. 어젠 첫눈이 내렸다. 벌써 눈이 내리다니. 학교에는 난로를 피우기 시작했다. 오늘은 패딩 점퍼를 입고 학교에 왔다. 교실에서는 애들이 달력을 뜯기 바쁘다. 요즘은 자다가 문득문득 잠에서 깨곤 한다.


00년 0월 0일

여유 있게 살고 싶다. 숨 막힌다. 이 순간이 싫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싫다.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니라고 말들 하지만 이 순간이 싫다. 원서 구입. 후회는 없지만 아쉽다.


00년 0월 0일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눈이 마음먹고 내렸다. 온통 세상이 하얗다. 하얀색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다. 전화를 할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00년 0월 0일

외롭다. 머릿속이 멍하다. 후회하지 않을 1년을 보냈다는 것에 만족을 해야 하나? 만족하지 못하는 1년을 보냈다는 것에 후회를 해야 하나? 후회는 없다. 하지만 너무 아쉽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00년 0월 0일

난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도서실에 왔다. 밖은 아직 동이 트지 않았다. 모두가 어떤 목표에서인지 몰라도 이 자리에 모여 공부하고 있다. 여기서 난 몇 번째나 될까? 이제 동이 튼다. 가슴 답답한 하루가 또 시작된다.


00년 0월 0일

겨울비가 내린다. 내일은 날씨가 또 추워지겠지. 겨울은 너무 길다. 공평?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능력은 무엇일까? 혹시 나에게는 안 주신 것 아닐까? 아니면 내가 못 찾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 왜 나에게 주신 능력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은 주시지 않은 걸까? 하나님은 과연 얼마나 공평하신 걸까? 하나님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고 의지해야 하는 건가.


00년 0월 0일

또 겨울비가 내렸다. 쓸쓸하고 외롭다. 외롭다. 외롭다. 외롭다.



초등학교 때 옆 집에 살았던 친구 호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이상했지만 정신적으로 충격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나이 때의 아이는 사고하고 인지하는 능력이 발달이 되지 않아서 인 것 같다. 아기가 땅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아무 생각 없이 주워 먹듯이, 기용이네 마루에 떨어진 돈을 주워다가 아무생각없이 과자를 사 먹는 것도 비슷한 것 같다. 차츰 학교에서 혹은 가정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비로소 인간이 되어 가나 보다. 무심결에 튀어나오는 아이들의 욕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고등학교 3학년의 시간은 지금 봐도 안쓰럽다. 그때의 고3으로 돌아간다면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을까? 특별히 다른 삶을 살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일과 진로를 정했더라면 힘든 시간들을 즐기면서, 혹은 덜 힘들게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꿈은 갑자기 생기기도 하지만 천천히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 꿈을 권유하고 강요하기보다는 꿈을 심어 줄 수 있는 배경이나 환경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인문학적 소양과 철학을 어릴 때부터 소프트하게 심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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