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튀르키예 중학교에 따라가다_3

특이해도 너무 특이한 튀르키예 학생들

by 가니Gani

튀르키예 학생들은 한국 학생들과는 많이 달랐다.

10대 중반, 내가 본 그 나잇대 한국 학생들은 속내를 많이 감추고

자기 세계 밖의 일들에 심드렁한 느낌을 많이 받았었는데

튀르키예 학생들은 뭐랄까..

밝고 맑고 투명하고.. 특이했다.


그날은 전교생 조회가 있는 날이었다.

굴샤의 학교에서는 조회를 아침에 하는 게 아니라

오후 집 가기 전 시간에 했다.

집 가기 전 조회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불쌍한 아이들.. 얼마나 집에 가고 싶을까..

속으로 연민을 느끼고 있던 찰나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가 터져 나오며 교장선생님이 단상 위로 올랐다.


엥..? 교장 선생님과 함성소리..?


한평생 내가 경험한 조회시간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싱글벙글 무슨 이유에선지 들뜬 학생들의 표정들과

똑같이 싱글벙글한 교장선생님의 모습.


교장선생님이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목청 터져라 대답하는 학생들의 표정을 살펴보니

그들은 진심으로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굴샤와 함께 들어간 수업시간에도 그랬다.

그날 나는 특별 손님으로서 교탁에 서서 학생들과 영어로 이야기를 했었다.

외국인과 대화를 하게 되면 학생들이 영어를 더 좋아하게 될 거라는 게

굴샤가 그린 큰 그림이었다.


굴샤가 그린 큰 그림은 대 성공이었다.

학생들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나에게 질문을 던져댔다.

"가장 좋아하는 BTS 멤버가 누구예요"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뭐예요?"


학생들은 한동안 자기들이 좋아하는 노래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하더니

갑자기 한 학생이 앞으로 나와 튀르키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반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학생은 수줍은 기색이 하나도 없다.


튀르키예 노래를 들려줬으니 이제 한국 노래를 들려줄 차례란다.

평소의 나였으면 절대 안 불렀을 테지만,

나름 한국을 대표해서 갔기 때문에 눈을 질끈 감고 노래를 불렀다.

BTS나 블랙핑크 노래를 부르고 싶었는데

옛날 노래만 듣는 나는 한국 90년대 가요를 짧게 불렀다.

초라한 노래 실력에도 엄청난 반응이 쏟아졌다.


음식 관련 이야기로 질문 내용이 흘러갔다.

한참 좋아하는 튀르키예 음식, 싫어하는 음식 등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 학생이 엄마가 싸준 음식을 나에게 줘도 되는지 물어본다.

괜찮다고 하니 신이 나서 도시락을 들고 나온다.

예쁘고 정갈하게 싸인 도시락이 아니라 비닐에 싸인 도시락이다.

문득 내가 어렸을 때 쿠키를 담아간 도시락통이 촌스러워서

가방 속에서 몰래 열어 아무도 안 볼 때 꺼내먹었던 게 생각이 났다.

비닐 도시락도 당당하게 들고 나오는 학생이 멋있었다.


학생들은 틀린 대답을 말하는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굴샤가 무언가 질문하면 거의 모든 학생들이 손을 번쩍번쩍 들고

아주 당당하게 오답을 말한다.

틀리면 틀린 거고, 맞으면 좋은 거니까 일단 손을 들고 본다.


하나같이 자신감 넘치는 학생들만 잔뜩 모인 교실에서

수줍고 자존감 낮았던 내 어린 시절이 많이 생각났다.


모든 수업을 마치고 굴샤와 나는 빈교실에서 대화를 오래 나눴다.

내가 하루 종일 느낀 튀르키예 학교의 특이한 점들과,

학생들에 대한 칭찬을 한참 이야기하고 있는데

학생 한 무리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드리우며 다가온 아이들은 굴샤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한다.

굴샤는 하하하 웃더니 그들의 말을 나에게 번역해 준다.


"이 친구들이 너 오늘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봤어. 네가 피곤할까 봐 걱정했었대."


하루 종일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많은 학생들 때문에

내가 튀르키예 학교에 안 좋은 기억을 갖게 될까 봐 불안했다는 학생들은

너무 즐거웠다는 내 대답을 듣고는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했다.

그들은 나에게 귤과 초콜릿 편지들을 건네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가는 길, 창 밖으로 보이는 이스탄불의 광경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출퇴근길이 이렇게 예쁘면 스트레스 하나도 안 받고 행복할 것 같다는 내 말에

굴샤는 그래도 출퇴근길은 고된 거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지루하고 따분했던 서울에서의 내 하루도

어쩌면 이방인의 눈에는 아름다운 하루였을까?

굴샤의 평범한 일상인 학교에서의 하루는 나에게 평생 잊지못할 하루로 남았다.




내가 학교에 다녀간 뒤, 한동안 굴샤는 학생들에게 나에 대한 질문을 엄청나게 받았다고 한다.

몇몇 학생들은 내가 새로 온 한국어 선생님인 줄 알고 한국어는 언제 배우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단다.


학생들은 내 인스타그램을 어떻게 알아내서는 계속해서 친구 요청을 보내왔다.

내 인스타에는 간혹 굴샤에 대한 글도 올리는 터라 그녀의 사생활을 위해 친구 신청은 받지 않았다.


한 번은 교내에 건의상자를 달아 학생들의 건의사항을 받았던 적이 있는데

건의박스 안에 또 한국인 선생님이 방문했으면 좋겠다는 건의사항이 어려 개 적혀 있었단다.


내가 그날의 기억을 꺼내보고 또 꺼내보듯이

튀르키예 학생들에게도 그날의 여운이 길게 남아있는 것 같아 괜히 뿌듯했다.


IMG_1559.jpg 질문시간이 끝난 후 저 자리에 앉아서 함께 수업을 들었다.
IMG_5046.JPG 학생에게 받은 엄청 맛있었던 초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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