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시집을 베끼고 있어요.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by 권길주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친다.


한가로운 시골의 일상에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의 포탄 소리가 연일 TV뉴스에서 생생하게 들려온다.

그러나 나는 뉴스를 보다가 혼자서 10분 정도를 걸어서 계란집에 가서 계란 두 판을 사 오고, 잔디밭의 진흙땅을 맨발로 걸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낮 12 정도가 되면 엄마집에서 나와 논둑의 달맞이꽃들이나 산등이에 핀 코스모스, 하얀 가을 소국들을 보면서 한가로이 땡볕을 오분 정도 느리적 거리며 걸어오면, 나의 글 쓰는 작업실이 빈집인 채로 날 반겨준다. 작업실은 야산을 전원주택지로 만든 덕에 조용하긴 하지만 대신 너무 심심해서 갈 곳이 없는 시골 생활이 더 갑갑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오다가 만난 앞집의 화가 할머니와 잠시 한두 마디 인사를 나누고 내 작업실로 들어와 있으면 이곳은 오롯이 세상과 단절된 나만의 공간이 된다.

그러나 이것도 저녁이 오기 전 5시 전에 끝내고 가야 하는 시간이다. 왜냐하면 뇌경색 환자로 계신 엄마를 요양사 가고 나면 내가 가서 케어도 하고 저녁밥도 지어 놔야 아버지가 오시면 저녁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현재 전립선 말기암 환자지만 오후에는 경로당에서 화투를 치다가 다섯시 반쯤이면 집에 들어오시기 때문이다. 엄마는 84세, 아버지는 88세신데 두분다 중증 환자들이신 것이다. 내가 집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엄마는 병원과 세종의 내 집에서도 계셨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어머니를 돌보신 시간이 더 많았다. 그때까지 우리는 아버지가 말기암 환자 일거라고는 생각, 꿈도 꾼 적도 없었다. 백세까지 건강하게만 살줄 알고 아내를 돌보면서 농사까지 지으시던 아버지는 한동안 산에서 아침이면 혼자 울다 오시고는 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눈자위를 보며 그 것을 알아내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풍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아내 걱정에 더 많은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 느껴질 만큼 아버지는 암 발병이후에 더 엄마를 끔찍이도 챙기신다. 그리고 혼자사는 나와 막내 때문에도 한숨을 푹푹 쉴 때가 많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맨발 걷기에 희망을 걸으시며 날마다 아침 여섯시 반이면 어김없이 산길을 맨발로 한시간 정도 걷고 오시고 농사를 지으실 때도 될 수 있으면 맨발로 일을 하시려고 한다. 그래서 인지 의사가 많이 좋아지고 있다는 반가운 진단을 내려기도 했지만, 모든 것이 닭아지고 소멸해가는 늙음을 무엇으로 대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사는 게 전쟁이라고도 한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엄마 아버지가 연로하신 것도 사실이지만 중풍병이라고 알려진 뇌경색 환자에 뼈까지 전이된 전립선 말기암 환자인 아버지, 그리고 농사일, 혼자만 살던 내가 갑자기 이런 부모님을 모시고 하루하루를 산다는 것은 나에게는 전쟁보다 힘든 싸움이 날마다 있었다. 더구나 장편소설을 쓰려고 작업실까지 얻어서 들어온 고향에서 이란 날벼락이 떨어질 줄을 생각조차 못했던 현실이었다.

내가 살아온 날 중에 최악의 상황 같았다. 소설은 한 줄도 쓸 수가 없었고, 매일 환자를 병원과 음식과 돌봄으로 이어지는 일상은 나의 모든 꿈들이 송두리째 날아가는 기분이 들 정도였고, 알 수 없는 분노와 억울함과 화가 밀물처럼 몰려오는 날에는 스스로 감당이 안 되어서 택시를 타고 근처에 카페에 가서 한두 시간 노트북을 켜 놓고 멍때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던 나는 나 자신과 이 전쟁에서 휴전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현실에 적응하고 삶에 순응하는 시간들을 갖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었다. 혼자서 밥도 잘 안 해 먹고 반찬도 안 해 먹던 옛 습관을 고치고 하루에 열 가지 정도의 반찬을 하면서 지치 가던 여름 끝 무렵부터는 나 역시 텃밭의 가지와 호박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고, 말기암이시지만 하루도 농사일을 쉬지 않으시는 아버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해드리려고 가끔은 고추밭에서 고추도 따고 깨도 심고, 고구마 캐는 일도 거들어 들였다.


우리의 삶은 전쟁터 같이 힘들지만, 때로는 불행의 연속 같이 괴롭고 숨조차 쉴 수가 없어서 단 한 줄의 꿈조차 쓸 수가 없는 상황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꿈을 꾸고 희망을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살다 보면 늘 내 이웃에게는 때로는 나보다 더 불행한 일들이 찾아와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내가 그들에게 단 한마디의 위로도 해 줄 수가 없는 팍팍한 가슴이라면 얼마나 씁쓸한가.

내 아버지는 늘 내게 하시던 말이 있으시다. '너만 잘되면 아버지는 아무 상관없다고' 늘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아버지는 지금도 내게 우리 늙은이들 돌볼 생각 말고 네 갈 길을 가라고 하신다. 사실 내 입장은 돌봐드리는 것도 없다. 이곳에서 돈도 안 벌고 동생들이 주는 용돈으로 겨우 카드값이나 메꾸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교회에 가는 일 외에는 이제는 돌아다지도 않는 편이니까 몇 십만 원으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가끔 내 친구가 자기 자랑을 할 때가 있다. 자기는 전 세계를 얼마나 돌아다니며 여행을 했는지 일본은 무려 30번 넘게 다녀왔고, 유럽도 수없이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해외여행 한 번 을 다녀오질 못한 지질한 인생이다. 젊어서는 시 쓰고 시집 내고, 방송국에서 작가로 동분서주했다. 그런데 내게 벌어놓은 돈은 늘 없었다. 객지 생활을 하니 언제나 집세에 생활비가 만만치 않았던 것이고 프리랜서로 방송작가를 한다는 것도 그다지 보장된 미래는 아니었다. 더구나 큰돈을 벌 기회가 올 때마다 그 기회를 놓친 나로서는 정말 운이 없는 사람처럼 돈이 없었다. 그래도 돈에 대한 개념이 없는 나는 월세를 살아도 좋은 데를 찾아서 살고 부잣집 딸이었던 과거를 버리지 못하고 흥청망청 하는 습관도 있었기에 삶을 균형 있게 잡는 경제력은 나이가 먹어도 잡히질 않았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고 살았다면 내 인생은 정말 진흙구덩이가 되었을 것였지만, 감사하게도 나의 일상은 아직도 늘 하나님의 섬세하신 손길인지 늘 누군가의 도움도 있고, 가끔씩은 내게도 생계형 일자리도 주어지긴 한다.


가을이 문턱에서 황금물결을 치며 시골의 벌판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혼자서 들길을 걸으며 매일매일 환자이신 부모님을 언제 어떻게 떠나보낼지 모르는 일에 가슴 졸이지만, 생명의 다함을 우리가 어찌 알 수 있으며 오늘도 '난 너만 잘되면 아무 상관없다'며 어느 도시든 다시 나가서 네 밥벌이하고 살아라 하시는 아버지의 깊은 병색이 돈 얼굴을 마주 대할 때마다 내가 책상 앞에서 '오래된 시집을 하나씩 꺼내서 읽어 내려가며 한 때 내가 너무 사랑했던 시인들의 시를 읽는 즐거움을 되찾아 가게 된 것이 내 인생에서 얼마나 다행인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우리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든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다시 한번 읽으며 죽어가는 작은 생명체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들을 사랑하고 보살피며,

또 그 생명들을 아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때로는 그 생명이 떠나고 없어서 늘 눈물로만 사는 사람도 있고,

가슴을 쥐어짜듯이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본다.

나에게도 그런 친구와 이웃들이 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친구와 교인들, 그리고 부모님께 다하지 못한 효도로 눈물을 흘리는 딸들, 아들들도 있다.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윤동주 시인의 순결하고 순교자적인 삶과 시들이 감동을 주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늘 방황과 갈등으로 젊은 날을 보내고, 빈손을 들고 왔지만 날 반겨주는 고향 땅과 부모님처럼 내 인생에도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야겠다'는 결단과 나의 내면을 불도가니에 들어간

불순물이 가득한 도자기가 되어 태워버릴 수 있기를 오늘도 하나님께 기도할 뿐이다.


그때쯤이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를 꿈꾸지만 하루에 원고 한 줄도 못쓰고 지나는 때가 더 많은 나의 너저분한 소설들의 다음 부분이 한 줄 두 줄 이어질 것이고, 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가로 인생을 마감할지라도마감할 지라도 부모님 하루 세끼를 잘 챙기는 이 하루가 더 소중한 것을 알 게 된 것이 베스트셀러 작가보다도 더 깊은 신의 뜻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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