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오늘은 어느 집부터 돌 참이냐? 너한테 오늘도 뜨신 밥 한 숟갈 퍼줄 만한 집이 이 동네에 몇 집이나 될까 모르겠다.”
“그르기유, 한 열 집은 돌아뎅겨야 지 배가 좀 부른데, 빨리 돌아다니며 얻어먹어야지요.”
“그려 그려, 옛말이 문전걸식 열 집에 허기진 배를 못 채운다고 했는데, 네가 그렇구나. 부지런히 아침상 치우기 전에 돌아다녀 봐, 가다가 우리 집도 들러 보고 내가 우리 안사람한테 오늘, 네 밥 한 뎅이 남겨 놓으라고 했으니까. 난 동네 한 바퀴 돌아보고 들어가야 하니께”
“아이고 어르신 고맙구먼요, 잘 먹을게 유. 어르신 옥체 보전하시고 걸으셔 유”
“세상에 일본 놈들 등쌀에 곡식 다 뺏기고, 먹지도 못하고 살았는데, 그놈들 물러가니 겨우 목구멍에 뜨신 보리밥이라도 실컷 넘기나 했더니 전쟁 터졌지, 이제 전쟁 끝나고 한 십 년 조끔 넘게 지났으니 방개처럼 저런 불쌍한 거지들이 아직도 돌아다니는 게 당연하지. 아휴, 이 코딱지 만 한 나라에 웬 환란 풍파가 이리 많아서 이리도 불쌍한 중생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츠츠츠
“어르신 괜찮아요, 지는 오라는 디는 없어도 갈데는 많아요, 봐요, 이 아침도 지는 열두 집은 돌아다닐 거거든요, 그래야 밥을 배부르게 얻어먹지요, ”
“에이고 그놈이 참 넉살은 좋아가지구, 너야말로 소처럼 일하고 돼지처럼 거름 더미에서 잠을 자는 사람이니 먹는 거라도 좀 잘 얻어먹어야지.”
“세월이 언제 좋아지려나, 문전걸식도 하루 이틀이지 젊은것이 저렇게 사니 어쩌나 어째”
방개가 낮에는 소처럼 일하고 밤에는 두엄더미나 돼지우리 간 옆에서도 쭈그려 잠을 자는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이 하는 말은 그는 소처럼 일하고 돼지처럼 잠을 잔다고 하는 말들을 했다.
방개가 권 씨 할아버지와 아침 인사를 마치고 막 동네 초입에서 맨 먼저 커다란 기와집으로 들어설 때였다. 어느 집에서인가 구수한 닭고기 국 냄새가 온 마을을 진동하듯이 그윽했다.
방개의 눈이 이리저리 돌아가면서 그 닭고기 국 냄새나는 집을 찾느라 연신 눈동자가 굴러갔고, 코가 벌름벌름 야단이었다. 방개는 그 고깃국 냄새가 나는 쪽을 향해 검정 고무신 뒤축에 힘을 주고 찾아가 봤다.
뜻밖에 안골에서 제일 가난한 집중에 하나인 술주정꾼 유 씨네 집이었다. 대문도 없는 집에서 유 씨네 식구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니, 그런데 당신 어디서 닭을 가져온 거유. 내가 닭으로 얼큰하게 해장국을 끓이라고 해서 닭개장을 끓이긴 했는데 영 내 맴이 편치를 않아요, 이놈의 닭이 누구네 거인지 싶어서요”
유 씨 아내 되는 가냘픈 여인이 등이 휘어지게 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하는 말이었다. 방문을 열어 놓은 유 씨가 담배를 피우고 방 안에 있는 것이 보였다.
“시끄러워, 서방이 닭개장을 끓이라고 하문 끓이고, 처먹으라고 하면 처먹을 것이지, 무슨 여편네가 말이 많아. 어서 밥상이나 들여놔”
“여기 있슈, 당신이나 많이 잡숴요, 얘들하고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 닭개장 못 먹겠소.”
“재수 없이 이놈의 여편네가 아침부터 쫑알대고 난리야”
유 씨가 창호지를 바른 나무 문짝을 세게 잡아당기고 밥과 국을 먹는 소리가 대청마루를 넘나 든다. 그런데 유 씨의 아내는 뭐가 그리 편치 않다는 것인지 얼굴색이 정말 종이짝처럼 하얗다. 그녀가 부엌을 들어가려다 말고 문 앞에서 바가지 하나를 덜렁 들고 서 있는 방개를 보자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이고 깜짝이야, 아침부터 방개가 웬일이여, 우리 집엘 ”
“네 저저, 고깃국 냄새가 나서유”
“이놈의 방개야, 내가 지금 그놈의 고깃국인지 닭대가리인지 때문에 속이 민장 긴장한데 너까지 와서 아침부터 밥 동냥이냐?”
“에이 잘 됐다, 내가 이 닭이 원수 같은데, 내 몫은 너나 먹어라.”
가난에 찌든 유 씨 아내는 언제 봐도 얼굴이 봄날에 병든 노란 병아리처럼 힘이 없더니 오늘 아침은 이상하게 신기한 표정과 몸짓을 하며 방개에게 솥단지에서 닭개장을 한 그릇 퍼 주며 거기에 흰 밥도 한 덩이 얻어서 올려준다. 그 모습은 무슨 날 센 제비가 태풍을 피해 어디론가 쏜살같이 날아가듯이 빨랐다.
“웨턱케 이렇게 많이 주신데요, 아줌마 먹어야지유”
“야야, 방개야 얼른 이거 가지고 나가서 아무도 없는 데서 먹어이, 누가 보문 큰일 나, 우리 집처럼 가난한 집에서 웬 고깃국을 아침에 줬는가 해서, 나도 모르는 일이여, 저 영감탱이가 어디서 닭 한 마리를 잡아가지고 새벽참에 와서 날 보고 이걸 끓이라고 하는 거지, 내 속이 지금 새카맣거든. 저런 주정뱅이 술태백이하고 내가 살다가 무슨 망신을 당하고 살지, 밤새 화투치고 술 처먹고 오다가 누구네 집에서 닭을 잡아 온 건지, 아니면 누가 화투 하다 돈 잃고 줄 게 없으니까 돈 대신 닭 새끼를 준건지.
내 사마 사는 게 부끄럽고 이래 사는 게 창피스러워서 밥은커녕 아침부터 창자가 꼬인다. 내 배가 아프니 너나 어서 가지고 가서 먹어라. ”
방개는 그 집 사연이야 어찌 됐든 뜨거운 닭개장에 푼 빨간 고춧가루와 파 마늘 냄새가 허기진 배를 벌써 가득 채운 듯 아랫배가 뜨듯했다. 그는 유 씨 집 담장을 돌아서 얼른 배 씨네 고추밭에 쭈그리고 앉았다. 하얀 밥알이 풀어진 닭개장은 그야말로 오랜만에 맛보는 진수성찬이었다.
“아휴, 오늘도 보리밥이나 얻어먹는 줄 알았는데 이게 웬 떡이여. 맛이 기가 막이구먼, 왜 유 씨 아줌마는 창자가 꼬인다고 하지 내원 참, 이상한 일이네 그려.”
방개는 닭개장을 닭 뼈를 밭에 버리고 또 동네를 한 바퀴 다 돌았다. 오늘은 아주 재수가 좋은 날이다. 첫 집부터 고깃국을 얻어먹더니 다음 집에서는 보리밥 두 숟가락 얻어먹고 그다음 집에서는 콩밥에 두부 지짐 서너 장을 얻어먹었다. 그리고 그다음 집에서는 보리밥 한 덩이에 된장찌개를 줘서 먹었다.
그리고 또 그다음 집에서는 가지나물에 누룽지를 줘서 먹었다. 그러나 방개가 이렇게 많은 집을 돌아다니는 시간과 거리가 있다 보니 보통은 두 시간 정도 동네를 돌아야 그의 배가 좀 부를 정도로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는 보통 사람의 두 세배는 먹는 방개의 밥양도 그렇고 부잣집이 아니고는 하루 세끼를 다 쌀밥을 먹을 수 없는 때라서 동네 사람들의 형편이 방개에게 아침부터 밥을 양푼에 두세 사람 먹을 정도 푸짐하게 퍼줄 수 있는 인심 넉넉한 집은 드문 일이었다.
유 씨네 닭개장이 사건이 된 것은 점심때였다. 겨울이라서 동네에 일거리도 없는 터라 방개는 할 일이 통 없었기에 두엄더미에서 낮잠이나 퍼지게 자고 있을 때였다. 두엄더미 밖에서 갑자기 사나운 남자의 소리가 들렸다. 산속에서 닭을 치고 사는 허 씨였다. 그는 산에서 혼자 사는 중년 남자다.
“방개 너 이리 나와 봐. 네가 내 닭 훔쳐다 잡아먹었지.”
허 씨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거름더미를 뒤졌다. 방개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내가 닭을 잡아먹다니 난 아침에 분명히 유 씨 아내가 주는 닭개장 한 그릇 먹은 게 다인데 이상하네... 방개는 거름더미에서 나오며 한낮의 겨울 해가 너무 밝아서 눈이 부셨다.
살얼음 진 논바닥에 허 씨는 겨울 군용 장화를 신고 고함을 질러댔다. 산에서 혼자 살아서 그런지 수염도 가슴까지 길게 길러서 가짜 도사 같다.
“나는 닭 안 잡아먹었는데요”
방개가 공연히 말을 떨면서 더듬댄다. 허 씨의 기세가 무서워 서고, 아침에 닭개장 먹은 게 걸려서 그런 것이다. 닭을 잡은 것은 아니지만 닭개장은 분명 아침에 먹었으니 말이다.
“누가 그러는데 네가 아침에 닭 뼈를 자기네 밭에 버리고 간 걸 봤다고 하드라, 내가 그리고 보니까 저 논바닥에 닭털이 수북이 쌓여 있어. 그런디 네가 솥단지도 없고, 닭을 잡았다 한들 너 혼자 무슨 수로 닭을 끓여 먹었겠니, 나무에 올려놓고 구워 먹지 않는 이상 ”
“지는유, 닭 구워 먹은 적은 없구먼요,”
“그럼 오늘 누구네서 혹시 닭개장 얻어먹은 집은 없었고?”
순간, 방개는 유 씨 아내의 병든 병아리처럼 핏기 없는 노란 얼굴이 떠올랐고 아침상을 받으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노름꾼 유 씨의 험상궂은 얼굴이 떠올라서 더 이상은 허 씨에게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 참 이 방개 놈이 또 날 깜보네 그려. 네가 오늘 아침에 닭 뼈 밭에다 버린 거 본 사람이 저 안골에서 나왔단 말이여. 이 새끼야”
허 씨가 방개의 목을 손으로 움켜쥐며 갑자기 방개를 논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육중한 방개의 몸뚱이가 살얼음판에 뒹굴었다. 얇디얇은 그의 나일론 윗도리가 찌익하고 찢어졌다. 방개는 순간 눈에 불꽃이 일었다.
단벌 신세이기도했지만, 겨울옷은 비싼 터라 농촌에서 누가 쉽게 겨울 옷을 주질 않아서 아직도 얇은 가을 나일론 옷을 걸치고 다니는 중인데 그 한 벌 옷이 찢어졌으니 방개도 화가 났다.
“난 닭 안 잡아먹었슈, 왜 이래유, 내 옷 어쩌요, 이걸, 내 옷 내놔유”
“뭐, 이 방개가 사람 잡네그려, 알 낳은 암탉 한 마리문 나도 재산 목록이 몇 번째인 줄 아니, 산속에서 닭 스무 마리가 키워서 일 년 내내 달걀 팔아서 그거로 먹고 사는데, 내 암탉 잡아 처먹고 이놈이 똥 뀐 놈이 방귀 꾼 놈한테 성낸다더니, 누굴 보고 옷을 달래. 에이 재수 없는 놈 같으니라고,”
그때 방개가 갑자기 어디서 힘이 났는지 벌떡 일어나더니 허 씨의 허리춤을 잡더니 냅다 논바닥에 메꼰졌다.
“아이고야, 이놈이 사람 잡네, 아이고 아야, 나 죽어 나 죽어, 이놈의 새끼가 어디서 사람을 친데”
허 씨가 논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까무러치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방개는 검정 고무신을 신고 찢어진 윗도리를 붙잡고 저수지가 있는 시어지로 달려갔다. 아무래도 이런 때는 튀는 게 상책이었다. 눈칫밥만 먹던 방개였지만, 때때로 그는 사람들의 어떤 일에 대해서는 비밀을 지킬 줄 아는 눈치도 있었던 것이다. 그는 아무래도 유 씨가 허 씨의 닭을 몰래 서리해 온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 일을 허 씨에게 불었다가는 성질 사나운 허 씨가 노름꾼 유 씨를 가만히 둘 리가 만무하였다.
더구나 일천 장신 키가 미루나무만 한 허 씨가 깡마르고 볼품없는 유 씨를 괜히 건드리는 날에는 유 씨 아내가 죽을상이 될 게 뻔했다.
유 씨 아내는 노름꾼 유 씨랑 살아서 매일 이 집 저 집 다니며 빛을 얻어서 동네에서 인심을 얻을 수는 없는 처지였지만, 마음은 착한 여자라는 걸 방개도 알고 있었다. 그 집 애들이 중학교만 나오면 다 공장으로 간 이유도 아버지의 노름빚 때문이란 것도 방개는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