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가아빠가 양장점에 나타났다.

by 권길주

엉가엄마가 양장점을 내고 일 년이 지났다. 이제는 그녀에게서 품위라든지 세련된 멋쟁이라든지 그런 말보다는 온양장터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여인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우아한 미인이 되어 있었다. 참으로 오묘한 얼굴이 아닐 수 없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더벅머리가 되어서 냄새까지 지독하게 나던 여자가 불과 이년 정도만에 정상적인 여자로 돌아온 것도 신기한데, 그 여자의 모습은 이상하게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왜 이리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손길이 묻어 있는 자태인지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곧게 뻗은 다리와 휘일 듯 가는 허리, 그리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길고 가는 선이 수양버들처럼 하늘거리면 예전에 엉가를 업고 다닐 때 보던 그 삐쩍 마르고 눈이 휑하니 두려움이 가득 차 있던 그 얼굴은 온데간데가 없고 수양버들아래서 금세 가야금이라도 한 줄 타는 조선시대의 미녀를 방불케 할 정도로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으나 볼수록 아름다운 자태와 옷맵시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아직은 서툴고 두려움이 찬 표정은 순간순간 그녀에게서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별로 말을 하지 않는 그녀에게는 그런 표정들도 사람들에게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풀피리를 불 듯이 나지막이 말을 하는 습관이 그녀의 말에 사람들이 더 귀를 기울이게 했는데, 보통은 그녀는 옷을 가봉하고 옷의 가격을 말하고, 손님에게 차도 한 잔 대접하지 않으며 양장점에 사람들이 줄을 서게 만드는 양장점 여주인이었다.

엉가엄마의 집에는 금고가 생길 정도로 엉가엄마는 돈을 모았다. 그러나 엉가엄마는 거의 돈을 쓰지를 않는 지독한 살림꾼으로도 소문이 날 정도로 그녀는 돈을 쓰지 않았다. 가끔씩 온양장에 나오는 덕구나 덕구의 아내에게 돼지고기를 몇 근씩 사서 주는 일과 방개가 온양장에 오는 날이면 밥 사 먹으라고 쥐어주는 돈 말고는 그녀는 심지어 엉가에게도 거의 돈을 쓰질 않았다.

엉가가 공부하고 책을 사는데 말고는 그녀는 심지어 먹는 것도 시장에서 제일 싼 것만 사다가 엉가를 먹일 정도로 돈에 관해서는 철저히 금고에 넣어두고 쓰지를 않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양장점에 오는 손님들에게 옷값을 시세보다 비싸게 받지는 전혀 안았는데, 그래도 그녀의 옷디자인 솜씨와 제단 솜씨는 가히 뛰어나고 옷감을 고르는 재주도 워낙은 탁월해서 사람들은 그녀에게 적은 돈을 주고도 아주 비싸 보이는 옷을 해 입는 폭이 되다 보니 온양 부자들도 굳이 서울 명동에 가서 옷을 맞춰 입지 않고 엉가엄마에게 옷을 맞춰 입기 시작했다.

엉가엄마의 양장점이 불티나가 잘되어갈 때 어디선가 누군가의 입방아가 시작되었는지 갑자기 엉가아빠가 바람에 소문을 타고 나타났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는 아주 말짱하고 너무 신사적인 남자였다. 그래서인지 엉가엄마를 보고도 별다른 트집을 잡거나 해고 지를 하지도 않았다. 그저 두 사람은 너무 오랫동안 만나지 않은 친척이나 형제처럼 조용히 몇 마디를 주고받고는 헤어졌다.

엉가아빠가 왔다 갔다는 말에 덕구의 아내가 달려와 물었다.


"엉가아빠가 어떻게 알고 왔데요. 지금은 어디서 산데요, 혹시 엉가엄마가 돈을 많이 버니까 다시 살아보려고 온건가요?"


덕구의 아내는 궁금한 거를 한꺼번에 묻기 시작했다.


"네 제 소문이 나다 보니 그 사람 귀에 까지 들어갔네요. 그 사람은 아직도 대구에 살고 있다고 하네요. 아직 혼자 산다고 하는데, 많이 아프다고 해요."

"아파요, 어디 가요?"

"네, 곧 죽을병이라고 하네요. 폐병이라고 하는데 얼마 남지를 않았다고 해요."

"어머나 세상에 , 죽을병이 들었는데 여긴 왜 찾아왔담. 예전에 엉가엄마를 많이 때렸다면서요."

"네, 때리기도 많이 때리고 의처증 때문에 절 많이 괴롭혔지요. 매일 발가벗겨 놓고 때려서 제가 죽으려고 농약도 몇 번 먹고, 수면제도 사다 먹고 그랬어요. 자기 친구랑 제가 바람을 피운다고 그렇게 때렸어요. 저는 정말 아니었는데, 그 사람은 의처증이 병이었는데, 이젠 폐병까지 들어서 곧 죽는다네요."


덕구 아내가 멍하니 양장점 밖에 비가 오는 걸 바라봤다. 사람이 사는 것에 대한 깊은 회의가 이제야 엉가엄마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봄바람이 건조하게 일렁이다가 어느 꽃가지에 앉아서 꾀꼬리를 부르는지 그 소리가 오늘따라 덕구의 아내와 엉가엄마에게는 구슬프게 들려온다.

덕구 아내는 엉가엄마가 미친 여자가 아니라 상처받은 한 마리의 사슴이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의처증 걸린 남편에게 매일 발가벗긴 채 맞고 살았으니 얼마나 가슴속에 상처가 많았을까? 그것도 자기 친구랑 바람을 피운다고 때렸다니 그 매질이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랬던 남편이 이제 다 죽게 돼서 찾아오다니...... 차라리 찾아오지나 말지 어쩌자고 이제 와서 잘되는 엉가엄마 앞에 나타나서 이 여인을 이렇게 또 힘들게 하는지 얼굴도 보지 않은 엉가아빠가 공연히 미워서 열불이 났다.

엉가아빠는 그 후로도 자주 양장점에 나타났다. 그는 돈이 필요했다. 결핵이 심해서 마산에 있는 결핵요양원에 들어가서 살아야 하는데 병원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살아서 나오기는 힘들 거 같은데 그 결핵요양병원에서 죽을 때까지 있어야 하는 비용들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엉가엄마는 금고에서 그가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의 큰돈을 꺼내서 엉가아빠의 손에 올려주었다.

엉가엄마가 주는 돈에는 그녀가 맞고 살던 신혼시절 그 억울함이 들어 있었고, 방개의 손에 이끌리어 충청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거지가 되어 방개가 얻어 먹여주는 죽이나 고구마 몇 개로 하루를 때우던 눈물겨운 배고픔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한이 서려있는 돈이 있었다.

그래도 엉가엄마는 엉가아빠의 마지막 길에 자신의 눈물과 억울함과 배고픔이 한숨처럼 묻어 있고 진땀처럼 배어있는 돈을 내어주었다. 그것이 엉가아빠를 용서하는 그녀만의 마지막 의식이라고 그녀는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엉가아빠 이거 가지고 가셔서 잘 드시고 병원비도 내시고 만약 살아 나오던 죽어 나오던 다시는 저와 엉가를 찾지도 말고 여기에 살고 있는 것을 누구에게도 알리지도 말아 주세요. 이 돈을 드리는 이유는 바로 이겁니다. 나와 엉가와의 연을 끊기 위해서 주는 돈입니다. 잘 가세요."


그녀는 담백했고, 용기가 있었다. 예전의 엉가엄마가 아니었기에 엉가아빠도 깊이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돈을 한 뭉치 받아서 병든 몸을 끌고 온양역이 있는 쪽으로 양장점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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