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가엄마가 새로 만든 방들.

by 권길주

바람이 불고 비도 오고 엉가아빠가 죽었다는 소식이 온 날은 그랬다.

엉가아빠는 마산결핵요양병원에 들어간 지 석 달을 못살고 저 세상으로 간 것이다. 부고를 받고 엉가엄마는 엉가 때문에 갈등을 했다. 양장점에 엉가아빠가 찾아왔을 때 학교를 갔다 오던 엉가가 엄마를 만나러 양장점에 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엉가의 모습을 보여주게는 됐지만, 굳이 죽은 아빠의 얼굴을 어린 엉가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날도 엉가엄마는 엉가아빠를 엉가에게 아빠라고 소개하지 않았다. 엉가아빠도 그녀의 마음을 알았는지 엉가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기는 했지만, 안아보거나 손을 잡지도 않았다. 그저 머리만 한번 쓰윽하고 쓰다듬어 주는 시늉을 했으니 엉가도 그가 아빠일 거라고는 어린애가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으리라.

그런 엉가와 엉가아빠의 인연을 굳이 죽은 다음에 이어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엉가엄마는 자기로써는 엉가아빠의 병원비를 내준 것으로 모든 인연을 끝맺기로 했다. 더구나 엉가아빠네 집에 형편이 어려우니 그가 남긴 돈으로 그의 부모님도 조금은 덕을 보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자신과 엉가의 슬픔을 대신하기로 한 것이었다.

매를 맞았던 지독한 통증이 비 오는 날이면, 춥고 으스스한 날이면 온몸에 되살아나는 것도 끔찍한 기억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숙명처럼 그 고통을 벗어나 얼마나 많은 세월을 길에서 산에서 엉가를 안고 웅크리고 잠을 잤던가. 엉가마저 자기처럼 맞고 자랄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가 있던 날을 그녀는 잊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남편이 자기를 온몸을 발가벗겨 놓고 매질을 하다가 누워서 자던 엉가가 자지러지게 울자 이성을 잃어버리고 엉가의 볼기짝을 손바닥으로 세게 후려치는 것이 아닌가. 엉가엄마는 그날로 엉가를 포대기에 싸서 집을 나와버린 것이었다. 자기가 억울하게 맞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이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핏덩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거친 아빠의 손에 매를 맞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빈손으로 맨 몸뚱이로 아기만 데리고 집을 나온 엉가엄마가 받는 고통은 너무나 컸었다. 남의 담벼락 밑에서 잠이 들었을 때는 커다란 개가 달려와서 자기 종아리를 물어뜯었고, 빈집에 들어가서 비를 피하던 날에는 한 밤중에 웬 도둑이 들어와서 엉가엄마의 입을 틀어막고 강간을 하려다가 엉가엄마가 늘 품에 가지고 다니던 단도를 들이대자 기겁을 하고 그 도둑이 엉가엄마가 비상금으로 가지고 다니던 금반지를 손가락에서 기어이 빼내서 달아난 것이었다. 그 반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단도를 든 엉가엄마가 도둑과 얼마를 뒹굴고 싸웠던지

나중에는 엉가엄마가 결국은 그 남자를 단도로 찌르지 않으면 도저히 그 반지를 빼앗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때 엉가엄마는 이 세상의 모든 끈을 놓아버리고 말아야 하는 극한의 두려움이 온몸에 몰려오더니 정신이 나가버린 것이었다.

도둑놈한테 강간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엉가와 어딘가에 정착을 하고 살 곳을 찾으면 어떻게든 먹고살 길을 마련하려고 한 비상금은 날아가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엉가엄마는 몸뚱이보다도 돈이 더 급했던 거 같았다. 단도를 들고 달려들어도 결국엔 빼앗긴 금반지를 놓치자 살아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엉가와 함께 바위에서 뒹굴어보고, 높은 산 계곡아래로도 뒹굴어 보았다.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 저 세상으로 가야 할 것 같은 마음만 끝없이 그녀를 붙들고 칠흑 같은 밤이 오면 그 두려움은 심한 공포로 그녀를 짓눌렀던 것이었다.

그럴 즈음에 어느 날 그녀는 낮에 비를 피하기 위해 남의 집 원두막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때였다. 어디서 이상하게 등치가 좀 큰 남자가 어슬렁어슬렁 원두막을 걸어오더니 비를 쫄딱 맞은 모습으로 원두막에 한쪽 엉덩이를 걸치고 앉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그 뒤로 자기와 엉가에게 먹을 것을 얻어다가 먹여주는 것이 아닌가. 시래기로 만든 죽이나 누룽지 한주먹, 고구마나, 감자 찐 거, 아니면 신김치 한쪽에 밥 한 덩이, 그도 없을 때는 돼지죽같이 멀건 죽을, 그리고 봄에 보리고개가 올 때는 아무도 그에게 먹을 거를 주지 않으면 남의 집에 가서 허리가 휘도록 모를 심어주고 그날 내온 밥을 자기 몫을 먹지를 않고 다 모아서 바가지에 담아가지고 와서 엉가를 먹여주고는 하지 않던가.

엉가엄마는 이미 정신을 놓아버리고 살고는 있었지만, 방개의 그런 모습에 가끔씩 눈물이 났었다. 무어라고 말을 해야 할지는 몰라도 방개가 주는 밥알을 허겁지겁 정신없이 먹는 엉가를 보면 그냥 눈물이 쏟아지고는 했었다. 엉가엄마는 도둑놈이 금반지를 뺏어가던 그날 밤 이후 자기의 말을 잃어버린 여인이 되어 있었다.

삶의 끈을 놓치자, 이상하게 엉가엄마는 실어증처럼 말을 잃어버린 여자로 몇 년 동안 살았었다. 어떤 말도 그녀의 입속에서 거의 잘 나오질 않고, 이상한 괴성과 신음소리 같은 것만 지르게 된 것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두려워하던 삶이 살아지는 것은 오직 방개와 덕구의 덕분이었지만, 그녀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얘기를 하거나

이 세상 어느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게 된 것이었다. 상처와 공포가 그녀를 그렇게 짓눌렀을 때 그녀에게 오직 남은 엉가뿐이었다. 자식이란 핏줄에 묶여서 자신의 허리와 등에 매달리어 있는 엉가는 그녀에게는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였고, 전부였는데, 그 엉가를 먹이고 입히고 재워준 사람은 방개와 덕구였고, 그리고 덕구의 아내였다.

그래서 엉가엄마는 덕구네 집에 있는 덕구의 조카 둘과 엉가를 이제는 한 집에 살게 해주고 싶었고, 그리고 방개에게도 자기 집에 방을 한 칸 내주려고 준비를 했다.

엉가아빠의 부고를 태워서 재만 남은 종이쪽지를 땅에 묻던 날, 엉가엄마는 남은 인생을 방개와 살기로 작정을 했다. 방개란 사람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이고 그 병적인 떠돌이 습관은 고칠 수가 없다 할지라도 그녀는 방개가 언제든지 와서 자고 먹을 수 있고, 엉가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그렇게 나중에도 엉가가 방개를 잘 대접하고 모실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엉가엄마는 자신이 사는 목적은 오직 딸 엉가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살만해지니 덕구의 고아 조카 둘도 온양시내에서 공부를 가르쳐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내주고 싶었다. 그것이 덕구가 자기와 엉가를 위해 산에서 나무를 해오고 진흙을 밤새 퍼 지게에 지고 달구지에 끌고 와서 방개랑 밤새도록 진땀을 흘리며 사랑채에

방한칸을 마련해 둥지를 틀어주고 폭풍에 날개를 찢긴 새를 돌보듯이 자기와 엉가 그리고 방개를 돌봐준 덕구네 집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엉가엄마는 돈을 낭비하거나 허비하지 않고 정말 쓸 곳에만 쓰는 알뜰한 여자였다. 그래서인지 마당이 좀 넓은 집을 산 것도 다 계획이 있어서였는지 몰라도 안채에다가 이어 붙여 방을 세 개나 더 들여서 몇 달 사이에 집은 아주 그럴듯한 방이 다섯 개나 되는 큰 기와집으로 변모를 시켰다.

안방 와 작은 방이 있던 본채에서는 엉가엄마와 엉가가 방을 하나씩 쓰고 있었는데, 가운데 큰 대청마루를 놓고 이어 붙인 아래채에는 작은 방 두 개를 더 만들고 그리고 대문 앞에는 안방보다 커다란 방을 하나 더 들어 놨는데 그 방이 방개의 방이라고 했다.

유리 미닫이가 달린 신식 방과 나무 대청마루가 있는 아래채는 어느 부잣집 못지않게 아주 근사했다. 그리고 지붕을 기와로 이어서 그런지 온양시내에서 그만한 집이면 어지간한 부잣집으로 보이는 번듯한 집이었고, 땅값도 꽤 나가는 온양역 근처이다 보니 엉아엄나는 이제는 시내에서도 부자로 통했고, 잘 나가는 양장점 사장님으로 큰 부자축에 들어간 것이었다.

엉가엄마는 방개의 방에 비단이불과 요를 깔아주고, 옷장도 마련해 주고, 언제든 그가 옷을 갈아입고 다닐 수 있도록 사계절 옷도 골고루 준비를 해서 옷장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덕구네 조카들 방도 책상까지 다 목공소에 짜서 넣어주고, 옷장과 이불을 최고 좋은 것으로 다 준비를 해주었다. 아이들에게도 갈아입을 옷을 시장에서 여러 벌을 사다 쟁여 놓기까지 하고는 덕구와 덕구 아내 그리고 방개를 초대를 했다.

잔치상으로 차린 밥상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 차렸는지 온갖 진수성찬이 가득한 밥상을 받은 덕구와 덕구 아내 그리고 덕구의 조카 둘, 덕구네 얘들 둘, 방개, 그리고 엉가까지 모이니 금세 온 집이 대식구가 벅적벅적 야단이었다.

고기와 잡채와 떡과 과일까지 온갖 진수성찬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놓고 이렇게 좋은 집에서 여럿이 모여있는 것을 본 엉가엄마는 부엌 한편에서 비로소 눈물을 흘렸다. 처음으로 가슴이 따스하고 포근한 어떤 기운들이 그녀의 가슴속 깊이 들어와서 한없이 그녀를 감싸듯이 그녀의 마음을 녹여주고 있었다.

그때 입에 착 붙은 만큼 달콤한 식혜를 마시던 덕구아내가 부엌에 들어와서 혼자 울고 있던 엉가엄마를 보더니 조용히 그녀를 안아주는 게 아닌가.


"아이고 엉가엄마 이제 진짜 제정신이 돌아왔나 보네. 눈물을 다 흘리구 말여. 그동안 힘들어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두 눈을 때글때글 굴리며 입을 꾹 다물고 살더니 이제야 좀 사는 것 같으니 마음이 안심이 되나 눈물을 다 흘리구."


덕구 아내는 엉가엄마를 꼭 안아 주었다. 미친 여자가 제정신이 돌아온 것도 기적인데 이제는 그가 베푸는 상이 크니 덕구의 아내도 하늘이 꼭 자기들에게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잔치상을 베풀고 풍악을 울려주는 것만 같아서 어찌나 그녀도 이 모든 것이 살아가는데 엄청남 힘으로 느껴지는지 몰랐다.


"형님, 이제 형님이라고 부를께유. 그동안 저희 같은 거지들을 보살펴주시느라 얼마나 고생을 하셨데요, 지도 이제는 사람 노릇을 좀 하고 싶어서요. 이제 형님에 조카들은 제게 맡기셔요, 우리 엉가도 혼자라서 외롭고 하니 제가 이곳에서 아이들을 맡아서 제네들 공부 잘 가르쳐서 서울로 대학을 보내볼께유. 우리 엉가 혼자 살면 그것도 얼마나 외롭겠어요, 엉가는 오빠가 둘이나 생기는 거지요. 그리고 방개씨도 어디에 있든지 우리 집에서 근거를 두고 살라고 하고 싶어요. 워낙 돌아다니는 사람이니까.

저희 집에서 붙박이처럼 살지는 못하겠지만, 가끔씩이라도 와서 살면 좋겠어요. 방개씨가 나하고 살 사람도 아니고 누구랑 혼인하지는 않을 거 같아요, 그래서 저 방을 마련했어요, 사는 동안 떠돌아다니다가 언제든 돌아와서 쉬라고요."


방개는 엉가엄마의 제안에 수락을 했다. 기분이 좋기도 하고 마음이 편안했다. 순자에게 장가를 드는 것은 거절은 했지만, 엉가엄마와 혼인을 하지는 않아도 그냥 방한칸을 쓰고 싶을 때 언제든지 쓰는 것은 그에게도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방개는 엉거엉마도 좋아하고 엉가도 이뻐라 하다 보니 좋았고, 더구나 덕구의 조카들이 이곳에서 학교를 다닌다고 하니 모든 것이 행복하기만 했다.

그날 제일 많이 눈물을 흘린 사람은 사실 덕구의 아내였다. 덕구의 아내는 고아가 된 조카들을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하고 몇 년을 길렀는데,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은 자기라는 사람의 이기심과 본성이 나타나서 조카들을 키우면서 많이 갈등했던 터라 가난과 고달픔에 지친 자기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기로 한 엉가엄마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조카들의 앞날을 위해서 촌에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온양시내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좋을 거라는 덕구의 말에도 찬성은 했지만, 고기 한번 배부르도록 먹이지 못한 조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쓰리고 아프기도 했다.

그때 엉가와 덕구조카 둘은 동화책을 읽으며 새로 짠 책상에 앉아서 온양역에서 들려오는 기차소리에 먼 나라로의 여행을 하듯이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마당에는 어느 사이 여름이 가고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어가며 세월의 흔적들이 어린 엉가와 덕구의 조카들에게도 서로의 인생에 조금씩 진하게 물들여갔다. 이들의 만남이 장차 어떻게 그 빛깔을 내며 서로에게 물들어갈지 아무도 모른 채 새집들에 잔치상은 달이 창창히 밝도록 밤새도록 이어졌고, 먼 기적 소리는 어둠을 내린 온양역 근처를 맴돌며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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