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집을 나와서 이사를 한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부모님 집에서 살 때와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는 지금의 일상은 하루하루가 너무 다르다. 일 년 반 동안 부모님을 모시고 살 때는 뇌경색으로 일상생활에서 아무것도 잘하질 못하는 엄마를 대신해서 우선 아침에 눈을 뜨면 아침밥을 챙겨야 했다. 그러나 내가 아침을 챙기기 전에 자주 하던 일 중에 하나는 집 앞에 흐르는 동네 시냇가를 가볍게 산책하는 일이었다. 보통은 6시쯤에 일어나서 찬송가나 설교를 들으면서 20분 정도 시냇가 뚝을 걸으면서 잠도 깰 겸 산책을 즐겼었다.
그런데 지금 아파트에서의 일상은 보통은 7시가 넘어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늦게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11시쯤 집에 오면 피곤하기도 하고 힘이 들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에 생긴 아침의 일상은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편의점에 가서 자판기에 있는 커피를 뽑아 오는 경우가 많다. 잠을 깨야 하기 때문에 가는 경우도 있고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기 위해 아파트의 현관을 나서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파트를 지은 지 몇 달 안 된 새 아파트로 와서 인지 몰라도 새집 증후군도 있는 거 같다. 자고 나면 영 머리가 맑지를 못하고 공기도 탁한 느낌이 있으니 말이다. 어느 때는 커피를 들고 아파트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들어오기도 하는데 시골집에서의 신선한 공기와는 영 다른 느낌이다. 그렇다고 여기가 도시도 아니다. 시골집에서 십오 분 정도 차를 오면 되는 이곳도 면소재지 신도시 일 뿐인데, 왜 이곳은 시골집과는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다.
부모님 집에서의 아침 풍경은 바쁘긴 해도 싱그러운 햇살이 가득한 마당이 있었고, 아무도 걷지 않는 시냇가의 논둑길을 호젓하게 걷는 기쁨이 있었다. 그러나 냇둑을 걷고 집안으로 들어오면 아버지가 드셔야 할 아침 반찬과 엄마가 드셔야 할 아침 반찬을 따로 만들어야 하고, 엄마의 침상을 정리해야 하는 힘들고 짜증스럽기까지 한 일상들이 많았다. 때로는 그런 힘든 일들이 나를 우울하게도 하고 지치게도 했기에 부모님하고의 관계나 형제와의 관계가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었다. 병들고 늙은 부모님을 두 분이나 모시고 사는 하루하루가 흐린 날처럼 우울하기도 하고 장대비처럼 한없이 서글퍼지던 날도 많았다. 그러나 내 내면의 가장 큰 갈등은 그런 일상 속에서 내가 글을 쓰거나 내 미래를 준비할 어떤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문제였지 병드신 부모님 자체가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전원주택 작업실을 없애고 난 후, 올해 여름은 지독하게도 힘이 들었다. 남동생이 만들어준 부모님 집 야채층의 창고 작업실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취미 생활은 가능했지만, 글을 쓸 수 있는 분위기는 영 조성되질 않았던 터라 여름 내내 나는 창고방에서 문을 열어 놓고 마당에 백일홍꽃들만 쳐다보며 시간을 보낸 적이 많았다.
참 이상한 것은 마당 근처에 텃밭에서 짙은 보랏빛의 가지들이 주렁주렁 열리고, 붉은 토마토가 연일 열려도 내 삶에는 아무런 열매도 맺히지 질 않았다. 장편소설로 연재하던 "방개 아저씨"도 아무 출판사에서도 출판 제의가 없었고, 다른 작가들에게 그렇게 많이 온다는 출판 제의가 내게는 한 통도 없었으니 난 도대체 브런치스토리에서 무슨 글을 쓴 건가 하는 자괴심만 몰려왔다.
그러다가 나는 드디어 가을이 시작되기 전에 추석 즈음에 작업실을 부모님 집 근처의 새 아파트로 옮기기로 작정을 하고 난 서둘러서 아파트를 구했다. 21층의 새 아파트의 전경은 정말 처음엔 너무 마음에 들었고 나를 흡족하게 해 줬다. 여기서는 무슨 글을 쓰던 밤을 새워서 쓸 수 있을 것 같았고, 다니는 교회랑도 가까우니 나로서는 그저 행복할 것만 같은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난 한 달을 돌아보면 이곳에서 내 생활의 변화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부모님의 아침을 차리던 분주한 시간함 대신 편의점 커피와 삼각 김밥으로 아침을 때우는 습관이 생겼고, 시냇가를 호젓하게 걷던 이른 아침의 행복대신 부모님의 하루를 걱정해야 하는 마음이 앞설 때가 더 많아졌다. 여동생과 남동생이 도와주기는 해도 나도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꼬박 부모님 집에 가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니 내가 없는 부모님은 온 가족들이 다 같이 허덕대고 살아가는 패턴으로 돌아가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미안한 사람은 결혼한 여동생이 되어 버렸다. 내가 글을 쓰거나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집을 나온 대신 중년의 여동생이 부모님을 돌봐드리러 먼 거리를 다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사랑은 점점 모아지면 힘이 되지만, 섬기는 일은 점점 길어지면 지치게 된다. 누구든 부모님을 잘 모시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님을 모시다 보면 지치고 힘이 들기도 하지만, 그 일에 집중하다 보면 또 자식도 사회에서 능력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나 역시 내가 시골에서 소설가도 아니요, 시인도 아니요, 그냥저냥 별거 아닌 글이나 쓰다가 죽는 건가 싶기도 하고, 본래가 무식한 사람이니 무슨 대단한 대작을 쓸 만한 인물도 아니니 그럭저럭 밥이나 축내다가 죽는 건가 싶고, 외롭고 지친 일상에서 어떤 신선한 글도 쓰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그 답답한 시골을 좀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아픈 부모를 두고 멀리 떠날 수도 없고, 멀리 갈 곳도 그다지 없었다. 그래서 떠나 온 곳은 부모님 집에서 자동차로 십오 분 정도의 거리였고, 난 아직도 이 새 아파트에서 별다른 글을 쓰질 못하고 있다. 누구처럼 자고 일어났는데 세계적인 작가가 되어 있는 것도 없고, 그저 간절히 기도한 기도의 제목처럼 내가 쓴 장편소설 "방개 아저씨"가 책으로 나오게 해 달라는 기도도 아직은 이루지질 않았다.
그래도 난 오늘도 거실 소파에서 내 전화를 반갑게 받으며 작은 딸이 오는 시간을 기다리는 엄마에게 소망과 꿈을 실어준다.
"엄마 오늘도 기도해 주셔, 내 책 방개아저씨 대박 나게 해 달라고. 알았지."
"응응 그래야지."
나도 엄마도 "방개 아저씨" 대박 나게 해달라고 기도한 지가 반년은 넘은 것 같다. 그런데 아직도 책은 출간되질 못하고 있으나 그래도 난 모레 아침이면 시골집 근처의 가을 시냇가를 걸으며 다시 생각할 것이다.
청명한 가을 아침의 맑은 시냇물소리처럼 내 삶이 한번 더 씻겨져 나가야 한다면 고운 명주실에 묻은 얼룩처럼 난 내 글을 더 헹구어야 하리라. 쓰고 다듬고 거르고 자르고 해서 한 권의 소설책을 펴내야 하듯이 삶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걸 나는 새 작업실에서 다시금 배우고 있다.
늙으신 부모님을 봉양해야 하는 책임과 고통이 따르는 중년의 시간들 속에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내 삶을 다시금 펼쳐야 하는 시간의 틈 사이에서 나는 내 글을 맑은 물에 헹궈내는 시간처럼 그렇게 내 삶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가을은 나에게 이렇게 묻는 것만 같다.
너는 쓰기에만 허덕대는 작가는 아니냐고.
읽고 사색하고 혼자 시냇가를 다시 호젓하게 걷는 아침이 필요하지는 않으냐고.
그리고 늙으신 부모님의 아침 식탁을 마련하던 분주한 시간이 삼각 김밥에 편의점 커피를 마시는 시간보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