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엄마가 쓰러지기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지만, 예전에도 아버지랑 딱 한번 소리를
지르고 싸운 적은 있었다.
내가 교회를 다닌 후로 아버지는 나를 심하게 미워하셨던게 드러난게 제사 문제였는데,
제사를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나와 아버지가 한 십년 전쯤 한판 붙었던 적이 있다.
나는 그때도 잠시 시골집에서 사역을 쉬면서 다음 사역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버지와 제사 문제로 한판 붙는 바람에 쫒겨나다시피 집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길을 가고 아버지는 아버지가 원하는 길로 들어섰는데, 딸이 방송작가도 그만 두고
교회 전도사를 하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권씨 종친회 회장을 맡아서 하면서 권씨 집안의 온갖 제사에
다 참석을 하시며 제사를 지내고 다니셨다.
나와 아버지는 영적으로는 전혀 다른 걸 섬기고 살았고, 아버지는 결국 내게 재산의 한푼도 줄 수 없다며
땅도 나에게는 한뙤기도 안주고 남동생들 앞으로만 땅을 전부 상속하고 심지어 조카에게 까지 땅을 상속해주신 것이다. 그래도 난 내 길을 가리라 생각했기에 그런 것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내 삶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이 내 생활을 영위해 주신다는 확신도 있었기에 종종 드는 불안감을
이겨보려고 그런 부분을 기도도 해왔었다.
그러나 주님을 향해 가는 사역의 길은 너무 험난했고, 나는 좌절과 절망의 끝에서 그 길을 내려놓고 다시 기독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 부터 아버지의 현금 공세는 가끔씩 나를 감동케 했었고, 나는 그것으로 족하리라 하고 부모님께 늘 감사하며 살아왔었다.
그러나 엄마가 4년전쯤에 쓰러지신 후, 아버지의 능력에는 한계가 생겼다. 땅을 다 아들들에게 미리 상속해주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현금 1억도 엄마 병원비로 일년만에 거의 탕진이 되어 버리자 아버지는 무척이나 불안해 하셨고, 농사를 지어서는 도대체 엄마와 자신의 노후를 보장할게 아무것도 없어 보였던지라
내가 하고 싶다고 하는 논술학원을 덜컥 내주셨다. 물론 돈이 최대한 안드는 한도로 3천정도를 투자해 주신 것이다.
그러나 어이하리, 시대를 분별하지도 못하고 시대를 알지도 못하는 이 더듬이 눈 같은 큰딸은 코로나시대에 학원을 열었으니 더구나 엄마의 병원비를 불안하게 여기던 터라 내 마음은 시작부터 초조하기만 했다.
엄마 병원비를 벌어보라고 했던 아버지의 기대도 무너지고, 학원을 하면서 엄마를 돌보겠다고 엄마를 모시고 살기로 한 내 잘못된 판단은 결국 엄마를 요양병원에 모시지는 않게 되었지만, 난 학원을 일년 반도 않되어
문을 닫아야 했다.
코로나에 시작해서 코로나에 문을 닫고 난 천만원 정도를 손해를 봤다. 그러나 아버지가 볼 때 나는 너무 어이없는 큰 딸이 되어 버린 무능한자였다.
쓴다는 소설은 한 편도 제대로 뜬게 없고, 학원도 망하고 당신에게 손해만 끼치는 딸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자식에게 기댈 언덕을 찾되 늘 큰 딸인 내게는 희생을 강요하다시피 하는 우리 아버지.
나는 이제 지쳐버린 것일까.
요즘 나는 아버지와 살면서 자꾸만 부딪친다.
말기암이 갑자기 발견된 아버지는 내게 기대 이상의 기대를 하시고 나는 그게 너무 부담되서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도망하고 싶은거다.
나에게 땅을 물려주시지 않아서 서운것도 이제는 자꾸만 쌓여갔다. 왜 일까? 전에는 그런 감정은 없었는데 집에 들어와서 뇌경색으로 아무것도 못하는 엄마 대신 살림을 하느라 글도 제대로 못쓰고, 아버지의 말기암으로 봄내 여름내 너무 지친 내가 하는 일은 이제 두 늙으신 부모님께 자꾸만 화를 내는 일이다.
어제도 나는 오랜만에 원고를 쓰러 근처에 카페를 갔다가 쓴 원고를 잘 못 눌러서 반은 날리고 반만 겨우 찾아서 브런치에 발행을 시키고 나니 저녁 다섯시 버스 밖에 없었다.
겨우 두시간 글쓰고 마트에서 십분 정도 장을 보고, 버스 정류장에 가니 벌써 어둑해진 것이다.
시골에 사람들은 저녁에 잘 다니지도 않고 저녁에 나가거나 늦은 밤에 집에 들어 오는 걸 제일 싫어하신다. 시골이라서 어둠이 짙고 시간의 개념도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대부분 시골 어르신들의 생활 습관이기 때문이다.
우리집도 대체로 요즘은 내가 저녁 6시전에 부모님의 저녁식탁을 차리는 편이라서 부모님은 내가 저녁에 집에 없다는 것은 굉장히 불안한 요소가 된다.
저녁밥도 늦은데다가 엄마가 가끔씩 화장실에서 벌이는 애교똥이 문제였다. 난 엄마가 실수하는 걸 너무 싫어하는 편이고 아버지는 그런 엄마에게 내가 늘 관대하기 바라시는 것 때문에 전에도 몇번 말다툼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어제는 내가 원고 날라간 화풀이와 막내 동생이 요즘 통 용돈을 안주니 주머니가 너무 비어서 택시를 못타고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한 꺼번에 폭발을 했는지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내가 먼저 화를 냈던 것 같다.
둘이 격한 소리로 한 두마디를 주고 받게 되니 엄마가 갑자기 눈치를 보시는 상황이 되고 난 엄마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속도 엄청나게 상하고 화도 나고 해서 저녁을 차려드리기만 하고 밥도 먹지를 않고 내 방에 들어가버렸다. 그동안 아무리 속상한 일이 있어도 부모 자식 지간이니까 그냥 한 식탁에서 밥은 먹었는데, 어제는 내가 밥을 먹지 않고 방에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니 아버지가 설것이를 하실려고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나서 나는 내가 이따 치우겠다고 그냥 두라고 말하고는 다시 문을 닫고 방안에서 멍하니 유튜브 화면만 봤다. 아 이렇게 언제 까지 살 수가 있는거지. 내가 이렇게 자유롭지 못하게 글을 쓰니 글도 맨날 엉망이고, 기도 시간은 너무 줄어가니 교회에서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만 느껴지니 난 너무 너무 화도 나고 속도 상했다.
이 길도 저 길도 제대로 가질 못하는 나.
글도 시도 소설도 시나리오도 방송글도 그 어떤 글도 제대로는 쓰는게 없는 나.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제는 교회 사역은 내려 놓은지 몇년이나 되었고, 작가로 내밀어야 할 명함은 분야마저 헷갈리는 사람이다.
더구나 부잣집 딸이였지만 물려받은 유산도 하나 없고 난 그 흔한 연금하나도 없다.
그런데 나는 여지껏 하나님 빽만 믿고 살았었다.
그런데 어젯밤 나는 그 하나님께 엄청나게 반박을 하며 울어댔다. 크게 울지도 못하고 숨을 죽이며 아버지가 내 기도인지 하나님에 대한 반박문인지를 모를 넋두리를 들으실까봐 한 시간 정도 울다가 엄마 집에서 오분 정도 걸어야 하는 내 작업실이 있는 야산에 올라가서 밤새도록 울어야 하나 싶을 정도였지만, 밤 열시가 넘어서 작업실을 올라오는 약간의 위험을 감수할 수도 없고, 잠 귀가 밝은 엄마가 내가 밤에 나가면 신경을 쓰실게 뻔했다.
난 누군가를 그다지 잘 좋아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편인 것 같다. 내가 믿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내 마음을 살펴보면 난 그 사람을 그다지 믿지를 못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 적이 많았다. 이런 내가 평생 제일 믿고 살은 사람은 내 아버지였다. 그리고 내가 믿는 하나님이였다.
그런데 요즘은 이상하게 내가 그 두분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이다.
육신의 아버지는 내가 기댈 곳이 없는데 나에게 점점 더 기대시려고 하니 난 피하고 싶은 거고,
하나님 아버지는 신에 대한 나의 헌신과 사랑이 식은 탓 같다.
그래도 매달릴 분은 하나님 아버지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젯밤 그분께 미주알 고주알 대며 기도도 하닌 나의 한풀이 넋두리를 다 쏟아내며 눈물 콧물을 쏟아냈다.
제발 !! 나 좀 잘하는거 하나는 있게 해주시고,
내 평생 먹고 사는 거 책임 지시고,
글 쓰면 돈도 많이 주시라고.
그래서 내가 두 아버지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게 해달라고.
아무래도 요즘 속에 쌓여 있는 감정을 해소하려면
이번주에 김장 150포기 하고 나면 기절할 듯이 아플 텐데
4년동안 한번도 못해본 여행이라도 친구랑 떠나야 할지 고민이다.
그리고 몇 달 동안 용돈을 전혀 주지 않던 막내 남동생이 백만원만 여행비로 쏘아주면 좋겠다.
내 글에 대한 책임감내지 진정성은 곧 내 삶에 대한 책임감과 진정성일진대
나는 지금 왜 이럴까 ....
무엇이 잘못된 걸까...
한 쪽에 귀까지 먹어서 잘 들지지도 않는다고 소리치는 아버지는 치매도 오시는거 같은데
백세를 살기를 원하는 내 아버지는 내게 어떤 책임을 원하는 것인지....
난 정말 부모님 모시고 이 카페 하나 없는 시골에서 버스 타고 다니며 글을 쓰러 나가야 하고
내 재능, 뭐 이런 게 나한테 있었나 할 정도로 일가 친척이나 주변의 사람들에게 무시 받고 살아야 하는건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