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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우리 도망갈까?
by
권길주
Nov 29. 2023
"내게는 지난 이 년이 성인 된 이후 보낸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 시간의 절반 동안은 글을 쓰지 못했고, 나머지 시간 동안 '밝은 밤'을 썼다."
위의 글은 작가 최은영이 '밝은 밤' 소설 전문에 작가의 말 중에 쓴 일부 문장이다.
나 역시 내가 살아온 날 들 중에 요즘처럼 사는 게 힘든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못하고 사는 상황이 힘든 것도 있지만, 마음이 힘들어서
글을 쓸 수가 없다.
그래도 난 젊은 작가가 어떤 힘든 상황에서 일지라도 '밝은 밤'처럼 대작을 썼다는 것이 놀랍고,
부럽기만 하다.
나 역시 소설가로 데뷔란 것을 한지도 벌써 6년 정도가 되어 가는 데, 아직 내 소설책 한 권을 내지
못하고 있고, 내가 소설가란 것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거의 없을 지경이다.
일 년에 서너 편의 단편소설을 쓰는 것으로 족했고, 장편은 서너 번이나 실패를 거듭하다 보니 이제는
엄두도 나질 않아서 나는 아무래도 소설가는 안 되는 건가 싶을 때가 많다.
그런 내게 지금의 상황은 장편소설을 쓰는 일은커녕 단편소설이나 에세이를 쓰기도 벅찰 정도다.
이유는 간단하다. 부모님의 병간호로 난 지쳐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제저녁에도 저녁을 차리는데 친한 친구가 전화가 왔다.
친구는 결혼을 했지만, 근처에 살면서 친정의 부모님 두 분을 다 케어하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인데,
친구의 아버지도 우리 아버지처럼 약간의 치매가 있고, 엄마는 우리 엄마랑 같은 병인 뇌경색 환자이시다.
그런데 어제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친구의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 보다 치매가 조금 더 심한 상태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건 밤중에 거실에서 물건을 들고 혼자서 소리를 지르며 그 물건들을 휘두른다는 것이고, 사위에게도 자꾸만 화를 낸다는 것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여동생 사위에게는 아직은 깍듯이 하는 것을 보면 친구 아버지보다는 덜한가 싶은데,
나에게는 요즘 유난히 화를 잘 내신다.
친구랑 미주알고주알 서로 부모님 얘길 하다가 나도 내 친구가 너무 짠하게 마음이 아팠다.
친구는 자폐가 있는 딸을 키우는데 그동안 너무 젊은 날 마음고생을 많이 한 친구다.
그런데 그런 친구에게도 오빠 둘이 있고, 남동생도 있는데, 부모님을 정작 케어하는 사람은 친구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형제들은 부모님 집에서 한두 시간 이상 거리가 있는 곳에서 살았고,
친구는 부모님과 집이 불과 차로 십분 정도면 달려갈 수 있는 거리다 보니 친구는 자폐가 있는 딸을 하루 종일 신경 쓰면서 사는데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모든 케어는 친구가 대다수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 오빠들은 내가 엄마 아버지 때문에 전화를 하면 잘 받지도 않아.....
응, 우리 집에도 그런 인간이 있어. 우리 막내 남동생은 내가 전화를 하면 거의 전화 잘 안 받고
지가하고 싶을 때만 하는 얘야."
"야, 00 친구야, 우리 이렇게 살지 말고 도망갈래."
내 말에 친구가 퍽하고 전화기에 대고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는 그런 전화 통화를 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다독다독 했지만,
전화를 끊는 내 마음이나 친구의 마음이나 무거운 건 마찬가지였다.
내 친구들의 대부분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 한 분만 살아 계신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친구나 나처럼 두 분이 살아 계시긴 한데, 둘 다 환자인데 집에서 살고 계신 분들은
흔하지가 않다.
대부분은 요양병원에 계시기 때문이다.
친구의 아버지도 내 아버지도 자신들이 약간의 치매가 있지만, 본인들 스스로는 절대로 인정을 하지
않으시는 상태이니 우리는 대화를 하다 보면 금세 무슨 얘기 인지 안다.
부모님을 요양병원에 보내지 않고 모시고 살려고 한 내 마음도 점점 식어가고,
내 친구 역시 형제들과 말이 통하지 않으니 답답해 죽을 지경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제안한 것은 친구야 우리 부모님 곁에 살지 말고 도망가자는 조크였는데,
그 조크가 사실 내 진심이다.
현실은 도망칠 수 없지만, 날마다 어딘가로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날들에
한 번쯤 멀리 가보고 싶은 것이다.
내 친구는 삶에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온 친구다. 힘들어도 언제나 책임감이 강하고 밝게 살려고 하는 친구인데, 그 친구에 비하면 난 너무 나약한 사람이고 게으름뱅이다.
어찌하여 쓰다만 장편소설 '방개아저씨'와 엔도슈사쿠의 '침묵' 뮤지컬을 그만 두려 할 정도로
난 지금의 내가 다시 오를 수 있는 날개의 깃털 하나도 가지고 있지를 못한 걸까?
작가 최은영처럼 아무리 어려운 시간을 지나가도 절반은 글을 쓰지 못하더라도
절반이란 시간은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날갯짓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자폐 딸을 키우면서 두 부모님을 케어하는 내 친구는 나보다 훨씬 강하다.
그건 그 친구에게는 자폐 딸을 키우면서 강하게 성장한 모성애 때문이 아닐까....
혼자 살면서 늘 난 내 애착이 너무 강한 사람이 되어 버린 자는 아닐까?
사역자로 가장 약점이 되는 것은 자기 애착, 즉 자기애다.
다시 말해서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면 사역자는 그 길을 갈 수가 없다.
그런데 내가 볼 때 부모가 되는 것도 자기만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면 그 역시 어려울 것 같다.
자식이 되어서 부모를 돌보는 일 역시 , 내 가정, 내 사랑이 커지면 나를 키워준 부모님이 잘 보이질 않고,
형제끼리는 자꾸 다툼만 일어난다.
한 뱃속에서 나왔지만, 점점 자라면서 생각이 틀려지고, 결혼을 하거나 혼자 살거나
그 사람의 인생은 나름대로의 인생의 틀과 상황들이 달라지다 보니......
한 뱃속 형제에게도 할 말을 다 못 하거나 하고 싶은 않을 말들이 허다하게 쌓이는 것 같다.
나 역시 내가 작가로 끝까지 살고 싶다는 말을 형제나 부모님께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금도 방송국을 나온 후로 글을 써서 벌어 들인 수입은 단 한 푼도 없는 내 상황에
작가로 끝까지 살아 보고 싶다는 말은 내 형제나 부모님께는 절대는 해서는 안 되는 말 같다.
그래도 나는 최은영 작가처럼 아무리 힘들어도.......
- 가장 어려운 시간, 절반 동안은 글 쓰질 못했고,
나머지 절반은 '밝은 밤'을 썼다. -
는 그런 멋진 말을 할 수 있는 작품을 써내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리고 그 책들을 멋지게 사인하는 날 내 부모님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았으면 싶다.
그러면 내가 서른 살에 시를 써서 원고료 천만 원을 탄 돈으로 아버지 빚을 갚아 주던 그런 딸이 다시 되어
이제는 말기암 이신 아버지에게 웃음을 흠뻑 지어 주고 싶을 뿐인데,
그런데도 난 오늘 도망치고 싶다.
긴 장편 소설을 구상하고 그 속에 한 인물 한 인물들과 깊은 사랑에 빠져서 이 야산의 작업실에서
겨우내 문 밖에도 안 가거나 아니면 근처의 카페에서 밤을 새우고 글을 쓰다가 돌아와 지쳐 잠들고
싶은 소설가의 꿈을 문 앞에 걸어두고 ,
나는 오늘도 멀리 가지도 못하는 이 잠깐의 짬에 이 글을 쓴다.
"친구야 도망치자, 힘든 날에는 집에서,
그리고 바다로 가던지 , 예쁜 카페로 가자. 내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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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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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방송작가 ㆍ 심상 시인 ㆍ크리스천문학나무 소설가 ㆍ시나리오 작가 ㆍ교육청 강사 로 살았는데 잘하는건 딱히 없다 ㆍ그런데 글보다 강의가 좋고 영화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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