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연이가 교무실을 한 걸음 정도 앞에 두었을 때 반장 홍석이가 교무실 문을 열고 나왔다. 홍석이는 우리 둘을 보자 무조건 복도 끝으로 산토끼처럼 달아나기 시작했다. 놀란 토끼처럼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으니 더 당황한 것은 나와 연이었다. 시골에 눈곱만 한 분교지만 육성회장 아들이었고, 반장만 내리 3년을 했으니 그 아이는 언제나 어깨가 한껏 솟아 있었는데, 그 순간은 어깨죽지가 무슨 비 맞은 새처럼 축 처진 것이 순간 보였고 우리를 보더니 놀란 산토끼처럼 복도 끝으로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이상하다 홍석이가.
연이도 순식간에 무슨 긴밀한 일이라도 알아챈 듯이 내 얼굴을 쳐다보고는 교무실 앞에 가만히 숨을 죽이고 서 있었다. 나도 그 순간 목석이 되었다.
그리고 나와 연이는 동시에 얼굴과 눈동자를 맞추고 눈빛을 교환했다. 아주 절망적이거나 아니면 알면 안 되는 비밀한 어떤 일에 대해서 뚜껑을 열면 안 되는 일이 있는 듯이 우리는 울듯 말 듯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연이가 나보다는 머리가 훨씬 좋고 공부도 잘해서인지 그 순간 산토끼처럼 뛰어서 달아나는 반장 홍석이를 부르지를 말자고 자기 검지손가락을 자기 입술에 대며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왜냐하면 나는 벌써 눈물이 솟구쳐 올라 울 듯이 울먹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우리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홍석이가 도망가는 것이라고 판단을 했고, 그 이유는 분명 내가 잡은 꿩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는 직감이 왔기 때문이었다.
"집에 가자, 은주야"
연이가 재빠르게 교무실 앞에서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난 엉겁결에 그 말에 대답은 했지만 정작 발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응 그 그래 , 가자 집에 "
이상한 조짐은 교무실이 너무 조용해서 우리가 밖에서 떠들어도 아무도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차마 교무실 문을 열 수도 없었다. 그건 반장 홍석이가 우릴 보자마자 산토끼가 산을 뛰어오르듯이
놀라서 달라 나는 모습은 분명 이상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내가 잡은 꿩을 교무실에 담임 선생님께 말하고 갖다 주기로 했는데, 왜 교무실에서 나오면서 우릴 보고 그렇게 놀라서 달아 날 수가 있단 말인가.
분명 내 꿩에게 문제가 생겼거나 담임 선생님한테 꿩 문제로 혼났거나 둘 중에 하나일진대 우릴 보고 도망을 치니 이건 분명 말 못 할 사정이 반정 홍석이에게 생긴 것이 분명했다.
그놈의 꿩이 문제구나 싶은 생각이 나와 연이 머리를 스쳤고, 눈치가 빠른 연이가 나에게 꿩을 포기시키는 말을 한 것이 바로 집에 가자는 말이었다.
교실에 들려 나와 연이는 각자의 책가방을 둘러맸다. 아침에 빨간 책가방에 꿩을 잡아서 넣어가지고 오던 호기롭던 내 기분은 갑자기 날개가 꺾인 새처럼 힘이 쭉 하고 빠졌다.
"배고파서 빨리 집에나 갔으면 좋겠다. 그놈의 꿩 때문에 배만 고프다.
은주야 포기해. 아무래도 꿩은 선생님들이 데리고 있는가 봐."
연이는 꿩이 어쩌면 선생님들 뱃속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의 말을 차마 못 하고 내가 꿩을 찾을까 봐
학교를 빨리 벗어나길 원했다. 그렇치만 연이도 설마 선생님들이 꿩을 잡아먹지는 않았겠지 하고 교무실과 꿩을 잡아 메어 놓았던 사택의 허름한 부엌을 둘러보고 가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는 눈치였다.
나 역시 연이 아버지처럼 선생님들도 꿩을 잡아서 볶음탕을 해 먹는 그런 사람의 부류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던지라 일단 오늘의 이 이상한 조짐을 더 파보지는 않기로 하고 꿩은 사택에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기에
반장 홍석이가 도망친 이상 더 무엇을 추적하고 싶지가 않았다.
니도 배가 몹시 고파서 등가죽이 힘이 없을 지경이었고, 유월의 한 낮은 길고 지루해서 언제 집에 가서 밥을 먹나 싶은 게 까마득했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나오자, 유월의 따가운 햇살이 더 기운을 뺏다. 그러나 다행히 연이가 콩누룽지를 한 덩이 싸왔다며 학교 운동장에서 그걸 꺼내 나눠 먹으며 수돗가에서 목을 축이니 정말 살 것 같았다. 눈까풀까지 축 늘어진 내 눈도 콩누룽지 한 입을 베어 물자 달큼한 침이 고이며 물과 함께 먹는 콩누룽지 맛은 가히 일품요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갑자기 운동장 저 멀리서 이상하고도 야릇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분명 그 냄새는 고기 냄새였다. 그러나 그 냄새는 가끔씩 집에서 엄마가 백숙을 해줄 때 먹던 닭고기 냄새도 아니고, 돼지고기 냄새도 아닌 처음 맡아보는 고기 냄새가 났다.
그때 연이의 얼굴이 하얘지며 낮색이 바뀌더니 허둥지둥 거리며 나의 손을 잡아챘다.
"야, 은주야, 이거 꿩고기 냄새 같은데, 우리 아버지가 꿩 닭볶음탕 할 때 나던 냄새 같아.
빨리 사택에 부엌에 가보자."
연이가 갑자기 용감한 무사처럼 굴었다. 분명 연이도 내심 걱정을 한 것이 현실로 드러나자 연이는 무사처럼 칼을 휘두를 기세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그런 용기가 생기질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내가 잡은 꿩을 잡아먹는다는 상상이 현실로 되는 것을 눈으로 목격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연이의 팽팽한 호기심과 나의 나약함이 부딪치며 잠시 긴 한숨이 우리 둘 사이에서 토해져 나왔다.
"너 만약에 선생님들이 네 꿩을 잡아서 지금 볶음탕 해서 먹고 계시면 용서할 거야?"
연이의 느닷없는 질문에 난 말문이 막혔다.
뭔가 분명한 낌새를 챈 연이는 선생님들을 향해 용감하게 쓰고 싶었던 무사의 칼 대신 말로 나를 찌른 것이다.
"응... 저 뭐, 용서 못할 것 같은데 몰라 나도 "
난 내 마음도 알 수 없고, 답변할 말도 생각도 잘 안 났지만, 용서 못한다는 듯이 말을 했다.
"그럼, 용서하면 안 되지. 선생님들이 살생도 하고 학생한테 거짓말도 하고 그럼 안 되지."
연이는 자기가 금세 재판관이 되었다. 그리고는 탕탕탕 판사처럼 운동장에 망치를 두드리는 시늉을 주먹을 쥐고는 허공에다 대고는 쳐댔다. 그러나 연이도 그 용감한 무사의 흉내는 내도 선뜻 사택의 부엌을 가지는 않고 그쪽에 대고 코만 벌름거렸다.
"아, 이 냄새는 분명 닭고기탕 냄새가 아닌데, 꿩일지도 모르겠다만 은주야 일단 우리가 배고프니까
빨리 누룽지 먹으며 집이나 가자. 모든 비밀은 내일 반장 홍석이게 게 물어보자꾸나."
나는 연이가 내 손을 잡고 콩누룽지를 한 주먹 더 떼어 주면서 잡아끌자, 운동장을 지나 사택의 조그만 부엌이 있는 쪽을 한 번 더 쳐다보고는 학교 정문의 비탈길을 내려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저수지 길에는 키가 하늘을 찌를 듯한 미루나무들이 쭉쭉 서서 시원한 그늘 만들며 자기들 키를 자랑하고 있었다. 저수지를 다 돌아서자, 아침에 꿩을 잡았던 과수원 울타리가 보였다.
나는 그때서야 내가 아침에 꿩을 잡아서 빨간 책가방에 그 꿩을 넣어서 책가방을 호크를 잠그고, 그 꿩이 든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간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내가 다리를 다친 꿩을 잡지만 안 했어도..... 아니 잡아서 학교에 가지만 안 했어도 됐는데........ 후회와 이상한 울음이 내 가슴에 벅차게 밀려오자 난 갑자기 미루나무
그늘이 지난 땡볕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길바닥에 앉아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유월의 미루나무 잎들이 반짝거리는 햇살 사이로 미끄러지듯이 쏟아지고, 내 얇은 하늘색 원피스는 그날 인생에서 처음으로 느낀 이상한 배신감에 눈물로 얼룩덜룩해지고 말았다.
다음날 학교에 갔을 때 반장 홍석이도 담임 선생님도 더 이상 내 눈치를 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도 그 둘에게 더 이상 꿩을 달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물론 연이도 꿩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무슨 말도 하는 걸 싫어해서 반 아이들도 그 일을 우리에게 묻지는 않은 것으로 그 꿩의 존재는 조용히 우리 교실반 교실에서도 나와 연이의 기억 속에서도 점점 잊어져 갔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처럼 집 마당에서나 마루에 걸터앉아 라디오 연속극을 들으며 초등학교를 마쳤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밤새도록 텔레비전에 명화극장을 보면서 사춘기를 보냈다. 그 사춘기부터 나는 줄 없는 연습장에 시를 쓰기 시작했고, 나는 서른이 못되어서 시인이 되었고, 서울 여의도에 있는 모방송국에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가 되었다.
방송작가 초보시절 나는 갑자기 한국의 민요를 취재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프로그램에 취재를 맡아서 전국을 다니며 민요와 전래동요를 취재한 적이 있었다. 그때 부안의 바닷가 어촌 마을에서 한 할머니에게서 들은 꿩 노래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꿩꿩 장서방
무엇 먹고 사는가
앞집에서 콩한섬
뒷집에서 팥한섬
그럭저럭 사네마는
덤불밑에 포수 때문에
못살겠네
오래된 알전구가 켜진 할머니의 허름한 방 안에서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함께 들었던 할머니의 꿩노래는 재미있고 구성졌다. 그해 나는 그 한국의 민요와 전래동요 취재를 통해서 방송국에서 라디오 부문 취재대상을 탔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내가 다닌 초등학교가 있던 저수지를 돌면서 산책을 할 때면 이제는 다 사라지고 없는 키 큰 미루나무와 내가 꿩을 잡았던 과수원 울타리를 둘러보며 그때 내가 잡았던 꿩은 정말 어디로 갔을까?를 가끔 회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