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성탄인데....

by 권길주

오늘 아침,

소복소복 쌓인 흰 눈이 유리알처럼 반짝반짝 빛을 내며 햇빛에 녹아드는 길을 밟으며

내 작업실에 올라오는 5분 동안 나는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오늘이 성탄 이브인데, 내 주변에는 세상을 비추는 사람이 있는가.

나는 그런 사람이 절대 못되지만, 내 주변에 누군가는 그런 사람이 있는지를 돌아봤다.


그런 사람 한 사람쯤은 나도 곁에 두고 살고 싶은데...지금도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이

한 사람쯤은 있는 건지 싶어서 가만히 주위에 사람을 살펴본 것인데,

나는 문득 내 아버지의 소중한 고향 여자친구셨던 '방배동 아줌마'가 생각이 났다.


우리 아버지는 88년을 살면서 70세까지는 고향 여자친구가 있었다.

정말 여자친구라고 하면 깜짝 놀라겠지만, 그분은 아버지의 고향 친구셨다.

살아계시면 아버지와 동갑이시지만 너무나 아쉽게도 그분은 70세 되시던 해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하직하셨다.


그분은 내 아버지가 가장 힘들 때 서울에서 한걸음에 달려오셔서

신문지에 돈을 현찰로 8천만 원을 싸가지고 와 아버지 빚을 다 갚아 주셨다.

그리고 그 다음에도 아버지의 과수원을 이자도 안 받는 조건으로 하고 잡아서 주식으로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 아버지의 큰 빚을 다 갚아 주시기도 했었다.


물론 그분은 서울에서 우리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의 자산을 가지고 사셨던 분이셨고,

큰 사업가였기에 그런 돈쯤은 정말 새발의 피도 안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정말 자기의 속옷도 꿰매서 입을 정도로 절약에 절약을 하시고

옳은 일이 아니면 절대 돈을 쓰지 않으시는 분이셨다.


그런데 그분이 시골 고향에 관한 일이라고 하면 합당한 일이면 고향 사람을 돕는 일에는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셨고, 우리 마을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혜택을 받고

살았는지 모른다.


나 역시 그분이 살아계실 때 나를 더 가르쳐야 한다고 추계예대 영상문예대학원에 입학금을

그 당시 오백만 원 정도를 선뜻 내주시며 대학원을 다 마치고 꼭 훌륭한 방송작가 겸 시나리오 작가로

성공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었다.


그 분이 평생에 하신 선한 일은 일일이 거론할 수도 없지만,

그것이 꼭 돈이 있어서 한 일이 아니신 일도 참 많았다.

시골 교회가 지붕이 샌다고 하면 교회 전체를 리모델링해주셔서 지금까지도 우리 시골 교회는

참 아름다운 외형과 수십 년이 지났어도 비가 와도 전혀 새지 않게 해주시고,

마을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가 대학에 갔는데 입학금이 없다고 하면 내주시고,

누가 너무 억울한 일을 당해서 감옥에 가야 한다면 그 돈을 다 해결을 해주시고,

홍수로 재앙이 있는 해에 마을에 피해가 크다고 하면 마을 회관에 돈을 아낌없이 지원하시던 분


그런 분이 내 아버지의 고향 여자친구분이셨다.


아버지는 그분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후 그 집에 자녀들을 위해서

해마다 김장을 하면 손수 택배로 쌀과 함께 그 집 아들 딸에게 김장김치와 들기름, 고춧가루, 콩 같은걸

같이 보내시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명절이면 그 집에 딸은 꼭 우리 집에 부모님을 찾아뵈는 것을 보면

내 아버지가 참 여자 친구복도 많구나 하고 나는 가끔 미소를 띠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아줌마가 내게 베풀어주시고 아꼈던 만큼 그 분의 사랑과 배려에 보답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그분의 기대만큼 나는 된 일도 없고, 오히려 아줌마가 세상을 떠나시던 해에

나는 내 인생에서 전혀 꿈도 꾸지 않았던 사역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는

글과는 상관이 없은 길을 한 십년 정도 갔었으니 아줌마와의 약속은 아직도 거의 지키지를 못하고 있다.


그리고 식구들 중에 방배동 아줌마 (교회에서 직분은 권사님)이 가장 많이 아껴준 사람은 엄마 아버지 다음에 나였기 때문에 나 역시 아줌마가 돌아가셨을 때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우리 집은 방배동 아줌마가 아니었으면 어쩌면 20년 전쯤 가족이 다 거지가 되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우리 아버지는 그때 주식으로 온 가산이 탕진이 되었고, 아버지는 매일 나에게 전화를 해서

아버지는 농약 먹고 죽을 거라고 전화를 하셨었으니......

나도 방송국에서 일은 해야 하는데 정말 죽기 일보 직전처럼 온몸과 마음이 힘이 들었을 때

내가 찾은 분도 바로 그 방배동 아줌마였었다.


어느 날 영락교회에서 부흥회를 마치고 공중전화로 시골집에 전화를 걸으니 늦은 밤 아버지는

전화를 받으시더니 주식으로 이제 땅이 다 넘어가게 되었다고

당신이 오늘 밤이라도 농약을 먹고 죽어야 한다고 우시는 게 아닌가.


세상에 ....... 그렇게 성실하게만 사셨던 내 아버지가 주식을 하셔셔 망하다니

온 가산을 다 탕진하셨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이야기인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얘기가 우리집에 일어난 것이다.


나는 마음이 너무 다급했고, 이런저런 생각을 할 사이도 없이 방배동에 전화를 했다.

그 당시는 삐삐밖에 없으니 집으로 직접 전화를 해댄 거다.

"아줌마 우리 아버지 죽는데요."

나는 그 말만 하고 공중전화 부스에서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아줌마는 내일 아침에 당장 방배동으로 오라고 하셨고, 나는 새벽같이 아줌마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아줌마는 내게 딱 한 가지 지침을 내리셨다.

시골에 당장 가서 아버지 빚을 단 한 푼도 남기지 말고 다 종이에 적어와라.

그리고 액수의 총액을 적어라. 아버지 보고 절대로 한 푼도 빚을 숨기지 말라고 해라.


정말 이런 구세주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난 지금까지 그렇게 완벽하시고 똑똑하시고 모든 면에서 훌륭하신 분을

내 주변 가까이 에서 본 적이 없다.


이렇게 두 번이나 내 아버지는 엄청난 빚을 청산하고도 주식에 손을 완전히 떼지는 못하고

미련을 가지고 있다가 결국은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재산을 다 주식으로 날리셨다.

우리 아버지는 평생을 너무나 성실하게 살았는데, 전재산을 거의 다 날리다시피 하고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는지 ....

그래서 나는 아직도 주식이라고 하면 단 한마디도 주식에 관한 얘기를 듣는 것도 싫어하는 편이고

돈은 당연히 버는 것보다는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의 돈은 될 수 있으면 분산투자를 해야 완전히 망하는 것을 미리 방지할 수가

있다고 난 믿는다.

그때 방배동 아줌마가 내 아버지에게 가르쳐준 부자의 신의 한수는 '분산투자'였기

때문이다.

부동산과 주식과 저금이나 적금이였다


그러나 방배동 아줌마처럼 세상에 별로 흔하지 않은 훌륭한 분은 왜 세상을 또 그리 일찍 하직하신 것인지

모르지만, 아줌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도 아버지도 참으로 힘을 잃은 마음이었댜.


나는 나의 인생의 커다란 지지자였던 분이 떠나신 것이고,

아버지도 평생에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누군가 내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있다면 이 세상에 그 사람보다 소중한 사람이

또 있겠는가.

그리고 누군가 나를 죽고 싶게 만들 만큼 고통스럽게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죽어도 용서가 되겠는가.


사람들이 살면서 한 번쯤은 부모나 형제가 아니라도 나를 생면부지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위기에서 나를 살려준 사람을 만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반대로 나와 내 집안을 망하게 하거나 앞길을 그르치게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어쩔 수 없이 우리 인생에서는 펼쳐질 때가 있다.


그러나 인생이 풀리려면 축복도 사람에게서 비롯되고, 사람의 대다수가 불행을 겪으려 하면 그 일도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사람만큼 이 세상에 소중한 존재는 없다고 생각을 한다.

내가 누구를 만나느냐는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이고 인생을 좌지우지 할 정도가 된다고

생각하기에 길거리에 지나가는 노숙인이라고 해도 나는 누구를 만나느냐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편이다.


그러나 요즘은 내 마음에도 내가 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점점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사람에 대한 신뢰나 배려 그리고 믿음이 선뜻 생기지를 잘 안는다.


어제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서 요즘에도 시골에 저런 청년들이 살고 있다면 시골도

정말 희망이 있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내 아버지와 방배동 아줌마도 바로 그렇게 시골에서 어릴적 부터 흙에서 자라는 것 같이 나눠먹고

코흘리개적 부터 한 동네에서 살다보니 고향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성을 떠나서

각별하게 이루어지고 그 각별한 관계는 서로를 끝까지 신뢰하고 믿는 관계로 유지된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세상이 너무 믿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해도 지금도 우정을 든든히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고,

아무리 사는게 살벌하다고 해도 누군가는 늘 우리 방배동 아줌마처럼 동네 사람 돌보듯이

가난한 이웃들을 살피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세상을 비출 수 있는 그런 좋은 영향력에 사람들이 내 곁에 많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해본다.

무엇인가를 많이 가져서가 아니고 남에게 많은 물질을 베풀어서가 아니라

서로 곁에 있으면 믿어지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초등학교때 부터 고아였고, 가난한 작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방배동 아줌마는 동네에 부잣집 딸로 그 당시 서울에 명문여고를 졸업한 박식한 사람이였다.

그러나 그런 두 사람이 70까지 친구로 지낼 수 있었고, 지금도 그 자녀들까지

우리 아버지를 돕기도 하고 서로 친분이 끊어지지 않고 지낼 수 있는 것은

고향친구란 신뢰와 믿음도 있지만, 인간이 인간을 향한 순수한 믿음이 더 중요하게

자리를 잡고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 바탕을 둔 신임이였다고 난 생각한다.


하늘에 계신 방배동 아줌마가 끝까지 날 믿을 수 있도록 좋은 작가가 되어야 하는데,

오늘도 난 왜 글 실력이 이 정도 밖에 않되는지 모르겠다.

내가 인간이 된 수준만큼 내 안에 글도 수준이 달라질텐데

늘 내 아버지가 아직도 내가 인간이 덜 되었다고 하시니........ 난 나를 보면 모든게 끌끌이다.


그래도 내 주변에는 세상을 비추는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이 밤에도 가난하고 외롭고

병든 자들을 찾아 다닐 것이다.

왜냐하면 내일은 우리를 죄에서 구해주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메시야로 오신 성탄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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