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의 기준

by 소이

꽤 쇼핑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귀신같이 저렴하고도 귀엽고 적당한 아이 옷을 발견할 때, 잘 어울리는 액세서리를 구입할 때, 남들이 발견하지 못했던 옷을 매대에서 쏙쏙 찾아낼 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난 후 남아있는 물건들을 보면서 그 순간에 만족하는 쇼핑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그저 예뻐서 충동적으로 사들였지 내가 진짜 원하던 물건들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물건들이 이제는 썩 마음 설레는 물건들은 아니지만 나름의 이유로 집안 곳곳에 남아 있었다. 옷장에는 옷장대로, 주방은 주방대로, 거실은 거실대로. 숨어있는 공간마다 그런 물건들이 공간을 차지했고, 몹시 지치는 일상이 반복될수록 여백 없이 들어차 있는, 치우는 수고로움까지 얹어주는 물건들이 거추장스럽고 오히려 정신적으로 괴롭게 했다.


그동안 봐왔던 정리 책들에 참고할만한 팁들이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나에게 어떤 기준을 제시해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책을 읽은 그날 마음이 내키면 한 구역 정도 정리하는 정도였는데 곤도 마리에의 <정리의 기술>을 보고 앞으로도 정리를 할 때 이렇게 해야 되겠다 하는 기준을 세우는 데 도움을 받았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누구나 맞는 방법은 아니겠지만 나는 정리 방법이 아니라 기준이 필요했고, 특히나 추억과 미련이 정리를 방해하던 경우라 버릴까 말까 망설였던 부분에 큰 도움이 됐다. 그렇게 가장 어려웠던 옷 정리를 했고(엄청난 추억들을 정리하면서 울기도 했지만) 이제 제법 옷과 옷 사이 여유를 가지고 옷을 꺼내고 넣을 수 있는 상태가 됐다. 정리 후에 느낀 것은 꼭 남겨야 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맥시멀 라이프를 조금씩 벗어날수록 물건에 생기는 여유는 다른 부분까지도 여유를 옮겨주는 듯하다. 미니멀 라이프도 아니고, 억지로 줄여가며 여유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기분 좋을 만큼의 여유를 갖는 것은 물질적 여유뿐만 아니라 정신적 여유도 가져다준다는 것을 느끼고 나니 정리가 쉬워진다.



정리는 그저 물건의 재배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리는 눈에 보이는 것 너머까지 함께 정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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