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소개할 일이 있다는 건 새로운 일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두세 번 쓸 일없이 살아간다는 게 좋은 의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프리랜서의 경우 제안받는 입장이 되기도 하지만 아직 내 경우는 제안할 일이 더 많은 쪽이다.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제안하는 것 역시 어느 정도는 자신감을 가지고 해야 하는 일이라 매번 좋은 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에만 초연해지면 나쁘지 않다. 물론 쉽지 않지만.
앞으로 몇 달 사이에 채용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내야 할 상황이라 주말 일정에는 밀린 강의 수강과 자기소개서 작성만 적어뒀다. 사실 오후 내내 쓰고 마무리 지을 줄 알고 저녁에는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결국 저녁 식사 전까지 절반도 채우지 못해서 저녁까지 쓰게 됐다. 정말 몇 년 만에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는데 어쩜 글쓰기를 꾸준히 해도 첫 막막함은 그대로인지.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나.... 이렇게 시작하는 오래전 자기소개서 양식들이 떠오르는 것도 항상 같은 장면인 것 같다. 어느 정도 틀을 갖추면서 상호 간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쓰고 읽고 지우 고를 반복했다. 첫 문장을 쓸 때는 기분이 썩 좋지 않은데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내가 왜 이런 성격의 장단점을 써야 하는 거야~" 하는 내향성에서 오는 거부감, "나는 누구지" 하는 막막함, 그리고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는 이 상황에 대한 괜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하얀 화면 속에 커서가 깜빡이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나도 그저 눈만 깜빡이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러다 브레인스토밍을 하고서야 글 쓸 가닥이 잡혀 키보드 소리가 제대로 들리기 시작한다. 오늘 안에 초안 완성이 안되면 어쩌나 걱정을 하면서 쓴 자기소개서는 어느덧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었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소개서를 대하는 마음도 조금 달라지는 건지 다 쓰고 읽어본 자기소개서는 20대 초반에 쓴 것과 정서적으로 다름이 느껴졌다. 열심히 하겠다며 좋은 말은 다 갖다 쓰던 열정은 정제되고, 가치와 본질, 상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주장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 비굴해 보일 정도로 열심을 이야기하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고, 그래도 앞날의 포부가 조금 더 구체적이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느껴졌다.
어떤 성격의 글을 쓰든 읽을 때마다 고쳐야 할 부분이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SNS의 짧은 글도, 블로그의 모집글도, 책을 읽고 쓴 서평도,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그러니 기죽지 않고 고치고 또 고쳤다. 제출하기 직전까지 또 고치고 고치겠지만. 이제는 자기소개서에 있는 글 속에서 본질이 무엇인지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만 기억하려고 한다.
참 오랜만에 쓴 자소서는 몇 년간의 강사생활을 돌아보게 만드는데 이거 참 괜찮다. 나쁘지 않다. 몇 년 뒤에는 좀 더 싱싱한 이야기도 내공 있게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소서를 받아보는 사람이 되어있으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