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조금 더 액셀을 밟으며 속도를 낸다. 퇴근 준비를 급히 서두르는 편은 아니지만 시동을 걸면 조금 급해진다. 학교를 안전하게 벗어나면 조금 속도를 낼 수 있는 도로가 있는데 퇴근시간이라 차들이 많을 때도 있지만 이 구간에서 짧은 일탈감과 해방감을 느낀다.
늘 보던 길인데 바람을 느낄 수 있고, 곳곳에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자연이 있고, 지금이 몇 시인지 알 수 있고, 원하는 만큼 액셀을 밟을 수 있고, 핸들의 감촉을 느낄 수 있는 이 순간이 갑자기 소중해졌다. 가끔 뜬금없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오늘 퇴근 길이 그랬다.
"내가 갑자기 볼 수 없다면 어떤 것이 가장 아쉬울까?"
"내가 갑자기 들을 수 없다면 어떤 소리가 가장 듣고 싶을까?"
"내가 갑자기 걸을 수 없다면 어디를 가장 가고 싶을까?"
"내가 갑자기 말할 수 없다면 어떤 말을 가장 하고 싶을까?"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누운 채로, 정신은 있지만 볼 수도, 말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이 그렇게 연명해야 한다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아주 가끔이지만 주로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한참 진지해진다.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일을 경험한 사람들이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에서 "왜 나라고 그런 일이 안 일어난다고 생각했을까?"로 관점이 바뀌면서 이런 상황들을 극복한다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듣고 흘려버린 이야기가 뜬금없는 생각과 함께 떠오르기도 한다.
순간 이 모든 것들이 멈춘 것 같은 기분과 함께 모든 게 덧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곧 감사하게 된다.
나에게 허락된 하루에, 시간에, 내 삶에.
가족이 보내는 소소한 문자를 읽을 수 있고, 삶에 풍요를 불어주는 책을 읽을 수 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 사랑해요"를 속삭이는 아들의 목속리를 들을 수 있고, 출근길에 어떤 구두를 신을까 고민할 수 있고, 자랑도 변명도 감사도 말할 수 있는 삶이 허락되어 감사하다.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바라던 내일일 테니까.
마음이 지쳐서 영혼이 탁해졌나 보다.
한참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집에 도착할 즈음에는 제법 가벼워진 마음과 감사가 머물며 좋은 기운을 우리 집으로 가져갈 수 있게 됐다. 삶에 겸손해야지.
마음에 겸손과 감사를 가득 담아 집으로 들어갈 거야.
오감을 다해 선물 같은 하루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