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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Jan 04. 2022

시간도 마음도 빈곤한 날.

“7시 30분이야~ 얼른 양치하고 옷 입어~”

매일 아침, 한결같은 바쁜 하루가 시작된다.   

  

사랑하는 가족과, 일, 꿈을 위해 시작된 공부. 포기할 수 없고 해야 하니까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간소하게나마 가족을 위한 아침상을 차린 후 가족들을 다 보내고 나면 어질러진 집 여기저기가 눈에 들어온다. 치운 건 티가 안 나지만 안 치우면 티가 나는 게 집안일이다. 어휴.. 눈 뜬 지 고작 1시간 지났을 뿐인데 다시 주저앉아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상황이 이러니 눈 떠서부터 잠이 들 때까지 제일 많이 바라보는 건 사랑하는 아이가 아닌 시계다.     


눈을 감고 있는 순간마저도 바쁜 하루를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런 삶이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따뜻한 집에 제 역할 충실히 하는 남편에, 이렇게 취업하기 힘든 때에 내 일이 있는 게 어디야. 감사했고,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종일 종종거리며 다니는 일상이라도 엄마의 삶이 다 그렇지. 남편은 어디 쉽겠냐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나였다. 억지로라도 그렇게 여기려고 노력했다. 다 놓을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아이가 아픈 날이면 가까스로 버텨오던 시간들이 다 엉키고 무너졌다. 선택할 수 없는 그런 돌발적인 상황들은 내가 시간 빈곤자임을 더 상기시켜줬다.    

 





“엄마 나 배도 아프고 엉덩이도 가려워~”

“괜찮을 거야~ 따뜻한 물 많이 마셔. 나중에 집에 가면 엄마가 깨끗하게 씻겨줄게~”

배가 잠시 아플 수 있고 피부가 건조하면 가려울 수 있다. 아이가 아프다는 말에 아이의 몸을 살펴보긴 했지만 사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기를 2주. 아이의 증상은 계속됐지만 시간에 쫓기니 병원에 갈 여력이 나지 않았다. 정 급하면 부탁했겠지만 저러다 낫겠지 했었다. 그러다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내어 병원에 가게 되었다.      


아이의 증상은 다름 아닌 항문소양증.

주위에 엄마들도 나도 처음 들어본 이 증상은 아주 드물게 아이들에게 나타난다고 한다. 지나치게 먹은 간식들 때문일 수도 있다고 의사 선생님이 얘기하셨다. 처음엔 ‘뭐 그런 병이 있지?’ 했었지만 큰 병도 아니고 수술해야 하는 병도 아니니 정말 다행이다 하며 처방받은 약을 받아 가벼운 마음으로 약국을 나섰다.   

   

시간에 쫓겨 아이를 늦게 병원에 데려갔고 더구나 과하게 먹은 간식들 때문에 생긴 증상이라고 하니 한숨이 나왔다.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느라 시간을 쪼개고 쪼개 써도 아이에게 모자라다는 걸 알고 있다. 이렇게 아이가 아플 때면 더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다른 때 같았으면 늦었으니 또 사 먹거나 배달을 시켰을 테지만 아이의 증상이 그러하니 얼른 밥을 차려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집에 가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냉동식품만 가득했다. 방금 병원에서 나온 아이에게 엄마라는 사람은 또 냉동식품으로 밥을 차리려 했구나 하는 생각으로 시작된 미안한 마음은 자꾸만 마음속 여기저기를 헤집고 번져나갔다.






저녁 8시.

아직 할 일은 책상 앞에 그득했고, 아픈 아이에게는 엄마 손길이 평소보다 더 필요한데 냉장고 앞에서 어찌할 바 모르는 내 모습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냉장고에 남아있던 야채들을 손질해서 급하게 된장국을 끓이고 계란 프라이를 해서 아이 앞에 내어 주었다. 한 가지 국과 한 가지 반찬이 어찌나 초라하게 느껴지던지. 아이는 속도 모르고 해맑다.

맛있게 한 그릇 먹어주니 고마우면서도 간식을 왜 그리 많이 먹었냐고 잔소리까지 얹었다.      


    

“좀 잘할 수는 없는 거야? 다른 건 몰라도 애 먹는 것도 못 챙겨?”

마음속에서는 쉴 새 없이 나를 자책하는 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나는 시간이 없다는 것에 지쳐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바쁜 일상이 멋진 커리어 우먼의 모습이라고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 왜 바쁜지 보다 그냥 바쁨 자체에 익숙했던 것은 아닌지 자책은 계속 이어졌다.     


시간이 빈곤하다고 불평을 하며 화가 가득한 날도, 지친 날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평온하기보다 그런 감정의 날들이 더 많았다. 불평은 하면서 개선을 하거나 내가 사용하는 시간을 살펴보지는 못했다. 당연히 나는 지금 생활이 최선이니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 이 상황을 조금 달리 바라보고 변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바쁘고 동동거리는 하루처럼 내 마음도 늘 둥둥 떠 있었다.  





  

문득 우리 엄마가 생각난다.

내가 어린 시절 엄마는 장사를 하셨는데 매일 밤 12시가 되어야 집에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린 동생과 나를 둘만 집에 두고 매일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엄마는 마음이 어땠을까. 엄마도 워킹맘이었네. 아빠는 도와주지도 않았고 정말 힘들었겠다. 그런데도 어찌 그렇게 매일같이 건강한 아침상을 차리셨을까? 당연하게 받았던 아침상이 새삼 엄마의 고단함으로 느껴졌다.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아이에 대한 미안함은 범벅이 되어 한참 동안 마음이 복잡했다.     



돌이켜보니 엄마는 시간을 참 잘 활용하셨다.

어떤 것이 나와 가족을 챙기는 방법인지 알고 계셨던 것 같다.

나는 여태 우리 엄마는 일찍 일어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어리석게도 내 자식을 낳고서야 엄마가 왜 그런 선택을 했었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새벽 시간을 활용하는 것은 마냥 힘들기만 한 희생이 아니라 가족도 챙기고 나도 챙기는 방법이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이었다.



내가 시간 빈곤자에서 시간 미니멀리스트로 변하겠다고 생각한 건 꽤 긴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도 아이도 가족도 지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불필요한 시간을 정리해서 진짜 내가 필요한 것에 시간을 쓸 수 있는 시간 미니멀을 할 수 있을지 방법을 몰라서 어려웠지만 우리 엄마처럼 시간을 잘 쓰는 엄마,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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