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가 "신속, 정확"을 이야기하실 때마다 자꾸만 중국집 배달 아저씨가 떠올랐다. 내가 어릴 때는 중국집마다 배달 직원이 있던 시절이었으니까. "아, 실수 없이 빨리 배달해야 돈을 많이 벌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머릿속 생각과 다르게 조금 느린 감각을 가지셨던 엄마에게 신속, 정확은 꽤 중요한 부분이었나 보다.
엄마는 내 첫 책상에도 견출지로 한 자 한 자 적어서 붙여두셨는데 아직도 책상의 글자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엄마 글씨로 붙여놓은 견출지가 싫지 않아서 떼어버리지는 않았지만 그 의미까지 깊이 와닿지는 않았다.
'시간이 돈'이라는 말이 와닿기 시작한 건 내가 직접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첫 직장이 은행이었는데, 10년 전이니 지금보다 업무 환경이 좋지 못한 탓도 있었겠지만 사회 초년생인 어설픔도 아직 벗지 못했을 때라 모든 것이 쉽지 않았다. 정신없이 고객 응대를 하고 난 후 마감을 하면 간혹 돈이 모자라는 경우가 있었다. 기계로 세어보고 손으로 세어보고 돈 세는 스킬은 날로 늘었지만 그다지 도움이 안되는 날이었나보다. 내 자리 마감이 되지 않으니 다른 직원도 보고서 마감을 못하고 기다리고 있어서 얼마나 진땀이 났었는지 모르겠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1원도 틀리지 않고 정확해야 마감을 할 수 있는 직업 특성상 눈치 보인다고 무조건 내 돈으로 메꿀 수도 없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힘든 상황이었다. 책상 주변 종이나 쓰레기마저도 돈으로 보일만큼 열심히 뒤져도 찾지 못한 차액은 결국 한 달 내내 고생해서 번 내 월급에서 메꿔 넣어야 했다.
미숙한 실수로 인한 눈치는 물론이고 결국에 찾지 못한 돈 때문에 열심히 일했던 시간도 돈도 날아가는 순간. 속상한 기분은 물론 하루를 날려버렸다는 상실감마저 들었다.
엄마한테 딱지가 않도록 들었던 시간이 돈이라 말이 와닿기는 했지만 행동이 바뀔 만큼 와닿지는 않았나 보다. 나는 하루를 날려버린 기분을 느낄만한 실수도 맥주 한 캔이면 잊을 수 있었고, 운이 나쁜 그런 날을 빼면 시간은 늘 풍요롭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시간이 돈이라는 말이 안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스트레스 해소라는 명목으로 퇴근 이후의 시간은 언제나 시원시원하게 써버렸다. 결혼 전이었으니까.
퇴근 후면 친한 직장 동료와 함께 그날의 속상함과 표적이 되는 상사의 험담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러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도돌이표 같은 직장생활과 스트레스를 그렇게라도 풀어야지 하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없었는데 매일 3시간도 부족할 만큼 카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직장인이면 다들 그러고 사는 줄 알았고, 특별히 가슴 설레게 이루고 싶은 꿈도 없었으니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결혼 전의 황금 같은 시간을 겨우 직장 상사 험담이나 하면서 물 쓰듯 써버린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행동이었는지 아이를 낳은 어른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험담할 시간에 자기 계발을 했어야지.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어리석었나 싶은 생각에 후회가 밀려온다.
아이를 낳고 이제 내 꿈도 찾아봐야지 했던 어느 날.
무엇이 문제인지 몰라서 시간에 허덕이기만 하다가 시간 미니멀리스트가 되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리곤 종종 시간을 물 쓰듯 했던 어린 어른의 시절이 떠오른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내는 시간 미니멀리스트가 되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