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조금 바쁜 사람처럼 움직이고 나면 바빴으니까 알차게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시간이 많아도 자꾸만 할 일을 잊어대는 통에 하나, 둘 메모를 하다가 어느 날 내가 써 놓은 메모들을 보니 죄다 장보기, 분리수거하기, 서랍 정돈하기, 잊지 말고 전화하기... 살림을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메모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지만 시간을 정해두지 않으니 "내일 하지 뭐~" 하고 미루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보면 일주일 내내 체크리스트에 머물러 있는 것들이 보였다.
미루어둔 일들이 얼마나 미루었던 일인지 알게 되기 시작했고 목록 하나하나를 지워나가는 재미에 조금 더 체크리스트에 애정이 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집안 대소사, 지인 경조사는 달력이나 휴대폰 알람으로 충분했으니 굳이 체크리스트의 필요성을 몰랐지만 사용해보니 효율적이기도 하고 하루를 돌아볼 수 있어서 계속 쓰고 싶었다.
밖에서 일을 하든, 안 하든 살림은 언제나 내 몫이기에 처음에는 대부분 살림에 관한 리스트였다. 그러다 매일 꾸준히 쓰다 보니 이렇게 살림 챙기듯 나도 챙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영양제 먹기, 물 3잔 마시기 등 나를 위한 목록도 한 두 가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체크리스트에 나의 하루가 채워졌고 다 지워진 체크리스트를 보는 게 뿌듯했다.
작은 습관이지만 좋은 습관 하나는 나비효과처럼 퍼져나가 살림 외에도 많은 부분들이 정리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나도 정말 하루를 알차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점차 몸에 익숙해진 리스트는 빠지게 되고 나에게 필요한 자기 계발에 관한 목록들이 체크리스트로 속속 자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정해진 역할과 늘 해야 하는 일들이 섞이기 시작하면서 체크리스트 만으로는 복잡한 일상을 여유 있게 정리하기가 힘들었다.
오늘만 달리는 사람처럼. 오늘 할 일만 중요한 사람처럼. 체크리스트의 역할은 여기까지인가 싶었다.
우선순위를 아무리 바꿔도 복잡한 일상을 체크리스트로 해결 하기에는 부족했고 하루가 아닌 일주일을, 한 달을, 1년을 잘 살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서툰 걸음으로 시작했던 체크리스트 사용 습관은 생활 속에 녹아들어 더 많은 부분을 건드렸고 끝내는 내 꿈이 뭔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게 되었다.
손으로 써보고 고민하길 반복하다 보니 체크리스트로 잘게 쪼개어지기 전, 더 큰 덩어리인 장기 계획과 인생 목표가 있어야 되는 거 아닐까 하던 생각이 들었고, 체크리스트만 잘 써도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숲을 보고 나무를 봐야 되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이제 막 펼쳐진 큰 그림을 보는 것처럼 인생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쉽지 않으니 앞으로도 얼마나 수정할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여기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뿌리를 찾아 들어가는 경험으로 많은 것들이 다르게 와닿았고, 잘게 쪼개어져 체크리스트로 오는 것들 역시 달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나의 꿈, 비전, 신념이 중요한 거구나.
아! 그래, 이게 없어서 힘들었구나.
부딪혀보니 알 것 같았다.
이제는 체크리스트로 오늘을 가꾸고, 비전과 신념이 깃든 계획으로 인생을 가꾸는 사람으로 성장 중이다.
아름다운 나의 삶, 나의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