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이 되면서 머리가 되게 간지러운 날이 종종 있었다. 두피가 너무 건조해서 그런가 싶어 촉촉한 타입의 샴푸도 사용했다가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가 싶어 지성용 샴푸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래도 소용이 없자 머리가 너무 빠져서 그런가 싶어 탈모샴푸까지 샀더랬다.
어느 날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가 갈색인지 흰색인지 아리송한 머리카락 한 가닥을 보고는 한참 곁눈질해가며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 나 있는 '아리송 한' 머리카락을 골라내서 뽑았다. 뽑고 나니 흰색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 머리카락 여기저기를 헤집으며 또 있는지를 살폈지만 뒤통수를 볼 수가 없으니 눈이 아파서 그만뒀다.
2주에 한 번 정도 주말에 친정엄마를 만나곤 하는데 오늘은 외식 후 함께 우리 집에서 강아지도 보고, 손자도 보시면서 시간을 보냈다. 거실 창문을 열어두고 소파에 누웠다, 앉았다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던 중 내 뒤통수를 보면서 엄마가 "얘, 흰머리다! 이리 와 봐"라고 하시길래 얼른 머리를 들이밀었다. 안 그래도 뒤통수가 안 보여 답답하던 차에 마침 발견하셨다니.
"톡, 탁" 내 귀에는 흰머리 뽑는 소리가 그렇게 들렸다. 예전에 어른들은 흰 머리카락 하나 뽑을 때마다 10원씩 줬었다며 엄마는 내 흰머리가 또 있는지 여기저기 머리카락을 들춰보셨는데 우리 입장이 좀 바뀐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근데 이거 뽑으면 더 많이 난다던데 이렇게 뽑아도 되는 거야?
"지금은 몇 개 없잖아~. 괜찮아. 이렇게 보이는 건 뽑아도 돼."
"그렇겠지? 그럼 안쪽에도 좀 봐봐. 어쩐지 머리가 너무 가려웠어."
"흰머리 날 때 원래 두피가 엄청 가려워~"
"아... 싫다... 엄마가 흰머리 뽑은 그 자리가 엄청 가려웠던 자리였어. 난 왜 가려운지 몰랐는데 안쪽에 이렇게 몇 개씩 있는지 몰랐네.."
"괜찮아~ 아직은 그래도 이렇게 몇 개 안 되니까 뽑을 수 있잖아~ 엄마는 이제 못 뽑아. 이봐라~ 어떻게 뽑겠냐?"
엄마 머리는 이제 백발 할머니처럼 검은 머리카락보다 흰 머리카락이 더 많았다. 그런데도 나는 엄마한테 응석받이 애처럼 머리를 맡겨놓고 엄마 말에 키득거리고 말았다. 심각한 것보다 그 편이 좋기도 했으니까.
자식이 커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느라 애쓰고 힘들어하다 머리카락에 하얀 것이 하나, 둘 보이는 걸 보는 부모님의 마음은 어떨까? 문득 자식이 보는 부모님의 흰머리와 부모님이 보는 자식의 흰머리가 어떻게 보일지, 서로 어떤 마음일지 궁금해졌다.
열 살 밖에 안된 우리 아들이 나중에 커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여러 문턱을 넘어 나이 들어갈 때,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을 수 있다면 우리 아들의 흰 머리카락을 보는 내 기분은 어떨까? 어쩐지 벌써부터 코끝이 찡해진다.
엄마도 내 흰머리에 코끝이 찡했을까? 안쓰러워 보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