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에 고해성사하러 갑니다.

by 소이

거실에 있던 낡은 소파를 버리고 고민 끝에 따뜻한 느낌을 주는 패브릭 소재의 그레이 소파를 샀었다. 소파를 바꾸고 나니 신혼 때 잠시 쓰겠다고 샀던 17만 원짜리 거실장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필요해서라기 보다 혼수로 장만한 TV를 올려둬야 하니 별 고민도 없이 흔하게 깔려 있던 거실장 중에서 가장 저렴하고 색깔이 튀지 않는 것으로 골랐었다.


아이가 태어나고는 수유등도 올려두고, 시계도 올려두고, 손 닿는 거리에 있어야 하는 물건들이 거실장 위를 차지했었는데 아이가 크면서 막 쓰기 좋았던 거실장이 더 이상 막 쓸 일이 없어지자 촌스러운 디자인과 덕지덕지 붙어있는 모서리 쿠션이 거슬려 소파와 어울리는 새 거실장을 들이게 됐다.


TV는 고장 나서 진즉에 버렸고 더 이상 소파에 어울리는 가구가 거실장일 필요는 없었지만 사용하던 거실장 안에 들어있던 물건을 비우고, 옮겨도 거실 장만한 사이즈의 가구가 들어오지 않으면 수납이 힘든 상태라 결국 또 거실장을 샀다. 새로운 거실장이 오니 하얀 벽면이 휑하게 느껴졌고 부족한 2%를 식물로 채우고 싶었다.


결혼 후 아이를 출산하기까지 4,5가지 식물이 집에 있었는데 그때 키우던 식물들은 내가 아이를 낳으러 가는 당일까지 싱싱하게 크고 있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언제든 식물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난 출산 이후로는 내 아이 말고는 식물 한 종류조차 제대로 건사할 여유가 없었다. 어쩌다 화분을 하나 들이면 결국 처참하게 보내는 걸 몇 번 반복한 후로는 더 이상 식물은 보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게 됐다.


커튼을 바꾸고, 소파를 바꾸고, 거실장까지 바꾼 후로 같은 공간에 대한 지루함이 날아가는 듯했다.

"여기에 화분만 하나 두면 딱인데!"

결국 참지 못하고 올해 봄에 또 중형 사이즈, 소형 사이즈의 화분 두 개를 들이고 말았다. 한 동안은 종이에 적어가며 식물 집사를 자처했지만 점점 며칠이 지난 건지 자꾸 잊어대는 통에 아이가 물을 주기도 하고, 남편이 물을 주기도 했다. 그러다 온 가족이 잊어서 시들해지게 되면 결국 욕실에 두고 샤워기로 물을 듬뿍 줘서 심폐소생술로 살려내기도 했다.


그렇게 잘 버텼는데.

최근 두 달 동안 온 가족이 식물의 존재마저 잊어버리고 내내 바쁘게 보내다 보니 결국 끄트머리부터 갈색으로 변하던 것이 엊그제 바스락 거리는 프리저브드가 되어버린 걸 확인하고 말았다. 이제 추운 겨울이 오는데. 이렇게 화분 두 개를 보내고 나니 이전보다 더 휑한 기분이 든다.


남편은 이제 식물한테 고통 그만 주고 키우지 말라며 놀리듯 이야기하는데, 정말 그래야 하나 싶다. 그런데 이 겨울이 지나고 또다시 봄기운이 느껴질 때, 꽃집 앞을 지나가면 집에 있는 빈 화분이 생각날 것 같다. 그러면 또 꽃집 사장님께 고해성사를 하고 새 식구를 들여오게 되는 건 아닐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옳음의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