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머물다 날아가버리는 생각들,
몇 시간째 하얀 화면을 보며 글감을 떠올리다가 포기하고 점심식사를 했다. 꼭 씻을 때 강렬하게 글감이 떠오르곤 하는데 그때만큼은 머릿속이 얼마나 일목요연한지 모른다. 소위 말하는 영감이 꼭 그때 떠오르는 거다. 하지만 누군가의 조언처럼 녹음을 하거나 급히 뛰어나와서 적으려 하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곤 한다. 종이 위에 그대로 써보지 못해서 아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런 야무진 생각이 머릿속에 있긴 한 거다.
우리 아파트 옆 공터에 어느 날부터 시작된 공사로 소음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는데, 창문을 닫으면 크게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라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문을 열면 우습게 볼 수준의 소음이 아니다. 이름 모를 기계가 몇 종류는 돌아가는 것 같고, 쉴 새 없이 자재 나르는 소리가 울린다. 고층 아파트를 짓고 있어서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면 별 생각이 없다가도 약간 짜증스러워진다. 일목요연한 내 글이 머릿속에서 날아가버린 것에는 소음도 한몫했을 거라는 억지스러운 생각과 함께.
그런 날은 내내 미루던 강의 녹화와 오디오북 녹음까지 갑자기 하고 싶어 진다. 오전 10시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소음이 시작되는데 녹음이나 영상 작업하기에 좋은 시간대라서 더 용심이 난다. 창문을 이중으로 닫아도 예민한 작업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어떤 날은 이만큼 좋은 핑곗거리가 없는데, 어떤 날은 이리도 용심이 난다. 사람 마음이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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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계속 썼다 지웠다 하던 글은 결국 마무리 짓지 못하고 중간 저장을 했다가 저녁을 먹고 다시 쓴다. 그 사이 소음이 멈춘 오후 5시, 주방으로 저녁 출근을 앞두고 가까스로 녹화와 업로드까지 마무리 지었다. 모처럼 뿌듯하다. 하루 종일 무언가 계속 끊임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날이 있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몸은 움직이지 않아도 생각이 쉴 새 없이 펼쳐지니 초민감자인 나로서는 가끔 내 머릿속이 부담스럽다.
그러니까 조금씩 정리해야지.
머릿속을 들여다봐야지.
"아! 여기까지 생각했었지!" 하고 기록해야지.
그래야 좀 수월하다. 몸도 마음도.
비워내고 정리하고 싶어서 그렇게 오늘은 소음을 탓하고 싶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