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적 슬램덩크가 한창 유행했었다.
나는 그당시 그 만화를 보긴 했으나 가장 좋아하는 만화는 아니었다.
그러다 최근에 슬램덩크 극장판이 개봉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송태섭이 주인공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왜 송태섭이 주인공이지?
내 머릿속 주인공은 강백호, 서태웅이었고
멋있는걸로 치면 정대만 아니었나.
흥미가 생겼다.
이노우에 작가는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지.
심야영화로 끊어서
팝콘과 제로콜라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처음에 크로키 초반의 송태섭 모습이 슬금슬금 나오더니 이내 앞으로 걸어온다.
나머지 등장인물들도 슬금슬금 생기더니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화가 시작되었다.
원작에는 송태섭의 서사가 없었다.
그런데 이 극장판에서 아주 절절한 서사가 생겨났다.
모든 재능을 타고난 유망주와 달리
송태섭은 농구를 어느정도 잘하긴 했으나
그건 일반인을 기준으로 할 때나 그런 것이었다.
키도 작고
돌파력도 좋지 못했으며
소년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이라면 갖춰야 할
빛나는 그 무언가가 전혀 없었다.
단지 그가 가진건 농구가 좋다는 마음과
지기 싫다는 승부욕 뿐이었다.
프로의 세계에서 저 두가지를 갖추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명확하고 압도적인 그 한계 속에서
그는 계속해서 공을 튀기고 농구를 해나간다.
무시당하고 외면받고 넘어지고
그래도 아무말 없이 그냥 해오던걸 할 뿐이다.
어느덧 고등학생이 된 그는
최강 산왕과의 매치에서 선수로 나가게 된다.
그 자리는 형이 그토록 가고싶었던 자리였는데
형이 아닌 그가 서있고
어찌저찌하다 북산은 산왕을 이기게 된다.
여기까지 보면 그저 진부한 이야기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노력하더니 되더라' 같은 대책없는 내용이 아니라 믿기 때문이다.
송태섭이 노력을 한만큼
동료들도 상대편 팀들도 노력을 한다.
송태섭의 가정이 갖는 비극적 서사 역시
그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그냥 그는 농구가 좋아서 계속했을 뿐이고
운이 좋게도 산왕전에서 한계를 극복하는 동료들을 우연히 만나 정말 운이 좋게도 이기게 된 것이다.
북산이 이겼어야 할 당위는 없었고
운이 개입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없다.
여기에 처음 천재들을 주인공 삼아 슬램덩크를 그려내던 이노우에 작가가 그 후 오랜 시간을 살아간 후에 겪은 삶의 진리가 담긴게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 모두 애매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어찌저찌 어느분야에서는 대충 곧잘하는데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진 못한다.
나의 재능은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다른 곳으로 갈 수 없다.
그나마 그걸 잘하고
그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저 계속 해나갈 수 밖에 없는데
천재의 존재는 항상 나를 두렵게 한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자신없이 해나가는 그 괴로움 속에서
내 주변의 우연한 도움을 받아 운좋게도 한번쯤은 승리를 맛보게 된다.
인생은 이렇듯 누구에게나 알 수 없게 흘러간다.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주인공도 조연도 없이
알 수 없이 흘러가는 것이다.
작가가 진정으로 하고싶은 말은
노력하면 됩니다.
이런 공감 안가는 말이 아닐 것이다.
그냥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가다보면
운좋게도 이길지도 모르지 않을까요?
라는 알 수 없는 인생을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난 학창시절에 검사가되어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셜록홈즈처럼 미궁속 난제를 풀어나가고 싶었다.
이 나이때쯤이면 그 상상대로 살고 있을거라 믿었다.
그러나 내 삶은 알 수 없이 흘러갔고
그럼에도 어찌저찌 여기에 도달해
어떻게든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며 살고있다.
슬램덩크를 통해 나는 다시 그 시절의 감정을 되살린다.
그때는 세상의 모든게 계획대로만 흘러간다 믿기도 했었고, 세상의 모든것이 선과악, 흑과백으로 덮여있다고 생각했으며, 나는 그 모든걸 통찰하고 승리할거라 믿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겪어온 나의 삶은
다른 진리를 말해주고 있다.
그래도 그 때의 열정이 싫지는 않다.
그 열정을 가지고 하다보면 운.좋게. 이길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고 사는게 가장 좋은 삶의 자세 아닐까.
언젠가 우연히 운좋게 다가올 승리의 그 순간을 기대하며 열정의 불씨는 계속 타오르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