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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온 동생의 전화
by
자유여행자
Jun 11. 2023
어제 친한 동생이 전화가 왔다.
나랑 군대 동기이자 같은 변호사인 친구는 복대리 재판때문에 노원에 다녀왔다고 한다.
"형 내가 노원을 걷고 있었는데,
거긴 원래 온갖 나이 사람들이 있던 곳이거든.
근데 오늘은 20초반 어린친구들이 그곳을 채우고 있더라.
그런데 나는 어느덧 이리 나이가 들어 양복입고 그곳을 걸어가는데 이질감이 들더라.
왜이리 마음이 싱숭생숭하지?"
그 말을 듣자마자 동생의 감정이 뭔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예전에 너랑 군생활 할 때 기억나?
그 때 내가 느낀 주된 감정은 괴리감이었다.
난 군대를 늦게 가서 니 나이대 친구들이랑 생활을 같이했고 복학을 해서도 마찬가지였지.
내가 가장 두려웠던게 뭔지 알아?
아무것도 얻은거 없이 나이만 얻은채 모든 것을 잃어버릴까봐.
그게 가장 두려웠어."
동생은 생각에 잠기더니 답한다.
"형은 정말 그랬겠구나."
"25살이었던 그 때의 나는 많은게 두려웠어.
지금 이렇게 젊은데 이것도 어느덧 사라지고,
건강하던 부모님도 어느덧 약해지시고,
난 이자리에 있는데 친구들은 저 멀리 가버리고,
아무것도 얻은거 없이 그냥 나이만 먹을까봐.
군대 체단실에서 운동을 하다 거울을 보며 그랬어.
나도 이곳을 지나가 다음역에, 그 다음역에 꾸준히 도달하고 싶다고"
"..."
"니가 느낀 감정을 잘 알아.
우린 나이를 먹어갈거고 젊음도 옅어지겠지.
부모님도 점점 작아지시다 우리 곁에 없게될 수도 있고,
웃음보다 무표정한 얼굴이 늘어날 수 있어.
그 때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있을까?"
"글쎄. 뭘 가질 수 있지?"
"내가 느낀건 모든걸 다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단거야.
사람은 하나를 얻으면 그 이상을 잃게 되더라.
시간이 지나면 우린 돈도 지위도 지금보단 나아질거야 높은 확률로.
어느덧 수험생때의 불안감도 사라진지 오래잖아.
그러나 우리는 젊음을 언젠가 잃게될거야.
"난 그게 너무 두려워 형"
"나도 그래.
우리 친구들도 그럴거고
우리 부모님도 그러셨어.
그냥 어쩔 수 없어서 받아들일 뿐일거야
살면서 느낀건, 삶이란 성취해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잃어가는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라는거야.
우리는 모든걸 얻을 수는 없어"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이가 들어도 그걸 피하려고 집착하여 억지로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어려보이려 하는 것은 추하다 생각해.
너만 나이들어가는게 아니고
나도 있고 우리 주변 모두가 그래.
위안이 되지 않아? 너 혼자 겪는 상실이 아냐.
우리는 우리의 어리고 젊은 모습을 서로 기억하고 있잖아. 난 20초반의 너를, 넌 20중반의 나를 기억하고 있지. 그리고 30초까지 우리는 시간을 같이 보내고 있어.
이렇게 서로의 모든 시간대를 기억해주면서 함께 보내면 충분히 행복하지 않을까"
"그렇네. 관계라는 것이 주는 행복이 크니까"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던 동생과 나는
어느덧 근 10년의 시간을 같이 보내고 있다.
어린 의경이었던 그 시절의 시간은
어느덧 까마득히 저 아래 박혀있고
우리는 계속해서 어디로 나아가는건지.
내가 느낀 상실감, 괴리감을
이 친구도 느끼고 있었나보다.
하긴 우리 뿐일까.
모든 사람들이 다 그 감정을 알
겠
지.
이대로 시간이 흘러버리고 젊음이 사라질것 같은 그 두려움
을
.
여전히 두렵지만 그 과정 하나하나도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나이들의 주름들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 주름이 지기 전 얼굴을 기억해줄 사람들이 분명 있지 않은가.
그 사람들이 있는 한
나는 어렸던 그 시절로 언제든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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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하나의 영화 또는 그림작품과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제 삶에서도 의미있는 가치를 찾아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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