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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가 된 동생을 만났다.

by 자유여행자

같이 운동을 하던 동생이 있었다.

학교근처 헬스장에서 이 친구가 보조를 해달라고 해서 해줬는데, 그 이후로 마주치면 인사라도 하게 되었고, 그러다 같이 운동을 하게 되고, 운동이 끝난 후에는 밥도 먹고 술도 먹고 하다 친해지게 되었다.




슬슬 내가 졸업학기를 맞아 바빠질 무렵 이 동생은 특전사 부사관으로 군대에 들어갔다.


그 악명 높다던 18주 지옥훈련을 끝내고 자대 배치를 받고 어리버리 하던 신임 하사를 거쳐 슬금슬금 년차가 쌓여가고 있었다.




전문대학원에 입학한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연락을 못하다가 최근에 그나마 숨통이 트이게 되어 동생을 만나서 밥을 먹게 되었다.


그놈은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새까매진 얼굴로 재잘재잘 떠들어댄다.


18주 훈련 때 짜증나게 하던 조교 이야기부터 자대배치 선임들이랑 축구하는 얘기, 외박나가서 돈 아끼려고 찜질방 찾다가 새벽까지 광주 거리를 헤맨 얘기라든지, 곧 큰 훈련에 들어가게 되는데 걱정된다는 얘기 등을 쉴 틈 없이 쏟아냈다.



그러다 우연찮게 외박 나와서 돈을 많이 쓰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며 시무룩해지길래 얼마 받냐고 물어보니 생각대로 참 월급이 적었다.



그래서 내가 그냥 화가 나서 이 나라는 왜그리 군인들 대우가 별로인거냐고


특전사면 군인들 중에서도 힘든 훈련하는 애들인데 보상이 이래서 쓰겠냐고 열불을 토해냈는데, 오히려 이 동생은 잠잠하길래, 너는 화도 안나고 아무생각도 없냐고 핀잔을 줬다.




그랬더니 그냥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자기들이 힘든일 하는거 알아주지 않아도 뭐 별수 있냐고, 묵묵히 하던일 해야하지 않겠냐고 씩 웃어버린다. 이놈은 속도 없나 싶어서 쳐다보는데 얘가 한마디 더 내뱉는다.



'형이 예전이 우리 같은 군인, 경찰, 소방관들 대우받는 세상 만들어 준다고 했잖아. 형이 알아서 잘해주겠지'




갑자기 망치로 머리를 내려맞은 기분이 들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한창 이친구랑 운동을 할 무렵, 나는 미래에 내가 하고싶은 일에 대한 신념이 가득차 있었다.


사람들을 도와주는 군인, 경찰, 소방관들에 대해서 국민들은 정작 별 생각도 없고, 늘 희생 당하는 군인들 뉴스가 끊이질 않지만 잠시 추모 댓글만을 달 뿐 실질적으로 그들의 처우개선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뉴스에서 남편을 잃고 하염 없이 눈물을 흘리는 군인 유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저런 사람들의 가족들을 지키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한 적절한 대우가 있어야 저런 일을 사명감을 가지고 하려는 사람들의 숫자가 유지될 것이고, 그 결과 국민들은 더욱 안전하게 보호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 공부를 열심히 해서 힘을 가진 다음에, 그들을 위한 일들을 차근차근 해나가자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입학 후에 차츰 나는 언제 그런 사명감을 지녔는지조차 희미해질 정도로 생기를 잃어가기만 하였고, 늘 같은 일상속에서 기계와도 같은 내 인생을 저주할 뿐이었다.


더이상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회색빛 바닥만이 익숙한 풍경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 동생은 아직 내가 지나가며 내뱉은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정작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 이 친구는 군대에서 훌륭히 복무하며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고,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다.




부끄러웠다.



생각을 잃고 지내게 된 것도 그렇고, 늘 불만을 가지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 비해 묵묵히 할일을 하며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이 동생이 멋있었으니까.




터미널로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는데 기분이 상쾌했다.


거기서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은 새로운 계절의 향기를 담고 있었다.



나도 머지 않아 너처럼 나의 역할을 다하는 시간을 맞이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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