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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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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여행자
Jul 5. 2024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것을 보니 슬슬 장마가 시작되나 보다.
후덥지근한 더위를 식혀줄 비가 될지, 아니면 더운데 습기까지 가득차서 몸을 무겁게 하는 비가 될지 모르겠다.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바빠서라는 이유가 가장 그럴듯 하면서도 어느정도는 맞는 말이겠지만,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내 삶이 지쳐서이기도 하고, 무언가 감정의 변화가 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늘 그저 그런 감정의 나날들만 지속되다 보니 이를 글로 남겨야 할 의미가 있나 싶었기 때문이다.
올해 나는 중요하게 준비하던 두 가지에서 실패를 맛보았다.
그 두 가지는 내가 오랫동안 바라왔던 일이었기에 내 신념을 대표하기도 했다.
가치관과 신념의 실현을 삶의 제1목표로 삼았었기에 나는 풀이 죽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처지는 감정을 외면하기 위해 흘러가듯이 평일에는 일에만, 주말에는 놀이에만 집중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원래는 준비하던 저 두 가지중 하나를 쟁취하면 그 때를 기록하는 글을 쓰려 하였는데 인생은 늘 그러하듯 올해도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일이 내 생각대로 되지 않자 과연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지 답답한 마음의 새싹이 돋는다.
그 답답함의 싹은 점점 자라 외면할 수 없을만큼 키가 커버렸고, 나는 이제 진지하게 그 잎파리를 바라보아야 한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항상 하는 말이지만
나는 그닥 정의롭지 않다.
게으르고 나태한데도 스스로를 과신한다.
지금 내가 하는 일에서도 온전히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도 못하는 내가 과연 정의와 자유를 나의 제1 목표로 삼아도 되는 것일까.
내 계획대로 되었다면 내 신념은 지켜졌을까.
아니다.
사실 지금 내가 하는 일에서도 중요한 정의를 지킬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과연 그 정의를 제대로 지키기 위한 노력을 다하였는가.
그렇지 않다.
사건을 좀 더 들여다보기보다 나의 휴식을 택하였고, 나의 여가와 몸의 평화를 위하여 꼼꼼함을 어느젓도 포기했다.
이런 내가 목표했던 껍질 두 가지를 쟁취했다 하더라도 과연 정의를 지키는 삶을 살 수 있게되는 걸까.
당연히 아니겠지.
감사하게도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의뢰인들이 있고, 나를 불신하는 의뢰인도 있다.
나는 전자가 많고 후자가 소수임을 이유로 잘못된 것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라 믿고, 그들이 나의 진가를 몰라준다 생각하기도 했다.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저들 하나하나는 인생을 걸고 찾아왔을텐데
단순히 수많은 일중 하나로 접근하는 내 마음이 그들보다 무거웠을리 없다.
나는 저들을 평가하고 나를 지킬 자격이 없다.
오늘같은 날에는 쏟아지는 비를 보면서 무겁게 늘어져 질척이는 내 마음을 돌아보기 좋은 날이다.
더위를 식혀주고 시원함을 가져다주는 소나기인줄 알았는데 나는 이 사회의 찝찝한 습도만 높여주는 장
맛
비가 아니었나.
중요한 것은 내 껍질이 아니라 내가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달려있다.
내가 신념을 지키려면 어딘가로 가서 무언가를 뒤집어쓰고 시작하려 할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지킬 수 있는 것부터 해야하니까.
이제 갓 장마가 시작되었다.
장마에서 출발한 비가 마지막에는 이 더위를 식혀주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여름을 가져다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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