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과 균형 사이
사장님이 간담회에서 발표한 자료가 큰 호응을 얻고 여러 언론사에서 기사로 다루면서 반응이 좋았다는 소식이 사무실에 퍼지자, 문성태 팀장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습관적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말을 꺼냈다.
“다들 고생 많았어요. 특히 윤 과장, 김 대리. 이번 기사는 정말 잘 나왔어요. 덕분에 사장님도 굉장히 만족하셨고, 직접 나한테 칭찬하셨다니까요. 하하하.” 문성태는 한껏 들떠 있었다.
윤태경과 김주연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팀장의 말에 어딘지 모를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김주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결국 고생은 우리가 했는데, 팀장님만 좋은 얘기 듣는 거 아닌가…’ 그녀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이를 아는지 문성태는 말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실장님께는 두 분이 이번 기사 준비에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제가 직접 말씀드렸어요. 다들 알아주시더라고요.”
그 말을 들은 김주연은 순간 놀랐다. ‘실장님께 말씀하셨다고? 진짜일까?’ 그녀는 속으로 의심했지만, 문성태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조금은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래도 수고했다는 말을 들으니까 나쁘지는 않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다독였다.
그때 윤태경 책상 위의 전화가 울렸다. 그는 수화기를 들고 익숙한 목소리를 확인한 뒤,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아, 이 기자님.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세요?”
전화기 너머에서 기자의 살짝 비아냥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 과장님, 이번에 제가 쓴 기사 봤죠? 보내주신 원고도 아주 잘~ 참고했어요.” 기자의 말투를 듣고 있자니 윤태경의 얼굴은 더 찌푸려졌다.
그러나 기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말이에요, 너무 생색내시는 거 아닌가요? 사장님만 강조하고, 정작 우리가 궁금해할 만한 숫자나 디테일은 별로 없던데요?”
윤태경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능청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에이, 기자님. 다 아시면서 그러시네. 숫자는 간단명료하게, 메시지는 강하게. 그래야 전달력이 있지 않겠습니까?”
기자는 코웃음을 치며 바로 받아쳤다. “너무 단순한 거 아니에요? 요즘 독자들 수준이 어떤데. 좀 더 정교하게 썼으면 좋았을 텐데요. 사장님 홍보야 잘 됐지만, 기사로는 약하단 얘기도 있던데.”
윤태경은 한쪽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차분히 대답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다음번엔 더 신경 써서 준비하겠습니다. 기자님의 고견에 항상 귀를 열고 있겠습니다.”
기자는 놓치지 않고 다시 물고 늘어졌다. “참, 그럼 다음 기사도 이렇게 가볍게 준비하실 건가요? 아니면 이번에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으로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래야 나도 독자가 원하는 기사를 쓰죠.”
윤태경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면서도 입가에는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더 정교하게 준비해야죠. 다음번에는 기자님께서 만족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밥 한 번 같이 하시죠. 좀 더 자세히 의견을 듣고 싶네요.”
기자는 그제야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요. 다음번엔 진지하게 얘기해 봅시다. 윤 과장님, 파이팅 하시고요. 고생하시는 거 저도 잘 알죠. 하하”
“감사합니다. 제가 곧 전화드릴게요.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은 뒤, 윤태경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장님 눈치 보랴, 기자들 비위 맞추랴, 진짜 쉬운 일이 아니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잔뜩 긴 하늘 아래 흐릿하게 비추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그의 복잡한 심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김주연이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건넸다. “윤 과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기자님이 뭐라고 하셨나요?”
윤태경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 그냥… 기사 원고 관련해서 농담 좀 하셨어요. 늘 하는 얘기죠, 뭐.”
김주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과장님 덕분에 이번에 좋은 평가를 받았잖아요. 고생하셨으니까 저녁이라도 맛있는 거 드세요.”
윤태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웃었다. “그래야겠네요. 고맙습니다, 김 대리.”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무거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홍보팀에서 근무한 지 어느덧 5년. 윤태경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상대해야 한다는 게 여간 힘에 부치는 게 아니었다.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이 힘들다는 얘기가 오늘따라 윤태경의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부서를 옮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다른 사람들은 보직 순환도 잘 되던데 나도 좀 더 강하게 어필해 볼까?’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그는 이내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아니야, 여기서도 못 버티면 어디서든 버틸 수 있을까’
사무실은 다시 분주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윤태경의 마음에는 여전히 이번 일이 남긴 여운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다독이며 다음 업무를 준비하기 위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결국 이런 게 홍보팀의 숙명이겠지.’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모니터를 힘없이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