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과 균형 사이
점심시간 이후의 지역개발사업팀 사무실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육아휴직 후 복직한 이준혁 과장을 맞이해 근처 맛집을 탐방하고 돌아온 직원들 간에는 처음의 어색함이 거의 사라진 것 같았다. 직원들이 하나둘씩 사무실로 들어섰고, 박민수는 소등했던 사무실을 환하게 밝혔다.
“여러분, 잠깐 티 타임 가지실래요? 제가 커피 좀 내릴게요.” 이준혁은 재빠르게 사무실 구석의 커피 머신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조민서 대리가 웃으며 말했다. “과장님, 첫날부터 너무 친절하신 거 아니에요? 저희 이렇게 길들여지면 곤란한데요.”
“좋은 분위기에서 일하는 게 최고 아닙니까? 제가 드립커피 내릴 테니, 다들 잠시 모여서 이야기 나누세요.” 이준혁은 금세 커피를 내리고 사무실 중앙의 원형 테이블로 향했다. 팀원들도 테이블 주위로 자리를 잡았다.
“복직 첫날인데 어때요, 과장님? 적응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세요?” 나정원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준혁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솔직히 조금 긴장했지만, 다들 잘 챙겨 주셔서 괜찮아요... 일이야 뭐 금방 적응하겠죠.” 이준혁의 말투에는 은근히 자신감이 묻어 나왔다.
“그런데 아쉽지 않아요? 이제 휴직도 끝나고, 좋은 시절 다 갔죠?” 강도윤의 급작스런 질문에 이준혁이 잠시 머뭇거리자 강도윤은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과장님, 복직 전에 뭐 하셨어요? 휴직하는 동안 애 보느라고 바빴을 것 같은데.”
그러자 이준혁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사실 이 얘기가 나올 줄 알았어요. 휴직 중에 개인 공부도 하고, 주식 투자도 조금 했습니다. 덕분에 꽤 재미를 봤죠.”
조민서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주식이요? 어떤 종목 하셨어요?”
“주로 AI와 빅데이터 관련 주식이었어요. AI제너레이션을 좀 사뒀는데, 수익률이 80% 정도 나왔습니다. 운이 좋았죠. 하하” 이준혁은 어깨에 살짝 힘이 들어가며 환하게 웃었다.
이야기는 점점 주식과 경제 전망으로 옮겨갔다. “요즘 AI 이야기가 많이 나오던데, 정말 가능성이 큰가 보네요. 이제 투자 리스크는 없어요? 과장님은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셨어요?” 이하준은 궁금한 게 많았는지 연거푸 질문을 쏟아냈다.
“일단 자료 많이 찾아보고 공부했죠. 증권사 리포트도 읽고, 기업 재무제표도 보면서 회사가 비전이 있는지 살폈습니다. 그러면서 역시 미래는 AI가 대세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이준혁의 말투에는 자신감이 배어 나왔다.
나정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갑자기 저도 주식 투자하고 싶어 지네요. 그런데 요즘 회사 일 때문에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아요.”
“그게 참 어렵죠. 저도 휴직 중이라 가능했던 일입니다. 회사 생활하면서는 신경 쓸 게 많으니까요. 하지만 투자란 게 결국 긴 안목을 가지는 게 중요하니까, 평소에 관심을 갖고 뉴스라도 꾸준히 살펴보세요. 정보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니까요.” 이준혁이 진지하게 조언했다.
이야기가 점점 깊어질 무렵, 나정원이 눈길을 돌리며 물었다. “근데, 과장님은 담배 안 피우시죠?”
이준혁이 잠시 멈칫하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아… 글쎄요, 뭐랄까. 가끔 스트레스받으면 한 대씩 피우는 정도랄까요.”
그때 강도윤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가끔이 아닌 것 같은데요. 예전에 흡연실에서 과장님을 자주 봤다는 얘기가 들리던데요.”
그러자 옆에 있던 이하준이 웃으며 반갑게 말했다. “어? 그럼 과장님이랑 제가 담배 동지네요. 저는 그동안 눈치 보며 담배 피웠거든요.”
순간 분위기가 웃음으로 물들었고, 나정원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벌써 두 분이 뭔가 친해지신 것 같네요. 흡연이 이렇게 무섭다니까요.”
그렇게 소소한 대화로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이준혁과 이하준은 자연스럽게 흡연장으로 향했다. 사무실 밖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따스한 햇살 아래 볼을 가볍게 스치는 바람이 기분 좋았다. 흡연장에 도착한 두 사람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과장님, 전자담배 안 피우세요?” 이하준이 물었다.
“전자담배는 맛이 없어요. 피우는 맛이. 역시 이게 최고죠.” 이준혁이 가볍게 웃으며 담배 연기를 한 모금 깊이 들이마셨다. “이렇게 느긋하게 피우다 보면 마음도 가라앉고 편안해져요. 대화도 잘 되고.” 이준혁은 이하준을 살펴보더니 은근슬쩍 말을 건넨다. “왠지 모르게 담배를 피우다 보면 감정에 솔직해지더라고요. 대리님도 힘든 일 많으실 것 같은데요.”
이하준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준혁을 보며 이내 입을 열었다. “뭐, 솔직히 말하면… 팀 분위기가 좋긴 한데, 좀 복잡한 부분도 있어요.”
이준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 연기를 뿜었다. “음, 복잡하다는 건 어떤 의미죠?”
“조 대리님이랑 강 과장님이 가끔 업무 방향성 때문에 부딪히는 일이 있거든요. 강 과장님은 워낙 논리적이고 결과 중심적인데, 조 대리님도 깐깐한 면이 있거든요. 두 분 다 물러서지 않을 때가 있죠. 그런데 한편으로 조 대리님은 현장과 소통하려는 노력도 하세요. 지금 민원 업무도 맡고 있잖아요. 그게 조 대리님한테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원칙대로 처리하려다가 민원인들에게 비난을 듣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하준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팀장님도 그런 사정을 모르시진 않겠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민원을 들어줄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조 대리님한테 많이 맡기시는 것 같아요. 조 대리님 입장에선 억울할 때도 있을 겁니다.”
이준혁은 담배를 들고 있던 손을 내려놓으며 살짝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요. 갈등도 갈등이지만, 팀원들 사이에 이런 문제가 쌓이면 결국 더 큰 문제가 되겠네요. 복직 첫날이라 분위기가 좋아 보였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드네요.”
이하준이 약간 머쓱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과장님,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어디 팀이든 갈등은 있잖아요.”
이준혁은 연이어 담배 두 가피를 모두 피우고는 불을 끄려고 톡톡 손을 튕겼다. “그렇죠. 일단은 지켜보면서 방법을 찾아봐야겠네요.”
흡연장에서 돌아온 두 사람을 보며 나정원이 웃으며 말했다. “잘 쉬셨나요? 이제 진짜로 팀원들끼리 흡연 동지 모임이라도 만드셔야겠어요.”
이준혁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럴까요? 다음번엔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티 타임 주제를 준비하겠습니다.”
사무실 안은 다시 업무로 바빠졌지만, 이준혁의 머릿속은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들로 가득했다. 그는 복직 첫날의 기대와 함께,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