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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야 Aug 06. 2024

극한직업 1학년 교사

EBS 극한직업이라는 TV프로그램에 초등학교 1학년 교사가 나온 적이 있다. 입학식에서부터 급식 시간, 하교 시간까지 쉴 틈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3년 차 선생님을 보며 1학년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에게 1학년은 몹시도 부담스럽고 두려운 미지의 세계였다.


그 프로그램을 본 뒤 정확히 1년 뒤 새로운 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으레 그러하듯 새로운 학교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학년과 업무는 거의 없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존 선생님들 배려하기도 바쁜 현장에 전입 교사의 희망서는 말 그대로 희망일 뿐이고 남는 학년과 업무를 가져간다고 보면 된다. 학년과 업무를 발표하던 2월의 어느 날, 나는 그만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순간 학교를 다녀야 하나 휴직을 해야 하나 고민에 빠진 것도 사실이다. 발표 종이에는 내 이름 옆에 1학년과 돌봄 업무가 나란히 적혀있었다. 나는 거의 15년 만에 처음으로 1학년을 하게 된 것이다.


3월 첫날 1학년 친구들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날로 1학년 지도 방법에 대한 책과 정보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3월 첫날 보게 될 아이들을 한참 후에나 보게 되었는데 잠시면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로 학교는 처음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게 된 것이다. 학년이 끝날 때까지 매일 만나지는 못해서 생활지도도 미진하기는 했지만 기억 속의 1학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뭐랄까? 다음 문장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장학 수업으로 교감선생님의 방문이 있던 국어 시간.
50쪽을 피라는 나의 말에 갑자기 하준이가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서 두 팔을 자동차의 와이퍼처럼 흔들고 두 발을 동동 구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50페이지가 사라졌어요!”
“사.. 사라져?”
교과서의 50쪽이 어디로 사라졌을까 생각하며 얼른 옆으로 가서
“짠! 여깄지! ”하고 펴주었다. 49쪽과 52쪽을 한꺼번에 넘기며 50쪽을 찾지 못한 하준이는 새로운 보물을 발견한 듯이 손뼉을 여러 번 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당황하지 않은 척 미소를 보내며 수업을 진행하려는데 갑자기 다은이가 저 멀리서 달려왔다.
‘어..어...그냥 앉아서 말해도 되는데...’라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대뜸 머리와 머리핀을 내밀고 “선생님. 머리핀이 빠졌어요.” 한다. 머리핀을 해주며 역시 당황하지 않은 척 웃음을 잃지 않고 “그래. 다 됐어. 들어가서 앉자.”라고 말을 한 뒤 진짜 수업을 시작했다.
종이접기를 하였는데 그날따라 종이 접기가 조금 어려웠는지 이곳저곳에서 나를 부르는 통에 혼이 다 나가버렸다. 내 작품 만든다 생각하고 아이들의 25개의 작품을 즐거운 마음으로 만져주었다. 아이들은 마치 본인이 다 만든 것인 양 뿌듯한 표정을 지어댔다.
‘가까이 선생님이 만든 걸 보는 것도 공부지 맞지’
아이들의 자신감 상승에 일조했다는 교육적인 안도감을 느끼고 무사히 수업을 마쳤다. 교감선생님의 얼굴을 보니 ‘애쓰고 계시는군요’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1학년과 고학년 지도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 이를테면 고학년은 친구들 사이 따돌림이나 서열 문제 등으로 인한 상담이 많고 조율이 어려운 반면 1학년 친구들은 아무리 이르기 바빠도 ‘그렇게 하면 안 돼요. ’ 혹은 ‘사과해야지’하면 곧잘 사과도 하고 금세 다시 사이좋게 잘 지낸다. 대신 정말 생각지 못한 이벤트가 발생한다. 한 번은 공부 시간에 화장실을 다녀오고 싶다는 아이가 있어 다녀오라고 했더니 “화장실에 다녀오세요”라는 말만 들은 남자친구 아이들 절반이 갑자기 일어나 떼로 나가는 것이었다.
“얘들아. 너희 어디 가니?”
“화장실 다녀오라면서요.”
“아니~ 이 친구만. 다른 친구들은 아까 다녀왔잖아.”
하니 그제서야 다시 자리에 돌아가 앉는다. 이처럼 엉뚱한 친구들이 바로 1학년이다.

지은이는 수학 시간 누구보다도 빨리 문제를 풀었다.
“벌써 다 풀었어?”
“네. 선생님. 너무 쉬워요. 전 벌써 4학년 수학을 하고 있거든요.”
수학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지만 반면 어떤 주제를 주고 그림을 그리거나 쓰라고 하면 한 줄도 그리거나 쓰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고구마구마>라는 책에는 ‘불타는구마’처럼 다양한 구마가 나오는데 이 책을 읽어주고 친구의 특징에 어울리는 구마를 만들어보는 수업을 하는 중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들 그림책에 푹 빠져 저마다 친구의 특성에 어울리는 고구마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는데 지은이는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고
“전 하나도 못하겠어요.”
라는 말만 했다. 평소 지은이는 수학을 빼고는 자신 없어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밖에서 선생님을 부르는 큰 소리가 들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울부짖는 소리였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거대한 울음소리를 따라 달려가 보니 그곳에는 지은이가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안에서 울고 있었다.
“지은아. 무슨 일이야? 문 좀 열어봐.”
다급하게 물었다.
“서..선..생..님..엉엉.. 화장지가 없..어..서..밖에 나갈..수가 없어요.. 엉엉”
“아. 큰일 봤구나. 그래서 놀랬구나.”
“아니요. 오줌.. 쌌는데 화장지가 없어요......”
큰일이 아닌 작은 일에 화장지가 없다고 학교가 떠나갈 정도로 울면서 선생님을 찾았다는 사실이 솔직히 당황스럽기는 하였으나 1학년이기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있고 난 뒤에 전보다 지은이가 정해진 주제로 그림과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지은이는 뭐든지 완벽해야만 마음이 놓이는 아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지은이가 마음 편하게 모든 활동을 즐겁게 참여할 수 있도록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자주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수학처럼 정확한 답은 없지만 네가 하는 모든 그림과 글을 다 정답이라고 말해주었다. 아마 지은이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좀 더 무던해질 것이라 믿는다.

1학년이라고 어리게만 보았는데 아이들이 보여준 책임감과 능력에 놀랄 때도 많았다. 숙제는 숙제함에 넣으라고 했더니 아침에 오자마자 모두 숙제함에 넣어놓아 나를 깜짝 놀라게 하곤 하였다. 그리고 노래는 또 어찌나 한 명도 빠짐없이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지 6학년 형 누나 언니 오빠보다 낫다고 최고라고 연신 칭찬했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로 많은 추억을 쌓지 못해 특별히 생각나는 1학년의 추억은 이 정도뿐이지만 생각보다 1학년은, 독특하고, 무엇보다 귀엽고, 신기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짜릿함을 선물해 주었다. 허나 이 경험은 딱 1번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타 학년을 맡을 때 줄곧 1학년을 맡아주신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동안 잘 가르쳐 올려 보낸 1학년 선생님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좌충우돌 한 해를 보낸 나의 1학년 아이들에게도 말한다.
“아이들아, 너희들도 크느라 참 많이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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