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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야 Aug 13. 2024

선생님은 신경끄세요!

 초등학교 수업은 담임 수업과 전담 수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담임 수업은 담임교사가 전담 수업은 전담교사가 하는데 대게 전담 수업은 체육이나 과학, 영어, 음악을 주로 맡는다. 전담 교사라고 담임 교사와 다른 루트로 된 교사는 아니고 다 같이 교대를 졸업한 선생님이다.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 담임교사를 할 지 전담교사를 할 지 지망하는데 나는 생활지도의 어려움으로 담임이 지칠 무렵에는 전담을 희망하였다. 물론 희망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선생님들과 치열한 싸움(?)이 있다. 전담은 담임처럼 한 반을 지도하지 않고 여러반을 들어가 한두 과목을 가르친다. 가르칠 과목을 좀 더 여유롭게 그래서 열심히 준비를 할 수 밖에 없기에 수업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고 그 과목에 대해 많은 배움을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하지만!

아이들도 전담 선생님은 담임 선생님이 아니기 때문에 수업 태도가 약간 흐트러지는 경향이 있다. 나는 18년 중에서 6~7번정도 전담을 해보았고 개인적인 경험 한정으로 그렇게 느낀다. 학생들이 나를 담임으로 만났을 때 보다 담으로 만났을 때 나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더 많았다. 그리고 아이들과 포 형성이 담임교사처럼 잘 되지 않고, 또 그럴만한 시간도 없기에 아이들을 대하기가 조금 더 조심스럽기도 하다. 수업시간에 수업을 방해하거나 아이의 문제 행동이 드러날 경우 조정할 시간도 딱히 내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주의를 주었지만 계속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경우라도 크게 혼을 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선생님들 사이에서 FM이라고 불리우던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민재. 민재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욕을 아주 거침없이 했다. 선생님이 보든 말든 상관없이 말이다. 수업시간에는 언제나 ‘하기 싫어요. 왜 해요.’를 입에 달고 살았고 덕분에 늘상 수업 분위기는 나의 내려가는 입꼬리만큼 가라앉았다. 자신이 해야할 일들에 대해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늘상 화를 내고 짜증을 냈으며, 의자에는 눕듯이 앉아 있어 바르게 앉으라고 계속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게 만들었다. 물론 풀어야 할 학습지는 절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담임선생님께 전해듣기로는 민재의 엄마는 우리 아이는 FM이라며 집에서는 자기 양말까지 빨아 입는 착한 아들이라며 학교에서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학부모님과 함께 아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에 민재의 태도는 더욱더 심해지고 있었다. 어느 날, 음악 수업 시간. 더욱 심해지는 수업 방해에 더는 견디지 못하고 엄격한 표정으로

“민재야. 이제 그만 장난치자. 집중하자.”

라고 했더니 나에게 신발 비슷한 욕을 중얼거리듯 했다. 그리고 그 욕을 책상 위에다도 썼다. 굳이 안듣고 안보고 싶었는데 이걸 또 나에게 일러바치는 옆 짝꿍.

수업을 멈추고 더 화를 낼까 고민을 하다 다른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자극을 줘봤자 전혀 개선효과가 없다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었고, 다른 친구들의 학습권도 존중해줘야 했기에 일단 민재에게 수업 후 남으라고만 말하고 수업을 지속했다. 수업이 끝난 후 다른 아이들은 모두 교실로 돌아가고 민재와 나는 둘만 음악실에 남았다.

“민재야. 왜 남아 있는지 알아? ”

“.......네. 욕을 해서요.”

“선생님은 네가 욕을 하고, 또 그걸 책상에 써서 너무 속상했어. 그거 지워줄 수 있니?”

민재는 뜻밖에도 수업에서처럼 거친 모습이 사그라진 듯 했다. 아마 더 크게 혼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이 실성한 사람 마냥 미소를 지으며 욕을 지워주길 부탁해서 놀란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민재는 엄청나게 바른 모습으로 수업을 임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눈치를 살피며 조금은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내가 성인군자도 아니고 나보다 한참 어린 학생에게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욕을 들으면 그 순간 화가 나는 건 당연하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도 똑같이 냅다 욕을 할 수는 없다. 화를 더 심하게 낸 들 충분한 라포가 형성되지 않은 관계에서는 더 큰 반항심만 불러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럴 땐 그저 묵묵히 참고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야한다. 이 사건이 있은 후 7년 후 나는 또 다른 강적을 만났다.      

학습지 풀이 시간. 주형이는 뒤를 돌아 친구가 학습지를 풀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러지 말고 앞을 보고 너의 학습지에 집중하자.”

라고 말했지만 주형이는 나에게 약올리는 듯한 말투로 이렇게 말한다.

"싫어요. 방해하는 것 아닌데요.“

갑자기 날아온 막말 펀치에 슬슬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당황하지 말자.’를 되내이며 다시 부드럽게 말한다.

"아니야. 방해하는 게 맞아. 앞보고 학습지 하자.“

하지만 또 다시 그 아이는 말한다.

"싫어요. 방해하는 것 아니라니까요. "

뒤 친구에게 방해되는게 맞냐고 물어본다. 뒤 친구는 방해하는 것 맞다고 말한다.

"거봐. 방해하는 것 맞잖아. 앞에 보자. 그리고 예의있게 말해야 해“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할 말만 깔끔하게 마치고 다시 내 자리로 가는데 그 사이 주형이의 짝꿍이 주형이에게 집중하라고 말하자 욕을 했나 보다.

”선생님. 주형이가 욕했어요.“

주형이의 짝꿍은 속상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한다. 나는 주형이에게 다시 가서 욕한 것이 맞는지 물어보고, 욕을 했다면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형이의 대답은

"선생님은 신경끄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주형이는 아까 ‘싫어요’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강렬한 말투와 세기로 나에게 마지막 펀치를 날렸다.

'아. 협압아! 나도 신경끄고 싶다. 하지만 피해를 보는 친구가 있으니 그럴 수가 없잖아....?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주형이를 따로 불러내어 이야기를 했다. 예의바르게 행동하지 않는 부분과 수업시간 친구에게 피해를 준 부분에 대해 반성의 기회를 주고 대화를 시도해보지만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 정말 강적이다. 사실 그동안 그 아이의 문제 행동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었고, 언제나 말꼬리를 잡고 예의없이 굴기 일쑤였다. 이를 다 적어두었던 나는 수업을 계속 이어나가지 못하겠다는 위기감을 강하게 느꼈다. 그동안 달래도 보고 단호하게 말도 해보았지만 모든 것들이 다 소용이 없었다. 결국 담임선생님과 그리고 교감선생님과 논의를 하였고 교감선생님을 모시고 주형이와 함께 상담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의 일을 조목조목 설명하며 어떤 부분이 주형이가 고쳐야 할지 말하였다.

”근데 선생님은 제가 한 행동들 다 적어놔요?“ 라고 묻는다. 뭔가 분위기가 다름을 직감하는 것 같았다. 본인이 한 행동을 정작 본인은 잊어버리는 모양이다.

      

다음 날 또 그 반의 수업이다.

내가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하나 사실 엄청 고민이 되었다. 주형이에게 해야할 말들을 미리 생각해두고 약간의 긴장감을 갖고 수업에 들어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트레스를 안고......     

갑자기 주형이가 수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습지도 풀려고 한다.

‘그 동안 나에게 했던 건 무엇이지?’

아마 주형이는 내가 전담선생님이기에 자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했나보다. 하지만 내가 적은 수업 일지에서 내가 본인에게 많은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안 주형이는 정말 180도 다른 모습으로 수업에 임했다. 자신이 한 잘못된 행동을 부모님이 보시면 큰일 나겠다 싶었는지 겁을 먹어 정신을 차린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너 역시 관심이 필요했구나.’ 내 마음대로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이전의 일은 다 잊기로 했다. 나에게 예의없이 굴고 상처를 주었지만 나도 똑같이 굴 수 없다. 주형이의 선생님이기에 수업에 참여하려는 마음을 칭찬해주고 열심히 하고자 한다면 난 언제든 도와줄거라고 말해주었다. 물론 ‘내가 마동석이었으면 네가 그랬겠니’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교사는......어른들은 힘들다. 똑같이 굴면 안되서 힘들다. 마음은 상처받고 아픈데 티를 낼 수 없고 평정심을 찾고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 예의없이 굴 때도 소리라도 막 지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힘들다. 몸에 사리가 나올 것 같아도 당장의 내 기분보다 내가 하는 행동과 말이 아이의 교육적 지도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인지를 생각해야 하기에 힘들다. 그 아이가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교육을 시켜야 하기에 그 교육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주형이나 민재나 굳이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적대감이라기 보다는 선생님, 어른, 공부, 부족한 관심과 사랑에 대한 거부감임을 알기에 이해하려고 애를 쓴다.

이렇게 상처 받는 내 영혼도 달래고 싶은데......가르치는 것은 그리고 전담은 그래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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