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 뜻이 맞는 동학년 선생님들을 만나면 재미있는 학년 운영을 경험해볼 수 있다. 함께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내면서 든든한 동료애를 느끼고, 보람도 크며 여러 선생님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훨씬 더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이 기획되기도 한다. 2019년에도 그런 한해였다.
‘어떻게 하면 우리 4학년 아이들을 재미나게 해줄까?’
‘어떤 행복한 이벤트로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어줄까?’
아이들과의 활동을 고민하는 선생님들을 만나면, 괜한 일 벌이지 말자는 마음은 자연스레 사라지고 나도 역시 아이들의 추억 쌓기에 동참하게 된다. 누구보다 열심히 하게 되지만,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수업활동에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할때는 정말 난감하다.
10월의 어느 날, 내가 속한 4학년은 진로 연계 활동으로 창업활동<어린이 CEO>를 열었다. 각 반마다 4개정도의 창업 부스를 운영하며, 1부는 직접 사장님이 되어 부스를 운영하고, 2부에서는 다른 반이 연 창업 부스를 체험하는 활동이었다.
먼저 아이들이 직접 창업 계획서를 작성한다. 아이들이 모두 이마를 맞대고 그 시절 유행하는 것들을 생각해본 뒤, 운영할 만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고른다. 각자 해야 할 역할, 필요한 재료 등도 미리 스스로 계획하고, 창업 기간 동안 도덕적인 기업 운영을 할 것을 맹세해보며 창업의 맛을 살짝 보는 경험을 쌓게 한다. 이 활동을 기획하는 것은 선생님이지만, 활동의 내용에 관한 아이디어는 오로지 아이들의 협동과정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반이 기획한 부스는 인스샵(인스는 인쇄 스티커의 줄임말로 나만의 스티커 만들기 활동을 해보는 가게), 해피 할로윈 분장(손, 볼, 이마에 분장을 해주는 가게), 한!상!넌!퀴즈(한국사, 상식, 넌센스 퀴즈 하나를 골라 퀴즈 맞추기 활동을 하면 상품을 주는 가게), 할로윈 포토샵(준비한 할로윈 복장, 가면, 모자를 착용하고 사진 찍어주는 가게)으로 구성하였다.
열심히 준비하는 아이들이 너무 기특하여 동학년 선생님들이 모여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를 해주기로 했다. 바로 팝콘을 직접 튀겨주는 일이었다! 동학년 R선생님께서 지인에게서 팝콘 튀길 수 있는 기계를 빌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행사 당일, 나와 동학년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마치 진짜 사장님이라도 된 것처럼 손님을 모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이들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열정적으로 외치며 손님을 끌어모으고, 각자의 부스 앞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상큼한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며 준비한 상품을 재미있게 설명하고, 또 다른 아이는 준비한 포스터를 양 손으로 잡아 펼럭이며 지나가는 친구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모든 아이들이 자기가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나도 흥분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선생님들은 얼른 팝콘을 나눠주어 아이들에게 더 큰 힘을 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팝콘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했고, 행사를 마무리한 아이들은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하나둘씩 팝콘 기계 앞으로 모여들었다. 나와 동학년 선생님들은 신나게 아이들에게 팝콘을 나눠주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반 아이의 입 속에서 “빠지직”하는 큰 소리가 들렸다. 너무 맛있어 봉지째 입안으로 팝콘을 털었고, 제대로 튀겨지지 않은 옥수수 알맹이를 씹고 이가 부러진 것이었다. 아이의 놀란 두 눈만큼이나 내 마음도 철렁 내려앉았고 제발 이가 간니가 아닌 젖니이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학부모님께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안절부절하며 전화를 걸었다. 천만 다행으로 학부모님께서는 젖니라고 말씀해주셨고 두배만큼 부어있던 심장은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괜히 이 수업을 했나 후회가 밀려왔다.
이렇게 좋은 취지로 시작했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 일은 여러번 있었다.
매년 나는 아이들의 생일파티를 열어준다. 평소에는 아이들 스스로 먹고 싶은 간식을 준비해 오도록 하는데 가끔은 내가 직접 초코파이와 음료수를 준비하기도 한다. 그동안 늘 즐겁게 생일 파티를 했었고 이 날도 별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하필 아침을 먹지 않고 온 한 아이가 초코파이가 너무 맛있는 나머지 허겁지겁 먹다가 체해버리고 말았다. 결국 아이는 다 토해버렸고 바지가 토로 범벅이 되었다. 괜히 생일파티는 해가지고 아이가 아프게 된 건 아닌지 자책이 밀려왔다.
그리고 또 다른 사건도 있다. 나는 늘 노는 친구랑만 노는 대신, 취미가 같은 친구들끼리 모여 점심시간을 알차고 즐겁게 보내도록 일주일에 1번 활동하는 학급 동아리를 만들었다. 아이들이 각자 관심 있는 분야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사소한 문제로 다투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물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도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바랐던 내 의도가 왜곡된 듯 느껴지며 괜히 시작했나 후회가 들었다.
이러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나는 종종 무슨 활동을 시작할 때마다 고민에 빠진다. '이 수업, 해도 될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일들 속에서도 성장하고 배우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문제가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얻는 가치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이렇게 내가 계속 이러한 수업을 할 수 있기에는 학부모님들의 이해가 큰 몫을 했다. 학부모님들께서 나의 활동의 좋은 의도를 이해해 주셨기에, 나는 지금까지 더 큰 자신감을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어주는 것은 완벽하게 계획대로 이루어져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함께 웃고 울며 배우는 과정 그 자체이다. 팝콘이 제대로 튀겨지지 않아도, 생일파티에서 누군가 체해도, 동아리 활동 중에 다툼이 일어나도, 그 모든 경험이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배움의 기회라는 것을 알기에 솔직히 지금도 나는 조금의 두려움은 여전히 있으나 계속 새로운 활동을 찾아나선다. 많은 의견 다툼과 뜻하지 않는 사건속에서도 아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며 타협하는 법을 배우고, 진정한 성장의 순간을 맞이한다. 나는 그들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교사로서의 진정한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다음번에는 더 나은 계획과 준비로 아이들에게 또 다른 추억을 선물해줄 수 있기를 다짐하며, 매번 나는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간다. 이 수업, 해도 될까? 고민한다면 실패해도 상심이 크지 않을 경우에는 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아이들의 웃음과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나를 더 강하게,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나는 수많은 도전과 실패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이 아이들과 나에게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함께 성장할 것이고, 함께 웃고, 함께 배우며,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을 간직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