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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야 Aug 27. 2024

발길질을 당하다

신입 교사 발령 이후 5년 내내 고학년 담임만 하다가 드디어 귀여운 3학년 담임이 되었다.  3학년은 대다수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학년이지만 결혼 전이었던 나는 어린 아이들이 더 어렵게 다가왔기에 원하던 학년은 아니였다. 내가 3학년 담임을 맡게 된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전년도에 2학기에 실시되는 영어 파견 연수를 신청하였는데 그게 운좋게 덜컹 선정되었다. 그래서 2학기에 나를 대신할 기간제 선생님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는 그나마 기간제 선생님을 구하기 쉬운 인기 학년인 3학년 담임을 준 것이다.

고학년인 5,6학년만 5년 내내 맡았기에 아이들은 내가 꽤 엄격해 보였나 보다. 나는 전혀 무섭게 대하지 않았고 친절하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는데 내가 굉장히 마음속으로 귀여워하던 아이가 ‘선생님은 저 미워하시잖아요.’하며 울었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아니야. 정말 오해야! 내가 널 얼마나 이뻐하는데.’ 이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 나는 정말 그런 적이 맹세코 단 한번도 없는데 말이다. 아이들은 고학년 스타일인 나를 적응해야 했고, 나도 막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온 꼬물거리는 아이들에게 적응하느라 나름 애썼다. 하지만 솔직히 그 당시 나는 지금보다 훨씬 엄격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나에게 K선생님은 너무 착해 보여 아이들이 만만하게 느껴진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인 즉슨, 그 반에 ‘대학생’이라 불리우는 현수가 있었는데 수업을 들어오고 싶으면 듣고, 아니면 마음대로 나가 운동장을 배회하기 때문이다. 현수가 선생님께 심하게 대들기도 하고 버릇없이 굴 때가 많아 마음속으로 ‘저 녀석 정신차리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K선생님이 안쓰럽기까지 했고, 그 아이를 그냥 두는 K선생님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이 모든 생각은 내가 너무 어렸던 20대였기에 가능한 생각이었음을 밝혀두고 싶다. 어느 날, K선생님과 내가 복도에서 대화를 하고 있을 때였다. 현수가 와서 담임 선생님인 K선생님에게 수업을 듣지 않겠다며 나가려했다. 이에 K선생님이 수업은 꼭 들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하자 현수는 욕을 하고 대들었다. 한마디로 너무 버릇없었다. 옆에서 보는 내가 너무 화가 나서 중간에 끼어들었다.
“너 지금 담임선생님께 뭐하는거야? 선생님 따라와!”
“싫은데요?” 오지 않겠다며 노려보는 현수의 모습에 화가 난 나는 현수의 팔을 잡고 따라오라며 끌었다. 이에 현수는 나에게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다 보는 복도에서 말이다. 누가 이기나 흥미진진한 얼굴로 구경하는 3학년 아이들을 보니 내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해졌다. 이대로 현수를 놓으면 다른 학생이 모두 다 보는 데서 망신이며 교사로서의 체면이 서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현수는 앞으로도 더욱 마음대로 행동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기어코 현수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끌고 가려고 옥신각신했고 아이의 발길질은 더 심해졌다. 같이 발길질을 할 수 없어 발길질을 당하며 현수를 데리고 복도를 벗어났다. 복도를 벗어나고도 나는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말을 여는 순간 더 화를 낼 것이 분명하여 나름 화를 삭히고 있었던 중이었다. 또한 현수의 반응도 예상이 되지 않았다. 이윽고 한마디 꺼냈다.
“ 현수야. 선생님 아프다. ”
현수도 나름 나와 한바탕하고 나서 진정이 되었는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끌고 가는 선생님에게 결국 항복을 한 것인지 나를 째려보던 눈빛은 다시 돌아왔고 차분히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담임선생님에게 예의 없이 행동한 부분은 꼭 사과하기로 약속하고 나에게 한 발길질도 사과를 받았다. 그리고 나도 무리하게 너를 데리고 와서 너도 당황해서 그랬냐며 이해를 구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현수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조폭이라고 하였다. 아이는 해맑게 “우리 아빠 조폭이에요 진짜예요”라고 하였고 나는 순간 살짝 정말 살짝 쫄았다. 아이는 자주 방치되어 있었고 K선생님도 현수의 아버지와 더는 상담을 이어갈 수 없었다고 하셨다. 현수는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었고 K선생님은 그 마음을 알았기에 아이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셨던 것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오지랖을 부렸으니 참으로 부끄러웠다. 이름도 참 사랑스러우셨던 K선생님. 그 분도 어찌 현수를 감싸기만 했을까. 혼도 내보았으나 그 방법보다는 따스히 대해주는 방법이 현수를 변화시키는데 더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혼자 강한 척 쎈 척 굴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창피하다. 그리고 그 정도의 아량밖에 보이지 못하고 다그치려 했던 현수에게 미안함을 고백하고 싶다. 더불어 내가 만났던 아이들에게도 나의 모자람으로 혹시 상처를 주었다면 정말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다.

아이를 지도함에 있어 좋은 수업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이의 사정, 상황을 아는게 먼저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더라도 아이의 사정을 알고 나면 다른 시각으로 아이를 볼 수 있다. 표면에 드러나는 행동의 잘잘못만 따진다면 과연 아이가 변할 수 있을까. 행동이 변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동해야 하는 법이다. 내가 아무리 바른 행동을 알려 준 들 학생 스스로가 바뀌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담임으로 만난 내 학생에게는 내 학생이기에 다른 사람들은 몰라주어도 담임선생님 만큼은 최소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아이의 깊은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한다.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해 더 엇나가는 아이들을 볼 때면 사랑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고 싶다. 부족한 내가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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