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항해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미사일 화염을 뚫고, 싱가포르에서 링링과 나눈 짧고도 뜨거운 재회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대자연은 우리에게 또 다른 시험대를 내밀었다. 여수 1호는 이제 대한민국으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 **동중국해(East China Sea)**를 향해 북상하고 있었다.
과거 '동지나해'라고도 불렸던 이 해역은 대륙풍과 계절풍이 교차하며 1년 365일 호수 같은 평온함을 허락하지 않는 곳이다.
출항 후 이틀쯤 지났을까, 여수 1호가 남중국해 베트남 앞바다를 지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태풍이 오기 전, 바다는 기분 나쁠 정도로 고요한 **'폭풍전야'**의 정적에 싸여 있었다.
그때 브리지의 레이더에 희미한 점 하나가 잡혔다. 선장님은 다가오는 선박을 망원경으로 한참 동안 들여다보더니, 낮게 신음하며 외쳤다. "보트피플이다!"
가까이 다가간 그 배에는 8명의 대가족이 타고 있었다. 얼마나 바다를 헤매었는지 피골이 상접한 상태였고,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처참한 몰골이었다. 그들은 우리 거대한 배를 향해 살려달라고 손을 흔들며 절규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본사로부터 내려온 엄격한 전령이 있었다. '난민을 무작정 한국으로 데려오지 말 것.' 3기사 시절 장보고함에 승선했을 때, 나는 보트피플을 구해주었던 선장님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똑똑히 보았다. 1980년대 초반, 남북이 극도로 대립하고 세계적인 냉전이 끝나지 않았던 시기였다. 선장님은 보안사 조사와 고문에 시달려야 했고, 배는 출항하지 못해 회사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결국 선장님은 해고되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 비극을 알기에, 이제는 보트피플을 발견하더라도 눈을 질끈 감고 지나쳐야 하는 것이 마도로스의 잔인한 숙명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차마 인간으로서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선장님은 고심 끝에 배를 멈추고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기로 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급히 물과 식량, 그리고 배가 움직일 수 있는 연료유를 넘겨주었다. "곧 태풍이 닥쳐오니 어서 가까운 육지로 피항하시오!"
목소리는 닿지 않았겠지만, 간절한 마음을 담아 손짓으로 알렸다. 인간의 도리와 냉전 시대의 정치적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던 선장님의 뒷모습이 그날따라 한없이 작아 보였다. 태풍의 전조인 너울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 가던 그들의 절규는 내 평생의 짐으로 남았다.
보트피플을 뒤로하고 북상을 계속하자, 바다는 기다렸다는 듯 본색을 드러냈다. 브리지의 기상 팩스(Weather Fax)에서 쏟아져 나오는 기록지는 온통 촘촘하고 시커먼 등압선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자연이 던지는 최후통첩과도 같았다. 선장님의 얼굴은 석조상처럼 굳어졌고, 곧이어 전 선내에 태풍대비 경고방송이 울렸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30만 톤의 원유를 가득 실은 만선 상태의 VLCC는 평소라면 충분한 GM 값을 유지하며 오뚝이처럼 제자리를 되찾는 안정적인 **복원력(Stability)**을 자랑한다. 하지만 15m가 넘는 산더미 같은 파도 앞에서는 그 거대한 선체조차 가냘픈 철판에 불과했다. 풍향풍속계는 풍속 50m/s를 가리키며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시속 194km/h, 달리는 자동차도 단숨에 뒤집어버릴 가공할 위력이었다.
길이 330m에 달하는 거대한 선체가 파도의 마루에 걸려 허리가 뜨는 **호깅(Hogging)**과, 파도의 골짜기에 빠져 앞뒤가 들리는 **새깅(Sagging)**이 반복될 때마다 강철판들은 비명을 질렀다. 반복되는 호깅과 새깅을 견지지 못하여 배가 두동강 나는 사고도 있었다. 거센 롤링과 피칭 속에 선미의 프로펠러가 거대한 파도 위로 노출되었다가 다시 깊은 바다로 처박히길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엔진의 부하가 급격히 변하며 RPM이 널뛰는 서징(Surging) 현상이 발생했다. 기관실은 언제 멈출지 모르는 거대한 심장의 박동 소리로 가득 찼고, 기관부 전원 11명은 기름 먼지 속에서 사투를 벌이며 엔진이 견뎌주기만을 기도했다.
**주갑판(Up Deck)**은 갑판원들이 접근도 불가능한 파도 속에 잠겨 반잠수함처럼 변해버렸다. 거칠게 부서지는 파도는 브리지의 유리창을 쉴 새 없이 때렸고, 가시거리는 선박 길이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암흑 속에 갇혔다. 톱 브리지(Top Bridge)의 안테나 사이로 몰아치는 태풍과 빗소리가 뒤섞여 마치 귀신 신나락 까먹는 듯한 기괴한 울음소리가 온 배를 휘감았다.
40년 넘게 바다를 누빈 베테랑 선장님이라 할지라도 대자연의 무자비한 분노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 보였다. 만약 이 거센 파도 속에서 엔진이라도 멈춰 선다면, 우리는 조국의 불빛은커녕 동중국해 어느 깊은 바닷속으로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터였다. 경사계가 좌우로 미친 듯이 춤을 추는 아수라장 속에서 나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나님,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링링과 겨울 낙엽을 밟기로 약속했습니다."
지옥 같던 태풍이 지나고 나자, 거짓말처럼 하늘이 열렸다. 동중국해의 거친 바다도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다.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주갑판(Up Deck)**으로 산책을 나갔다.
갑판 위에는 태풍이 남기고 간 흔적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갑판 배수구인 스카파(Scupper) 근처에서 무언가 팔딱거리고 있었다. 태풍에 밀려와 미처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날치 몇 마리였다.
"어허, 이놈들 봐라? 하늘이 우리 고생했다고 안주를 내려주셨네!"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갑판장님이 능숙한 솜씨로 날치를 잡아 즉석에서 회를 쳤다. 소금기 밴 바닷바람을 맞으며 먹는 날치회의 맛은 비릿하면서도 달콤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선원들은 그제야 서로의 얼굴을 보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생존의 기쁨이 입안 가득 퍼졌다.
갑판 위에서 또 다른 뜻밖의 손님들을 마주하였다. 여름이 지나면 강남으로 돌아간다던 제비 떼였다. 수천 킬로미터의 망망대해를 건너다 태풍을 만난 녀석들이, 거대한 여수 1호를 마지막 피난처 삼아 갑판 위를 시꺼멓게 뒤덮고 있었다.
평소 날렵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젖은 깃털을 늘어뜨린 채 수척해진 모습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제비들. 30만 톤의 육중한 강철 갑판 위에 내려앉은 그 작고 가냘픈 생명체들은 말 없는 전령사가 되어 우리에게 태풍의 잔인함을 몸소 전해주고 있었다.
지저귈 힘조차 없어 침묵 속에 몸을 웅크린 제비 떼를 보며 나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적을 피해, 혹은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는 저 제비들이나, 나라의 명줄인 원유를 싣고 사선을 넘는 우리 선원들이나 처지는 매한가지였다. 해충을 잡아먹는 이로운 새들이 우리 배에서 잠시나마 기력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리 스스로가 무사히 여수항에 닿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와도 같았다.
이윽고 레이더 화면에 익숙한 좌표가 찍혔다. 북위 $33^\circ 06' 30''$,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였다. 여기서부터는 그리운 대한민국 해역이다. 평화롭게 고등어를 잡는 안강망 어선들 보이기 시작했다. 12,000km의 사선을 넘어 드디어 조국의 품에 안겼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대한민국을 밝힐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22명의 전 선원의 땀이 지켜낸 저 불빛 아래, 가족과 동료들을 만날 수 있는 땅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