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군산항의 추억
여수항에서 30만 톤급 유조선 ‘여수1호’의 승선 3항 차를 무사히 마치고 하선한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임무를 맡았다. 이번에는 '1기사 승진'이라는 기분 좋은 훈장과 함께였다. 하지만 내가 승선한 배는 이전의 VLCC(30만 톤)과 전혀 딴판인 3만 톤급 원목운반선(Log Carrier)군산1호였다.
덩치는 10분의 1로 줄었지만, 긴장감은 오히려 열 배로 늘어났다. 유조선이 중동의 포화와 싸우는 '오일 전쟁'이었다면, 원목선은 보르네오의 늪지와 싸우는 '정글의 사투'였다.
원목선은 바다 위에서 가장 위험한 배 중 하나다. 화물칸뿐만 아니라 갑판 위(Upper Deck)까지 원목을 산더미처럼 쌓아 올리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무게중심이다.
선박의 하부 화물칸보다 갑판 위에 실린 짐이 더 많으니, 배의 복원성($GM$)이 극도로 나빠진다. 조금만 파도가 쳐도 배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며 복원성을 잃어 오뚝이처럼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가 버릴 듯한 공포를 준다.
게다가 원목은 '움직이는 폭탄'이다. 0.5톤에서 1톤이 넘는 거대한 통나무들이 항해 중 라이싱(Lashing, 고정)이 풀려 무너지기라도 하면, 그 사이엔 쥐 한 마리 살아남을 공간이 없다. 배도 사람도 그대로 끝장이다.
우리는 이 위험한 화물을 싣기 위해 보르네오 섬 깊숙한 우림 지역으로 향했다. 부두 시설도 없는 강가, 사방이 짙푸른 녹색 벽으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우리는 해상 크레인에 의지해 열흘 넘게 원목을 집어삼켰다.
지루한 선적 작업 중, 군산1호 선원들에게 유일한 낙은 상륙하여 흙을 밟아보는 것이었다. 화려한 싱가포르가 아니어도 좋았다. 그저 흙냄새, 풀냄새가 그리웠을 뿐이다. 정작 상륙해 보니 화려한 불빛 하나 없는 순수 원시림 그 자체, 말 그대로 정글이었다. 이때 노련한 군산1호 갑판장이 내게 슬쩍 귀띔했다.
"1 기사님, 여긴 돈보다 '하얀 세 줄 체육복'이랑 '삼양라면'이 최고여요!"
경험 많은 갑판장은 이미 자갈치 시장에서 체육복과 라면을 서너 박스나 준비해 온 터였다. 과연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한국산 라면 한 봉지에 바나나 한 포대가 오갔고, 라면 한 박스면 원주민들 사이에서 최고의 귀빈 대접을 받았다. "라면 다섯 개면 원숭이도 생포해 주고, 한 박스면 마누라도 빌려준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널린 게 열대 과일이고 물속엔 고기가 우글거리니, 사냥 기술만 있으면 땡볕 아래 일할 필요도 없이 먹고사는 데 지장 없는 낙원이었다. 우리는 선선한 밤이 되면 원주민들이 빚어준 독한 술을 마시고, 모닥불 주위에서 엉성한 춤을 추며 정글 속에서 피로를 씻어냈다.
그 원시의 밤, 나는 갑판에 기대어 싱가포르에 있을 링링을 생각했다.
'링링, 여기는 온통 초록색뿐이야. 네가 좋아하는 불빛은 없지만, 이 나무들이 언젠가 우리가 살 집의 기둥이 되고 가구가 되겠지.' 그녀에게 줄 선물로 사둔 겨울 코트의 부드러운 감촉을 떠올리며 나는 덥고 습한 정글의 공기를 견뎠다.
열흘간의 선적 후, 원목에 숨은 곤충이나 도마뱀 등 병충해를 없애는 훈증 소독(Fumigation)을 마쳤다. "올 스테이션 스탠바이!" 군산1호는 출항 기적이 울려 퍼졌다. 헤어질 때 눈물을 보이던 원주민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에서 국경을 넘은 사람의 온기를 느꼈다.
출항 후 3일째, 배가 미끄러지듯 남중국해를 지날 때였다. 갑판을 순찰하던 갑판장이 원목 속에 숨어든 구렁이 세 마리를 잡아 왔다. 독한 소독약을 피해 깊숙한 원목 속의 굴속에 숨어있던 놈들이었다. 나이 지긋한 갑판장과 조기장은 "이게 바로 천연 양기 보충제"라며 눈을 빛냈다.
그들은 폐 드럼통을 잘라 깨끗이 씻어내고는, 선미 푸프 데크(Poop Deck) 뒤편에서 몰래 '뱀탕'을 고기 시작했다. 가스토치 불꽃 아래 서너 시간을 고아내니 구수한 냄새가 진동했다. 다행히 바람이 앞에서 뒤로 불어 선장님이 계신 선수 쪽으로는 냄새가 전혀 가지 않았다. 선장님이 아셨다면 난리가 났을 일이다. 며칠 뒤 군산항에 입항할 즈음, 두 노장의 얼굴에서 번쩍번쩍 광채가 나는 것을 보며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뱀탕의 효능은 확실했던 모양이다.
드디어 80년대 중반의 군산항, 화려한 째보선창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군산항은 화물선과 어선들이 드나드는 큰 항구였다. 대명동일대 군산역부근 일명 감뚝 집창촌(사창가)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군산지역에서 감뚝은 말조차 꺼내기 힘든 단어였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현대식 아파트가 들어 서 있다. 또한 군산은 목재 산업의 심장이었다. 부두에 들어서자 '한국합판' 공장의 거대한 위용이 우리를 맞이했다. 화물창에서 쏟아져 나오는 원목들이 바다를 메웠고, 열대 나무 특유의 향기가 항구 가득 퍼졌다.
원유가 대한민국의 '피'라면, 원목은 이 나라의 '살과 뼈대'였다. 우리가 실어 온 나무들은 합판이 되고 가구가 되었으며, 때로는 종이가 되었다. 그 나무들은 중동 건설 현장으로, 또 서민들의 소중한 '내 집 마련' 현장으로 팔려 나갔다. 자원 하나 없는 나라에서 기름을 정제하고 나무를 깎아 가치를 창조하는 역동적인 현장에 내가 서 있었다.
하역을 마친 군산항의 저녁노을은 유난히 붉었다. 이제 나는 이 투박한 나무 냄새를 뒤로하고, 여수에서 사둔 따뜻한 코트를 챙겨 링링을 만나러 갈 것이다.
거친 원목 사이에서도 살아남은 구렁이처럼, 그리고 척박한 땅에서 거대한 기둥을 키워낸 원시림처럼, 우리의 사랑도 이제 단단한 집을 세울 차례다.
"링링, 곧 눈이 내릴 거야. 이 나무들처럼 단단하고 따뜻한 집을 지어줄게."
[다음 화 예고]
링링과 함께 처음으로 맞이하는 한국의 하얀 눈! 열대 소녀 링링의 눈에 비친 미지의 세계, '겨울'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두 사람의 가슴 설레는 첫겨울 여행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