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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열 Sep 27. 2023

그때 그시절9(연재)

9편 어릴적 별명 이야기

“세 살 버릇 여든 가고 초딩 별명 평생 간다”는 말이 있다. 현실이다. 내 별명은 ‘깽’이다. 경열이라는 이름에서 파생됐다.


바닷가 산모퉁이에서 칡뿌리를 캐 먹고 놀다가 보면 어느새 채석강 쪽 수평선 위에 노을이 붉게 물들며 어둠이 찾아온다. 하나, 둘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다. 멀리서 깽녀라~~ 깽녀라~~ 밥무그라~~ 희미하게 엄니 목소리가 들린다. 경열아~~를 더 크게 더 멀리 보내기 위해 첫마디에 악센트를 넣어 부르신 거였다. 그렇게 엄니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내 별명은 언제부터인가 ‘깽’이 됐다.


한술 더 떠 애들은 ‘깨갱’이라고 부른다. 더 나쁜 놈은 나이 60이 넘어도 그렇게 부른다.


내 별명만 있는 게 아니다. 실명을 공개하면 명예훼손이 될지 모르니 별명만 공개한다.


코베리, 마꼬, 장닭, 깡아리, 껌니, 땟대기, 주봉이, 만수, 보리차대기, 해보, 껌딩이, 득실이, 멧되아지, 코보, 똥쟁이, 때옴쟁이, 도장밥, 붕알쟁이…… 별명에 얽힌 사연만큼이나 아픈 역사도 여러 가지다.


‘코베리’


이 별명이 탄생한 사연은 오리지널 미국인 베리 씨가 친구 조보연 사랑채에서 하숙할 때로 거슬러간다. 베리 씨를 잠깐 설명하자면 베리 씨는 변산에 평화봉사단으로 미국에서 파견 오신 분이다. 보연네 할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2~3년을 산내면(변산면) 지서리에서 활동하시다 미국으로 귀향하셨다. 카메라를 메고 다니면서 우리 곁에서 변산반도 구석구석 풍경과 문화를 사진으로 남기셨다. 외모로 봐선 파란 눈에 키가 큰 외국인이 틀림없지만 60년대 우리와 똑같이 생활하셨다. 화장실이 없는 초가집에서 군불을 때고 요강단지를 사용했으며 된장찌개와 김치를 드셨다. 베리 씨가 사는 친구 보연이 네 집은 지서리 버스정류장 매표소가 딸린 집이었다. 집 옆 쪽문을 열고 들어가 보이는 사랑채가 베리 형 하숙집이 있다.


우리는 비가 오거나 눈보라가 칠 때면 보연이 네 매표소 처마 밑에서 쭈그리고 버스를 기다린다. 차비는 10원이었지만 평소에 걸어 다녔기에 현금이 있을 리 없다. 모두 걸어가기 힘들어 공짜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다. 대항리 해수욕장, 마웅개, 자미동, 합구에서 통학하는 초딩만 어림잡아 30명은 된다. 이럴 때마다 학교 주변에 사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버스는 하루에 네 번 안전여객과 전북여객이 있고 비포장도로 부안까지는 한 시간 이상 걸린다. 이내 버스가 도착했다. 우리는 애처롭고 처량하게 비 맞은 고양이처럼 “태워주세요, 태워주세요”라고 함께 구령에 맞춰 외친다. 때마침 호기심 많은 이방인 베리 형님께서 무슨 영문인가 하고 쪽문을 열고 나오신다. 조수와 기사 아저씨께 한마디 하신다


“날티가 커시키헝게 앤간 먼 태워주시랑게요” 미국 발음으로 완벽하게 부안 사투리를 구사했다. 보연네 할머니 즉 한국 어머니와 변산 친구분들과 어울리면서 살아있는 한국어를 배우신 것이다. 비 오는 날 외국인 베리 형님이 마치 예수처럼 나타나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형님 때문에 공짜 버스를 자주 타고 다녔다.


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친구 엄니가 운영하는 분식점이 있었다. 햄버거나 샌드위치는 없었어도 밀가루가 들어간 미국 음식과 비슷하여 베리 형은 자주 이용했다.


‘코베리’라는 별명은 베리 형과 가깝게 지냈기 때문으로 기억한다. 베리 형님과 의형제를 맺었다고 해 ‘코리아 베리’를 줄여서 ‘코베리’였는지 아님, 코가 베리 형님처럼 커서 ‘코베리’인지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


약간은 외모나 성격으로 봐서 베리 형과 많이 닮았다. 우선 우리보다 키가 약간 크고 피부도 하얗고 공부는 잘했지만, 무엇보다도 베리 형처럼 꺼벙한 데가 있다.


지금은 고위공직자로 퇴임했지만, 아직도 우리에게는 코베리로 더 잘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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