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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열 Sep 28. 2023

그때 그시절10(연재)

10편 별명이야기(2)

정월 대보름날이면 대항리에서는 큰 문화행사를 한다. 볏짚 한 벼눌을 헐어서 새끼를 꼬아 줄다리기 행사를 한다. 새끼를 3개로 꼬아 다시 합치면 새끼줄 9가닥으로 단단한 동아줄이 된다. 동아줄이 점점 굵어지면 기술이 필요해져 동네 사람 전부가 합동으로 꼬아야 한다. 그렇게 길이가 50m쯤 되면 여자, 남자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하면서 동네 한 바퀴를 된다. 악귀를 쫓아내는 일이다. 그러고 나면 500년 묵은 팽나무 당산에 똘똘 감아 준다.


한바탕의 민속놀이가 끝나면 꽹과리와 장구 등 농악과 막걸리 파티를 한다. 호기심 많은 베리 형에게 이런 요상한 모습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같이 즐긴다. 막걸리를 어른들이 주는 대로 마시다 보니 취기가 올라왔다. 해는 뉘엇뉘엇 밤에는 불꽃놀이가 있지만, 베리는 지서리까지 돌아가야 한다. 인사를 하고 눈밭을 성큼성큼 걷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항쿡 싸람 트러워요”, “항쿡 싸람 트러워요”. 허수아비처럼 양팔을 올리면서 말한다.


길모퉁이를 돌아 신작로로 가면 되는데 빨리 가려고 눈 덮인 밭두렁을 지나다 거름으로 사용할 똥통에 빠진 것이다. 이 똥통은 봄에 쓰려고 밭 귀탱이에 둠벙을 크게 파서 똥을 저장한 곳이다. 우물에서 물을 퍼다 대충 씻고 지서리까지 뚜벅뚜벅 걸어갔다. 맑은 하늘에 보름달이 훤하게 밝혀주고 저녁이 되니 바닷바람과 함께 맹추위가 다가왔다. 영하 10도는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지서리에 도착해보니 옷은 꽁꽁 얼어있고 흐른 물은 새끼 고드름이 되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따뜻한 물도 없다. 생각난 것이 보연이 집 앞 마꼬네 집 주조장에 납품할 쌀 삶는 큰 가마솥이다. 거기에서 물을 퍼다 똥물을 씻어 내야 했다.


또 한 번 외친다 “항쿡 통 냄새 치독허유”


대항리 사람들 대보름 행사를 마치고 다음날 동청에 모여든다. 조용했던 시골 마을에 또 한 번 웃음보가 동청에서 터져 나온다. 미국 발음 성대모사를 누가 누가 잘하는지 대결한다. 


“항쿡 싸람 트러워요”, “항쿡 싸람 트러워요”


몇 년 전 동창 모임에서 코베리가 베리 형이 돌아가셨다고 말해 줬다. 신문에 나왔다 한다. 그동안 코베리는 베리형님 소식을 계속 듣고 있었다. 베리 형이 그렇게 유명한 분인 줄 우리는 몰랐다.


신문에 난 내용을 요약하면, 이름은 ‘브라이언 베리(Brain A Barry)’다. 1945에 태어나 2016에 사망했으며 묘는 전라북도 부안군 산내면(변산면)에 위치한 창녕 조씨 상호군공파 선산(仙山)에 있다. 2년의 봉사활동 (결핵관리, 가족계획, 모자보건)을 끝내고 미국으로 귀향했지만, 변산반도를 못 잊어 6개월 후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미국 보스턴에 살고 계시는 친부모님은 오지 중 오지인 변산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아들을 극구 만류를 하셨다고 한다. 한국인으로 살아오면서 변산의 어머님 김초례 ( ~1991. 조보연의 할머니)여사를 자주 찾아뵙고 변산반도를 제2의 고향으로 마음속 깊이 간직했다. 그의 유언대로 영혼마저 변산반도 조씨 문중에 묻혔다.


김초례 여사님 막내아들로 환생했다고 믿고 불교에 입문하여 불교 대학을 졸업하고 불교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 대통령상, 장관 훈장 등 상도 여럿 받았다. 유품으로 직접 그린 수천 장의 불교 그림(탱화, 幀畵)이 있고 직접 편집하고 번역한 불교 서적 수십 권이 있다. 가장 값지게 남긴 것은 몇십 년 동안 빛을 못 본 변산반도 풍경과 1960년대(우리들의 10대)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무려 한 보따리 이상 나왔다.


베리 형님……


그렇게 우리 곁에서 항상 웃으면서 “음메~ 거시기 허는 고만”이라고 했는데 그 깊은 뜻은 모르고 어벙한 줄 만 알았습니다. 그동안 찾아뵙지도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진짜 거시기 합니다. 저도 변산반도를 사랑합니다. 저도 변산에 묻히고 싶습니다. 환생해 변산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별명이야기 3편에 계속



최경열 / 변산출생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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