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우리 집 강아지

변산 노을 아래, 이름은 '워리'지만 걱정 없었네

by 최경열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우리 집 강아지들의 고향은 언제나 '부안 장터'였다. 아버지는 장날이면 새끼강아지 몇 마리를 사 들고 오셨다. 혈통서 같은 건 없었다. 그저 흰 털이면 백구, 검으면 검둥이, 얼룩덜룩하면 바둑이, 노란빛이면 노랭이였다. 하지만 일단 우리 집 마루 밑에 자리를 잡는 순간, 녀석들은 세련된(?) 영어 이름을 하사 받았다.

첫째는 워리(Worry), 둘째는 메리(Merry), 막내는 해피(Happy).

영어를 잘 모르시던 아버지였지만, 자식들만큼은 걱정(Worry) 없이 즐겁고(Merry) 행복하게(Happy) 살길 바라는 마음을 개 이름에 투영하셨던 것 같다. 비록 출신은 장터 똥개였을지언정, 녀석들은 잘 훈련된 군견보다 영리했고 진돗개보다 집을 잘 지켰으며 풍산개보다 사냥에 능했다. 시골 아버지는 전문 조련사보다 강아지 훈련을 잘 시켰다.

Gemini_Generated_Image_flz6l3flz6l3flz6.png

할아버지의 눈이 되어준 '해피'

우리 집 막내 해피는 안내견 교육 근처에도 가본 적 없지만, 실명하신 할아버지의 세상 그 자체였다. 할아버지는 예전 대항리 해수욕장 바위 공사 현장에서 '남포(Lamp에서 유래된 발파 용어)'를 터뜨리다 사고로 시력을 잃으셨다.

해피는 신기하게도 할아버지의 지팡이 끝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를 알았다. 할아버지가 소를 끌고 나서면, 해피는 소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기름진 풀밭으로 길을 인도했다. 덕분에 할아버지는 소 배도 채우고, 다음 날 먹일 '꼴(풀)'도 한 망태기씩 넉넉히 베어 오실 수 있었다.

목줄 하나 없던 시절, 해피와 암소, 그리고 할아버지는 그렇게 3년을 한 몸처럼 변산의 들판을 누볐다. 사고로 닫힌 할아버지의 세상에 해피가 '행복'이라는 창을 내어준 셈이다.

Gemini_Generated_Image_25kt6v25kt6v25kt.png


똥강아지와 '천연 비데'의 추억

시골 똥개들은 효자 농사꾼이기도 했다. 쥐나 두더지를 고양이보다 잘 잡았고, 대문이 없어도 남의 집 마당엔 발도 들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녀석들에겐 '특수 임무'가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아이들의 뒷정리였다.

그 시절 아이들은 바짓가랑이가 터진 옷을 입고 다녀 기저귀가 필요 없었다. 마당 구석에 '자연 방사'를 하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것(?)을 먹기 위해 강아지가 빛의 속도로 달려왔다. 싹싹 핥아먹는 그 솜씨는 요즘의 비데가 울고 갈 정도였다.

가끔 먹을 게 부족하면 강아지가 아이의 '소중한 부위'를 먹을 것인 줄 알고 살짝 깨물기도 했는데, 그러면 아이는 질색하며 뒤로 넘어지곤 했다. 그 소란스러운 풍경이 변산의 흔한 오후였다.


워리가 구한 목숨

큰 놈 '워리'는 아버지의 생명 은인이었다. 눈 덮인 겨울날, 아버지가 약주 한잔 걸치시고 귀가하시다 '점빵몰랭이(현 해수욕장 전망대)' 근처에서 잠드신 적이 있었다. 1km나 떨어진 집에서 워리는 기막히게 주인 냄새를 맡고 달려갔다. 매서운 추위 속에 잠든 아버지를 짓고 깨워 저체온증의 위기에서 구해낸 것이다.

그런 워리와의 마지막은 강렬한 '흉터'로 남았다. 어느 날, 워리가 동네 검둥이와 '은밀한 사랑'을 나누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나는 왠지 검둥이가 미워 워리의 꼬리를 잡아당기고 검둥이의 귀를 비틀며 방해했다. 순간, 화가 난 검둥이가 내 팔뚝을 옹골지게 물어버렸다.

피가 철철 흐르는 팔을 들고 집으로 뛰었을 때, 아버지는 민간요법이라며 물린 개(검둥이)의 털을 뽑아 불에 그슬린 뒤 된장과 섞어 내 팔에 바르셨다. 붕대 대신 낡은 러닝셔츠를 찢어 감고 다녔던 그 팔뚝엔 5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한 흉터가 남아 있다.

Gemini_Generated_Image_5zmci05zmci05zmc (1).png

솔향기에 실려 간 이름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 흉터가 아물 때쯤, 마루 밑에는 예쁜 복슬강아지 세 마리가 복작거렸다. 워리는 지극정성으로 새끼들을 길렀다. 녀석들이 어느덧 젖을 떼고 스스로 밥그릇을 차지할 만큼 당당한 ‘청년 개’가 되자, 워리는 마치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는 듯 평생의 보금자리였던 마루 밑 안방을 새끼들에게 오롯이 양보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것이 워리가 우리에게 보여준 마지막 뒷모습이 될 줄은 몰랐다.

멀리 산등성 개울가에서 개털 그을리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날, 솔향기를 타고 온 그 비릿하고도 익숙한 냄새가 동네 어귀를 덮었다. 아버지를 구하고, 할아버지의 눈이 되어주고, 농사일까지 돕던 워리가 소나무 아래에서 마지막이 되었다. 어제까지 내 앞에서 좋아서 폴짝폴짝 뛰었던 워리였다.

그날 밤, 나는 차마 잠들지 못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꺽꺽거리는 울음을 삼켰다. 낮에 보았던 그 연기가 자꾸만 눈앞을 가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워리야, 아까 낮에 많이 뜨거웠지? 내 팔뚝 물었던 검둥이가 미워서 너까지 미워해서 미안해...'

팔뚝의 흉터는 화끈거리고, 가슴속은 구멍이 난 듯 허전했다. 곁에서 곤히 잠든 아버지나 어머니가 깰까 봐 입술을 깨물며 소리 없는 오열을 쏟아냈다. 워리는 강아지 세 마리를 선물로 남기고, 우리 식구의 영양 보충까지 시켜주고는 그렇게 먼 길을 떠났다. 철없던 소년은 그날 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법을 처음으로 배웠다.

Gemini_Generated_Image_b75ygmb75ygmb75y.png

우리는 새로 태어난 강아지들에게 다시 똑같은 이름을 붙여주었다. 워리, 메리, 해피.

"우리 집 강아지는 복슬강아지, 학교 갔다 돌아오면 멍멍멍~"

동요를 부를 때마다 변산의 푸른 바다와 마루 밑 지푸라기 냄새, 그리고 내 팔뚝의 흉터가 아릿하게 떠오른다. 이름처럼 살다 간 녀석들. 50년 전 그 똥개들은 내 마음속에 영원한 '워리, 메리, 해피'로 살고 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2화제2화 그 겨울에 닭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