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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열 Oct 07. 2023

마도로스 첫사랑 (연재 3)

싱가포르에서 만난 여인

일주일 넘게 망망대해에서 폭풍을 뚫고 남으로 남으로 항해를 하였다. 지루했다. 고향생각이 났다. 바다는 결코 내가 꿈꾸어 왔던 낭만만이  있는 곳이 아니다고 실감했다. 갑판에 올가 가니 찌는 더위가 엄습해 왔다. 우리 배는 열대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갑자기 바다가 잔잔하였다. 적도가 가까워진 것이다. 지구본에서 본 빨간 선(적도)은 위도 0도 다. 그러나 바다 위에 빨간 선은 보이지 않았고 잔잔한 호수와 같았다. 바람과 별에 의지해서 항해를 했던 과거에는 미신을 믿어 적도제를 지냈다. 돛을 이용하는 범선은 무풍지대에선 항해사에겐 피하고 싶고 징크스가 있는 지역이라 적도제를 지냈을지 몰랐다. 적도를 지나면 선박에 항상 나쁜 징조가 있었다고 한다. 태풍의 중심에도 바람이 없다. 


우리 배가 그런 적도를 지날 때쯤 희미하게 육지가 보였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가슴이 벅차올랐다. 빌딩의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첫 기항지인 싱가포르였다. 모든 외항선이 거쳐 가는 항로이며 대형 해상 무역 항구 도시다. 유럽과 아시아, 인도양과 태평양을 지나가는 길목이다.


 선박은 비록 바다를 떠 다니고 느리지만 육상 운송 수단인 기차와 자동차에 비하여 비교할 수 없는 많은 화물을 운반하는 수단이다. 태평양의 물에 깊이와 양을 감안하여 뜰 수 있는 부력은 육상에 제일 높은 에베레트산도 띠워 옮길 수 있다. 재미있고 믿기 어려운 역사 기록물이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계 7대 미스터리 이집트 피라미드 건축 공법이다. 거기에 사용되는 커다란 화강암 돌덩어리 230만 개를 수백 킬로 떨어진 이 스완에서 나일강이 범람하는 시기에 이집트 현장까지 선박을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기원후 14세기경 이순신장군이 거북선을 만들 때 이집트는 기원전 14세기경 이미 대형 선박을 건조했다는데 믿기 어려운 역사 기록이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유럽은 일치감치 바다를 정복하여 해상무역을 통하여 부를 축적하였다. 


오늘날 싱가포르에는 그런 수천 척의 해상 무역 선박이 화물을 운송하기 위해서 부두에 정박하거나 대기하고 있다. 우리 배도 하역하고 선적하기 위하여 1주일간 정박할 예정이다. 또한, 다음 목적지인 인도를  항해를 위해서 선원들 부식, 선박에 필요한 오일과 선용품을 선적할 예정이다. 


당직을 마치고 오후 늦게 동료 3등 항해사와 상륙을 하였다. 호기심과 설렘으로 가득 찬 첫 상륙이었다. 일주일 만에 밟아 보는 육지다. 열대기후를 경험해 보지 않아 숨이 막힐 정도 후덥지근했지만 콩닥콩닥 달 착륙했던 우주인처럼 산소를 들이키며 한발 한발 걷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새롭다. 열대지역의 나무와 풀 한 포기도 대한민국과 달라 신기하였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언어와 생김새도 우리와 많이 달랐다. 내가 딴 나라 달나라에 온 것을 실감하였다.


 지금은 세계 관광 및 치안 1등 국이지만 내가 외항선원으로 첫 상륙했던 항구는 무법천지였다.  한국과 싱가포르 모두 개발도상국이었다. 항만과 도로 건설 등 공사하는 곳이 많았다. 해외 노동자, 외항선원, 거리에는 불법 노동자도 많았다. 


우리는 싱가포르에서 유명한 쇼핑센터인 오차드 로드에서 간단한 쇼핑을 하고 센토사  공원을 산책했다.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섬이었다. 2018년에 김정은과 트럼프 두 정상이 북미 회담을 개최한 곳이다. 공원시설은 잘 되어있었다. 모노레일을 타고 섬주위를 돌았다. 열대의 해수욕장에서 하얀 백사장을 걸으면서  잠깐 외항선원이라는 직업을 잊고 피로를 풀고 있었다. 빌딩의 불빛 사이로 하늘의 별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센토사 해변에서 바다의 야경을 보면서 동료와 시원한 맥주도 한잔 하였다. 바다를 건너오는 피로에서 오랜만에 마시는 술은 온몸으로 퍼져갔다. 하늘을 찌르는 기분이다. 우리는 해안가를 따라 선박이 정박해 있는 부두까지 걷자고 하였다. 멀리 항구의 불빛이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시내와 떨어진 부두까지 도착할 때쯤 가로등도 깜박거리며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뭔가 모르지만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찰나의 순간에 "퍽"하는 소리가 들렸다. 쇼핑가방 속에 커피와 술이 땅에 뒹굴며 깨지면서 고량주 술향기가 진동을 하였다. 순간에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량배에게 당한 것이다. 폭력배인지 몰라도 새까만 흑인 건달 서넛이 우리를 넘어 트린 것이다. 누워서 위를 쳐다보니 하얀 이빨만 보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동료 3 항사도 이미 코에서 피가 흘리며 땅에 누워있었다. 벌벌 떨고 있었다. 반항하면 죽일 것 같았다. 전율을 느낄 때 물가를 조심하라는 할머니 점괘가 문득 생각이 났다. 쥐 죽은 듯이 숨도 안 쉬고 있었다. 눈을 반쯤 떴을 때 껌딩이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경찰들이 우리를 부추겨 세워준다. 몸은 다치지는 안았지만 현금과 갖고 있던 물건 모두 털렸다. 가까운 파출소에서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었다. 신고한 사람도 사건장소와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정신을 잃을 뻔했던 국제 미아를 구해준 분이다. 생명의 은인이었다. 자세히 보니 여자였다. 더 자세히 보니 예뻤다. 사건을 선장이나 회사에 연락하면 일이 커지게 되고 출항날짜까지 바뀔지 몰라 그냥 3등 항해사와 비밀에 부쳤다.


다음날 두들겨 맞은 데가 멍이 들고 쑤시기 시작했다. 3 항사는 상륙 안 하고 배에서 치료하며 쉰다고 하여 나 혼자서 속창자 없이 아픈 몸으로 상륙하였다. 혼자서 피플스 파크를 걷고 있었다. 우리가 쓰러져있던 곳도 다시 가봤다. 저녁이 되면서 전화를 걸었다. 우리를 구해주었던 예쁜 여자였다. 고마움을 전해 주고 싶었다. 전화를 하니 흔퀘히 허락해 줬다.

우리 배가 보이는 그랜드호텔 라운지에서 중국메뉴로 식사를 하였다. 술은 유명한 중국 고량주 마오타이로 대접을 해 줬다. 분위기도 좋고 남녀사이 어느 정도 긴장감도 풀려 서로 자신을 소개하였다. 이름은 왕링링(王玲玲), 23세 대학 4학년, 중국계로 외모는 한국 사람과 비슷하였다. 눈이 참 예뻤다. 먼바다를 항해하고 이국땅에서 술을 마시고 여자를 보니 더 예쁘게 보였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의 은인이 이였다. 거기에 더 매력적인 것은  한국어를 배우고 있고 한국에 대하여 정말 관심이 많은 졸업을 앞둔 학생이었다. 꼭  한국은 어떤 나라인지 가보고 싶다고 하였다. 한국말을 서툴지만 한 미디씩 하는 게 귀여 웠다. 물론 나도 영어에는 능통하지 않아 말이 중간에 끊길 때가 자주 있었지만 손짓 발짓 제스처로 다 통했다. 왕링링은 우리가 불량배 한테 당하고 쓰러졌던 상황을 제스처를 사용하며 생동감 있게 상기시켜 줬다. 긴급 구호요청은 전화번호 999와 구급차는 995라는 것도 알려 줬다. 9(jiu)와 구할 구 救(jiu) 중국어 발음이 같다고 한다.  저녁에는 가로등이 없는 곳은 피하라는 주의도 주었다. 


대륙 중국은 옆에서 살인이나 강간을 당해도 신고도 안 하고 구경만 하는 나라다. 싱가포르는 중국사람이 80% 차지한다. 문화와 관습은 중국과 똑같다. 작은 중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유럽 영향을 받아 문화 수준이 높다. 자원도 없는 척박한 개발도상국이었지만, 한국보다 더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면적은 서울보다 크고 인구는 550만 정도 되는 적은 나라이며 도시다. 그래서 싱가포르는 수도이자 나라이름이다. 싱가포르 공용어는 영어이나 중국계 가정에서는 모국어인 중국어를 사용한다. 나도 싱가포르에 관심을 갖고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추억과 사건 사고를 뒤로하고 우리는 인도양을 향하여 기적을 울렸다. 또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당직을 마치고 침실에 들어오면 링링이 자꾸 생각이 난다. 짝사랑인지 첫사랑인지 모르지만 남녀 공학인 시골 중학교 다니면서 여학생을 좋아했던 일이 처음이었고 마지막이었다. 링링을 만나고 나서 새로운 사랑이 싹트고 있었다. 남녀 관계는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링링의 반짝이는 영롱한 눈빛에서 나를 보았다. 이런 감정이 사랑의 감정인가?  생명의 은인을 무엇으로 보답해 줄 것인가 곰곰이 생각했다. 링링은 대한민국을 너무 좋아한다.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증표가 있는 선물을 생각해 봤다. 우리는 다음에 만날 것을 기약하고 주소와 연락처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갈매기 나르는 수평선과 부서지는 하얀 바다를 보면서 링링에게 편지를 썼다. 다음 항해와 항구가 기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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