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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열 Oct 17. 2023

불길한 항해(연재 5)

container ship

"올스테이션 스텐바이 올스테이션 스텐바이"(All station, All standby, 전선원 정위치 전선원 정위치) 3 항사의 선내 방송과 함께  제 위치에서 화물 선적을 마친 선박은 출항작업을 하고 있었다. 웅장한 엔진소리와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장보고호(가명)는 힘차게 부두를 떠나고 있었다. 컨테이너 3000개(TEU) 실은 육중한 장보고호는 물살을 가르고 하얀 물거품만 남기고 천천히 전진하고 있었다.


브리지(bridge, wheel house)에서 선장은 망원경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말없이 선박의 전진방향 만 주시하고 있었다. 뜨거운 열대의 태양은 사라지고 브리지에는 어둠과 침묵만이 흐르고 있다. 16번 채널에서 선박의 침로 방향을 묻는 초단파 무전기(VHF)에서 흘러나오는 항해사들의 국직 한 목소리가 침묵을 깨고 있었다. 야간 항해는 불빛이 조금이라도 밖으로 새어 나가면 안 된다. 등화관제를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항해사의 전방시야를 방해할 수 있고 타 선박에서 혼선을 줄 수 있다. 


야간 항해 하는 선박의 길이를 알 수 있도록 선수와 선미, 폭을 알 수 있도록 좌, 우현 그리고 높이를 가늠할 수 있도록 마스트(Mast) 상부에만 항해등(Navigation light)만 깜박거리고 있다. 항해등 설치는 국제 표준이다. 장보고호는 어둠 속에서  긴장을 멈추지 않고 힘차게 항해를 하고 있었다. 레이다를 보다가 갑자기 선장이 당황한다. 30년이 넘는 베테랑 선장이다. 레이다에는 점하나로 잡히나 불빛 하나 없는 의문의 물체가 장보고호로 접근하고 있다고 한다. 선장은 긴급 ECR( Engine Control Room)에 RPM(기관회전수)를 올리라고 지시를 한다. 15000마력이나 되는 묵직한 투사이클 디젤 기관은 굉음을 내면서 선박의 속력을 올린다.


  "해적 출몰 의심 경계경보" 선내 비상벨을 울려 기관 당직자를 제외한 전 선원 MESS ROOM(선박의 식당 겸 회의실) 집결하라는 선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전원 메스룸에 모였다. 밖으로 통하는 수밀문(water tight door) 및 환창은 굳게 잠그고 모든 승조원은 대피실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대피실(citadel)에는 물, 비상식량, 무전기가 있어 말라카 해협을 빠저나 갈 수 있는 시간은 버틸 수 있다. 갑판에는 물대포(화재 진압용 고압해수) 발브가 열려 있다. 해적이 나타나면 물대포 발사 준비가 되어있다. 


육상의 긴급 번호인  119/112와 같은 선박의 긴급 선박보안경보장치(SSAS) 스위치 누를 준비가 되어있다. 자동으로 네트워크 된 국제 해상 구조 요청이 접수가 되면 즉시 우리 선박을 해적에서 구해 줄 것이다. 브리지에서는 어둠 속에서 항해사들의 침묵만이 흐른 체 4시간을 달려왔다. 레이다(Radar)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도 불빛하나 보이지 않았다. 숨 막히는 말라카 해협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안도의 숨을 쉬고 경계경보를 해제하였다.


 시간을 보니 새벽 3시였다. 항해 당직자 2 항사, 그리고 기관 당직 2 기사만 남기고 모든 선원들은 각 방으로 해산하였다. 선박은 주야로 달린다. 밤 00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당직을 미드웟치(Mid watch )라고 한다. 담당은 2등 항해사와 2등 기관사이다. 3등 기관사인 나는 당직을 마치고 침대에 누었다. 싱가포르의 첫사랑 왕링링을 생각하였다. 센토사섬 하얀 백사장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 잠깐 피로를 풀 수 있었다. 외항선원들에게 유일한 행복이었다. (선상생활은 필자가 3등 기관사 시절 1980년 중반의 이야기이며, 소설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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